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행시도 저지로 4.19혁명과 6.10항쟁 ‘미완의 굴레’ 넘어서야

[폴리뉴스 정찬 기자] 5월9일 19대 대선 투표일이 밝았다. 지난해 10월 24일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야기된 사상초유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 최종 종지부를 찍는 날이다.

지난해 10월 29일 박 전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며 타오른 첫 촛불 이후 과정은 혁명(革命)이었다. 지난해 11월 광화문 광장을 불태운 촛불을 두고 우리는 ‘촛불 시민혁명’이라 명명했다. 그 혁명의 불길은 지난해 12월 9일 국회에서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시키는 원동력이 됐고 올 3월10일 헌법재판소의 박 전 대통령 파면선고를 이끌었다.

헌재 탄핵 인용 선고 때까지 촛불은 매 주말마다 20여 차례나 타올랐고 1700만의 시민이 참여했다. 그러나 헌재의 탄핵안 인용은 ‘촛불 혁명’의 2차 경유지였다. 1차 목표점인 국회의 탄핵소추안 통과를 헌법적으로 완성한 것이 헌재의 박 전 대통령 파면이었지만 ‘촛불 혁명’의 마침표는 아니었다.

오늘 5월9일은 촛불 혁명의 마침표다. 이후에 펼쳐질 새로운 대한민국의 밑그림이 오늘의 선택에 달려 있다. 지금 우리 국민은 촛불혁명이 제기한 역사적 혁명을 완수하느냐 아니면 ‘미완의 혁명’을 또 한 번 되풀이 할 것인 지를 선택하게 된다. 이 선택에 따라 후대는 역사적 갈림길에 설 것이다.

우리 국민은 피로 일군 1960년 4.19혁명이 5.16 박정희 군사쿠데타로 유린되는 쓰라린 ‘미완의 혁명’을 경험했다. 민주공화국의 가치는 총칼에 의해 짓밟히고 왕정시대 ‘왕’의 권력보다 더한 독재자의 제왕적 통치가 지배하는 유신(維新)시대를 겪어야 했다. 민주주의 가치는 조롱되고 ‘헌법’과 ‘법률’은 독재체제를 떠받드는 수단이 됐다.

박정희에 의해 좌절된 이후 민주주의가 다시 소생하기까지 27년이란 긴 세월을 ‘투쟁’해야 했다. 1980년 광주항쟁 등 기나긴 희생 끝에 1987년 6월 우리 국민은 박정희 독재의 후계자 전두환 정권에 맞서 승리했다. 그러나 그해 12월 대선에서 군사독재 후예인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권력을 넘겨주면서 6월 항쟁은 또 ‘미완’이 됐다.

노태우의 당선으로 군사독재의 유산인 ‘박정희 패러다임’을 청산하기보다는 굴레를 안아야 했다. 87년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반민주 가치’의 전형인 ‘박정희 패러다임’이 한국사회를 규정했다. 절차적 민주주의 구축이란 성과에도 반북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이념적 우위를 점하는 보수 우위 사회는 지속됐다. 여기에 강자와 시장 중심, 재벌과 관료 우위 시스템은 ‘법치’의 틀을 무력화시켜왔다.

그리고 대선이 있을 때마다 ‘박정희 코스프레’가 판을 쳤고 박정희는 신화가 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7년 대선에서 그 덕을 톡톡히 봤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당선된 것은 노골적인 ‘박정희 향수’에 기반했다. 1987년 6월항쟁이 미완에 그치면서 낳은 비극(悲劇)이다.

촛불 반대세력 퇴행 시도 저지해 4.19-6.10 미완의 역사 되풀이 말아야

촛불혁명은 대한민국이 ‘박정희 패러다임’을 극복하고 진정한 의미의 ‘민주공화국’ 건설하라고 요구한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은 이를 위한 출발점일 뿐이다. 공화국 70년 역사 속에서 불안정했던 주권재민(主權在民)의 민주적 원칙을 온전하게 뿌리내리는 것이 목표다.

5.9 대선은 한국사회 곳곳에 쌓인 ‘박정희 패러다임’을 청산하고 이를 토대로 민주주의를 질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정권을 창출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를 결정하는 장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더 이상 재벌과 관료, 정치와 언론권력의 조작대상이 아닌 ‘국가권력의 주체’가 되느냐, 아니냐의 문제다.

이 중대한 국민의 선택을 앞두고 촛불혁명을 저지하려는 세력의 움직임은 우려된다. 박근혜 정권의 실패에 책임을 져야할 세력이 대선을 통해 부활하려 하고 있다. 새누리당에서 이름을 바꾼 자유한국당은 자신의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며 촛불혁명을 무력화시키려 한다.

국민의 비판이 거셀 때 눈 가리고 아웅하듯이 최경환 등 친박핵심들의 당원권을 정지 시늉을 했다가 이제 도로 원 위치했다. 친박을 양아치라 비난했던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헌재의 탄핵 인용 판결을 부정하는데 그치지 않고 탄핵반대세력과 한 몸이 됐다. 지난 8일 마지막 유세를 탄핵반대세력의 상징적인 집회장소인 서울시청 앞 대한문을 택했다. 

홍 후보는 ‘강성 귀족노조 척결’ ‘전교조 척결’, ‘친북 척결’ 등의 구호로 극우보수 세력에게 영합했다. 합리적 보수, 중도보수 마저 도외시하고 ‘국민통합’은 내팽개쳤다. 그러면서 지역주의 망령(亡靈)을 부활시키기 위해 ‘민주당 호남 1중대’, ‘안찍박(안철수 찍으면 박지원 상왕)’ 등의 말을 입에 달았다.

색깔론으로 나라를 동강내 자신의 생존만 도모하려 한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친북’으로 몰았다. 국민 대다수를 향해 붉은 페인트칠을 서슴치 않았다. 이러한 무차별적인 이념적 낙인찍기 폭력을 통해 ‘박근혜 콘크리트 지지층’을 동원하려 했다.

‘약자’에 대한 폭력도 서슴지 않았다. 동성애에 대한 혐오, 여성에 대한 경멸적인 태도는 계산된 폭력이다. 경쟁하는 후보를 향한 ‘배신자’, ‘배배 꼬였다’, ‘초딩’ 등의 폭력적 언어도 동원했다. 3%에 불과한 ‘귀족노조’를 공격하는듯하면서 실제로는 국민 대다수인 노동자 모두의 권리를 부정하는 악랄한 프레임도 작동시켰다. 한국사회 기득권자, 보수층 내부에 은밀히 존재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야만적 ‘폭력성’에 영합했다.

여론조사 공표금지 직전 나타난 대선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붕괴됐던 보수층의 표심이 ‘반기문-황교안-안희정-안철수’를 돌고 돌아 마지막으로 홍 후보 쪽으로 모이는 분위기다. 지난 70여 년 동안 한국사회의 약자를 향해 휘두르던 야만적 ‘폭력’의 가해자들이 다시 결집하는듯하다.

5.9대선은 이러한 촛불 반대세력의 퇴행 시도를 저지하는 국민적 장이 돼야 한다. 이들이 계속 한국사회의 주류가 되는 것을 막는 첫 출발점이 오늘이다. 오늘의 역사적 과제가 또 실패하면 ‘촛불혁명’은 지난 4.19와 6.10처럼 ‘미완’으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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