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청산이 성공하기 위한 조건


국정기획위원회가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 중 제1호는 '적폐 청산'이다. 그리고 2호는 ‘반(反)부패’이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1, 2호 과제를 놓고 언론들은 ‘사정정국의 예고’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최근 동향을 보면 언론들의 이같은 전망이 틀린 것 같지는 않다. 수리온 헬기 기술결함 등의 문제로 방산비리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가 예상되고 있다. 청와대에서 발견된 문건들이 앞으로 사법적, 정치적으로 어떻게 사용될지도 관심사이다. 문재인 정부가 마음만 먹는다면 사실상 무한정한 조사나 수사가 가능한 것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일 것이다. 아마도 여름 정국은 적폐청산과 부패척결을 위한 사정(司正)의 바람이 불어닥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인사청문회 정국에서 진땀을 흘려야 했던 문재인 정부가 국정운영의 이같은 변화를 모색하는 것은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의미가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새 정부가 출범한지 70일 가량이 지났지만, 시간이 갈수록 문재인 정부는 수세적인 상황에 몰리고 있다. 물론 높은 지지율은 계속되고 있지만, 여소야대 환경에 정국의 주도권은 야당들에게로 넘어가 있는 상태이다. 그러다 보니 적폐세력인 자유한국당까지도 목소리를 높이며 사사건건 발목을 잡고 있다. 촛불혁명의 민심에 따라 출범했다고 자임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로서는 그런 상황 자체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대선은 문 대통령이 이겼는데 정작 공격의 고삐는 야당이 쥐고 흔드는 형국” (박신홍, ‘“개혁 골든타임 놓쳐선 안 돼다시 가속페달 밟는 ’ <중앙선데이> 716)이라는 어느 여권 관계자의 말은 무척 실감이 난다 

물론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을 다시 내거는 데는 지난 대선에서 드러난 국민적 요구의 실현이라는 점도 있지만, 이같이 정국주도권의 재확보라는 현실적 측면 또한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문제는 적폐청산의 작업이 그리 쉽지 않은 고난이도의 숙제라는 점이다. 촛불민심이 보여주었듯이 이명박근혜 시절에 쌓인 적폐에 대한 청산의 요구는 여전히 높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 가능했던 가장 큰 이유도 적폐청산의 적임자라는 국민적 판단이 배경이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적폐청산은 문재인 정부에게는 책임이자 의무와도 같은 일이다. 

하지만 적폐청산의 과정은 특히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과의 충돌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다른 야당들도 직접적인 이해충돌은 없다 해도, 적폐청산을 내건 청와대의 일방적 주도권 장악에 대해서는 일정한 견제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국회 환경은 협치를 요구하는데 적폐청산은 현실적으로 자유한국당 세력과의 충돌을 피하기가 어렵다. 

그런 점에서 적폐청산의 과정은 대단히 높은 수준의 전략이 요구되는 사안이다. 우선 일정 기한 내에 그 작업이 대략 일단락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9월 들어 정기국회가 시작되어 입법과 예산 논의가 본격화 되는 11월에 들어서면 야당들의 협조가 절실해진다. 자유한국당의 반발을 불러올 일들은 그 때까지 마무리짓는 것이 현실적이다. 무엇보다 청산의 과정이 장기화 되면 국민들의 피로증 또한 생겨날 수밖에 없다. 청산의 과정은 가급적 단기간에 끝내고 국정의 긍정적인 의제들로 가야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적폐청산이 청와대의 주도권 장악을 위한 것이라는 인상을 줄 때 보수층의 결집을 촉발시킬 수 있다. 그리 되면 정권 초기의 통합적 분위기는 깨지고 다시 보수-진보 간의 진영 분열을 낳을지 모른다. 따라서 적폐청산의 대상들은 국민적 동의의 수준이 높은 것으로 한정하고 선별할 필요가 있다. 무차별적인 청산은 반대세력의 목소리를 키우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국민의당이나 바른정당과의 공조 분위기를 만들어 척폐청산 공조를 실현하여 자유한국당과 분리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두 정당은 적폐청산에는 충분히 공감대 형성이 가능하니, 굳이 야3당과 대결하는 정국으로 가져갈 이유가 없다. 예를 들어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관련법에 아직까지 바른정당은 참여하지 않고 있는데, 180석 확보를 위해서는 바른정당과의 공조를 위한 노력이 경주되어야 할 것이다. 척폐청산에서도 협치의 정치력을 발휘하는 것은 여권세력에게 여전한 숙제이다. 

과거 김대중 정부 출범 초기에 정치권에 대한 사정작업이 시작되었다가 한나라당의 강한 반발로 인해 흐지부지 되었던 적이 있다. 선택과 집중의 관리가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오히려 정국이 이것저것 꼬여버리고 자유한국당의 목소리만 키워줄 수도 있다. 촛불민심에 따라 들어선 문재인 정부에서 적폐청산은 한번은 거쳐야 할 과정이다. 하지만 마음만 앞선다고 성공할 수는 없는, 섬세한 지혜와 전략이 요구되는 일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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