취임 100일 대국민보고대회 생중계를 보고


지난 20일 생방송된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 기념 대국민보고대회는 형식 면에서는 새로움과 파격을 선보였다. 방송이 시작되자마자 데이브레이크의 '꽃길만 걷게 해줄게' 노래가 나왔고, 장관들과 청와대 수석들은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국민들의 질문에 대답했다. 소통과 탈권위주의를 내세우는 새 정부의 모습을 알리는 장면이었다.

대통령과 장관들이 나서서 국민들과 소통의 기회를 갖겠다는데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소통에 그렇게 목말랐던 국민에게 그 기회는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

하지만 이날의 방송은 진정한 소통의 자리가 되기에는 여러 문제 또한 드러냈다. 우선 모처럼 마련된 자리가 일방적인 청와대 홍보의 자리가 된 것은 유감이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는 과거 정부에서도 대통령이 함께하는 국민과의 대화 자리는 있곤 했다. 그 대화는 대개 불편한 소리들을 포함한 토론의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서 처음 마련된 이번 자리는 청와대의 자축연을 떠올리게 하는 분위기로 일관했을 뿐,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으려는 생각은 애당초 엿보이지 않았다.

이날의 자리가 진정한 소통의 자리가 되려면 그래도 소비자가 나와서 살충제 달걀에 대한 불안감을 말하고, 성주 주민이 와서 사드 배치에 대해 항의하며, 민주노총 대표가 초대받아 양심수 석방을 말할 수 있어야 했다. 그리고 대통령이나 장관이 그에 대해 진솔한 설명을 해야 했다. 불편하지 않게 준비된 얘기만 주고받으며 방송으로 내보내는 것을 우리가 소통이라 부르기는 어렵다.

또 하나, 이 행사를 굳이 지상파, 종편, 보도전문채널의 거의 모든 방송이 동시에 생중계를 하는 것이 적절했는지 의문이다. 사실 이날의 내용은 국민의 큰 관심사가 될 것들은 아니었다. 청와대가 취임 100일을 기념하여 그런 행사를 하겠다면 몇몇 방송 정도가 생중계하면 될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굳이 일요일 밤 방송의 황금시간대를 독점하다시피 하며 시청자들의 채널 선택권까지 제약한 것은 과거 시대의 방식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그것을 방송사의 자율적 편성이라고 설명하는데 수긍할 사람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닐슨코리아 시청률 조사에 따르면, 지상파 3사의 시청률은 모두 합해 10.8%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 같은 시간에 방송된 KBS 2TV 주말드라마가 무려 36.5%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특수를 누린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대회가 황금시간대의 방송이었음을 감안하면 막상 시청자들의 관심은 미미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미 국민들이 내용의 중요성 여부를 판단하고 있었다는 얘기이다.

과거 정부 시절에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를 할 때면 청와대와 방송사 간의 갈등은 흔하게 있어왔다. 정권을 불문하고 청와대는 홍보를 원하고, 방송사는 토론을 원하기 때문이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내용을 둘러싼 의견 차이로 결국 국민과의 대화가 취소되는 일이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 때도 내용을 둘러싼 청와대의 압력과 그것을 막으려는 제작팀 사이에서 공개되지 않은 갈등이 많았다. 필자는 당시 패널로 참여했기에 그 내부에서의 진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진보정권에서든 보수정권에서든, 방송사들은 대통령이 나오는 국민과의 대화를 진행하더라도 방송으로서의 자율성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이번 행사가 동시 생방송되는 과정에서는 청와대와 방송사 간의 어떤 긍정적 긴장 관계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냥 청와대의 자축연과 같은 행사를 모든 방송사들이 그대로 동시중계한데 그친 것이다.

정권은 홍보를 원하는 것이 속성이다. 하지만 홍보가 전면에 나서고 다른 의견과 토론이 배제되면 소통은 불가능해진다. 문재인 정부의 홍보능력은 이미 탁현민 행정관의 존재로 부각될대로 된 상태이다. 그 상황은 문 대통령에게는 잘 쓰면 약이기도 하지만, 절제하지 못하면 독이 될 수도 있다. 촛불시민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다운 소통의 방식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홍보의 욕망을 절제하고 진정한 소통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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