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 계산하는 사이 사회정의-공익행정 질식


요즘 서울 한양대 주변이 시끄럽다. 한양대는 지난 2015년 학생 주거난을 덜기 위해 2,000명 수용 규모의 기숙사 신축을 발표했다. 그런데 2년이 지나도록 서울시는 ‘주민 반대’를 이유로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기숙사 신축으로 인한 학내 환경파괴나 지목 불법변경 같은 당연한 사유가 아니라, 인근 주민 반대 때문이다. 대학이 교내 부지에 자기 돈 들여 기숙사 짓겠다는데, 왜 주민들이 반대하는가. 학생 상대 원룸 임대업자들이 이익이 줄어들 것을 염려해서다. 

얼핏 보면 학교와 인근 주민 간 이해 상충이라는 ‘사회면 기사’ 같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정치’가 깔려있다. 주민들 표를 의식한 지자체장들이 명분상으로건 법적 요건으로건 반대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사안을 뭉개고 있다. 표를 빌미로 한 주민들 횡포에 지자체장들이 무릎 꿇는 사이 ‘선거민주주의’는 질식상태에 처하고 있다.     

대학가 원룸업자 반대로 기숙사 못 지어

사정을 잠시 살피자. 한양대 인근에서 원룸을 임대하는 주민들은 기숙사를 지으면 원룸 수요가 없어진다며 ‘기숙사건립 반대대책위원회’를 만들고 ‘결사반대투쟁’에 들어갔다. 한양대 총학생회에 따르면, 현재 한양대 기숙사 수용률은 11.5%에 불과하다. 학생들은 학교 인근 월세가 상당히 비싸지만 기숙사가 태부족해 울며 겨자먹기로 원룸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올해 2월 기준, 서울 주요 10개 대학가 전용면적 33㎡(10평) 이하 월세방 평균임대료는 보증금 1,454만원에 월세 50만원으로, 월 기숙사비 30만원 선(보증금 무)인 기숙사에 비해 곱절 이상 비싸다. 

학생들의 기숙사 증축요구는 당연한 것이다. 구청과 서울시청의 결정이 2년 째 지지부진하자 한양대생들은 기숙사 증축계획안의 서울시 도시계획심의위원회 통과를 요구하는 탄원서(학생 1,868명 서명)를 시에 제출할 예정이다. 그에 앞서 지난 3월에는 같은 내용의 탄원서(학생 2,857명 서명)을 성동구청에 제출했다. 그러나 학생 상대로 ‘방 장사’를 하는 주민들 반대를 이유로 성동구청과 최종 결정권자인 서울시는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 

원룸업자들 표 의식해 관청은 건축허가 미뤄

대학가 주민들의 이런 이기주의적 단체행동은 한양대 주변만이 아니다. 대학기숙사를 아예 ‘교육 유해시설’로 몰아 기숙사 건립을 반대하는 경우도 있다. 교육부 산하 ‘한국사학진흥재단’이 750명 수용 규모의 연합기숙사를 서울 동소문동에 짓겠다고 발표한 건 1년 2개월 전인 지난해 4월. 올 2월에 건축허가가 났지만, 두 달이 지난 4월까지 착공조차 못하고 있다. 

동소문동 일부 주민들이 “대학기숙사가 초등학교 가까이 있으면 술 마시고 담배 피우거나 애정행각을 하는 등의 행동을 초등생들이 볼 수 있어서” 결사반대하고 나섰다. 주민들 주장은 한 마디로 자가당착이다. 주민 논리대로라면, 주택가 인근의 모든 대학들을 산속이나 외딴 섬으로 이전시켜야 한다. 대학가 원룸 임대업자들은 ‘교육 유해요소’인 대학생들에게 왜 방을 내주는가. 이런 모순이 어디 있는가.

주민 논리대로라면 대학들 모두 섬으로 이전시켜야

선거 때 표를 의식한 단체장들이 반대 민원을 들어 공사허가를 내주지 않는 것은 정의롭지 못할뿐더러, 명백한 직무유기다. 원룸 임대업자들은 유권자이며 동네 여론을 주도할 수 있는 반면, 학생들은 주소지가 자치단체장들의 지역구가 아닌 경우도 많고, 군 입대나 졸업 후 타 지역 취직 등으로 ‘자기 구역’의 상주인구가 아닐 확률이 높으므로 주민들 반대여론을 들어 불의한 행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취업난에 주거난까지 이중으로 겹쳐 하루하루 허덕이는 학생들은 지자체장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표의 노예이자 표를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거래하는 게 정치(인)라면, 그런 정치(인)는 타파되어야 한다. 

표 얻는다면 악마와도 거래할 정치인은 타파돼야

대학이 자기 땅에 자기돈 들여 학생들 기숙사 짓겠다는데, 주민들이 무슨 권리로 “결사반대”하는가. 마치 기업형 농산업자가 자기 농산물 팔아먹으려 농부가 자기 땅에 자기 먹으려 농사짓는 걸 막는 꼴이다. 자본주의도, 시장경제도 아닌 횡포일 뿐이다. 불법이나 탈법이 아닌데도 기숙사 건축을 불허하는 관청은 공익이라는 행정의 제1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다. 그런 지자체장은 직무유기로 소환되어 마땅하다.  

언론도 제 역할을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대학과 주민, 공생방법은 없는가”라는 식으로 접근하기 일쑤다. 기숙사를 짓되 주민을 위해 대학은 뭔가를 내놓으라는 식의 보도가 상당수다. 학생들의 고단한 사정은 도외시한 채 이기주의로 똘똘 뭉쳐 횡포를 부리는 임대업자들에게 대학과 학생들이 왜, 무엇을 일정 부분 양보해야 한다는 건가. 설득력이 없다. 

횡포에 무릎 꿇는 지자체장은 표 인질에 불과

논리적 근거도 공익적 타당성도 없는 횡포를 민원이라는 이름으로 제기하고, 관청에서는 표를 의식해 주춤주춤하니까 이런 비상식적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 주민 눈치 보며 공사허가를 미루는 단체장들이나, 제 몫 줄어드는 거 막으려 학생들에게 고통을 강요하는 주민들이나 매 한가지다. 

최종 잘못과 책임은 관청과 지자체장에게 있다. 언제까지 표를 앞세운 주민들의 정의롭지 못한 민원이나 이기심의 노예로 끌려다닐 건가. 그건 정치가 아니라 표 인질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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