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는 현장투표를 이겨낼 수 있을까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왼쪽)와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사진=연합뉴스></div>
▲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왼쪽)와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사진=연합뉴스>

‘만덕산의 저주’라는 우스개 소리가 한동안 언론에 회자되었다. 국민의당으로 들어간 손학규 전 대표가 무슨 중요한 행보만 하면 대형뉴스가 터져 파묻히곤 했던 일들을 가리킨 것이다. 지난해 10월 만덕산에서 내려와 정계복귀를 하던 날에는 최순실 태블릿PC 발견이라는 초대형 사건이 터졌고, 지난 2월 국민의당에 입당하던 날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되어 역시 파묻혀 버렸다. 그런가 하면 1호 공약발표 때는 주한미군 사드 전개 뉴스가 나와 주목받지 못했다.

그래서 등장한 ‘만덕산의 저주’라는 말이 최근에는 다른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다. 손학규 전 대표에 의해 꼼짝 못한채 발목이 잡혀있는 국민의당을 가리키는 말이다. 국민의당은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룰과 세부일정을 정하는 과정에서 오랜 시간 홍역을 치렀다. 손 전 대표 측이 던진 ‘사전 선거인단 신청 없는 현장투표’는 조직동원력으로 경선을 치르면 한번 해볼 수 있다고 판단한 회심의 승부수였다. 일반의 예상과는 달리, 손 전 대표는 안철수의 손을 들어줄 생각이 있어서 국민의당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진짜로 자기가 후보가 되려고 들어간 것이었다. 

안철수 전 대표 측은 당초 요구했던 모바일 투표 반영을 포기하고, ‘현장투표 40%+ 여론조사 30% + 공론조사 30%’ 방안을 제시했지만, 현장투표 100%를 고수하며 합의 불발시 경선불참을 통첩한 손 전 대표 측과 결국 ‘현장투표 80%+ 여론조사 20%’ 방식에 합의하게 된다. ‘현장투표 75%+ 여론조사 25%’라는 당의 최종 중재안 보다도 손 전 대표의 입장이 더 반영된 것이다.

이같은 룰은 기본적으로 손 전 대표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으로 보인다. 조직동원력에서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는 손 전 대표 측이 민심과 당심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안 전 대표에게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론조사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두 사람이지만, 현장투표가 80%나 차지하는 경선이 철저한 조직동원 선거로 진행된다면 국민의 지지율과는 상관없이 동원을 더 많이 하는 후보가 이길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전에 선거인단 신청도 받지 않고, 신분증만 갖고 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현장투표이다. 그런 경선룰로 하게 되면 실제로 손 전 대표에게 패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안 전 대표 측도 가졌을 법 하지만, 그래도 경선이 깨지는 사태가 빚어지는데 대한 부담 때문에 물러서기를 반복하며 그같은 합의에 도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국민의당 경선은 엄청난 리스크를 안고 진행되게 되었다. 조직동원 선거가 차떼기 같은 장면을 낳지는 않을지, 일반 국민들이 과연 먼 투표소까지 와서 투표를 할지, 중복투표는 제대로 막을 수 있는 것인지, 다른 정당 지지자들에 의한 역선택은 없을지, 무엇 하나 확실한 안전장치가 없이 경선이 진행될 상황이다. 그러다 보면 본선 경쟁력과는 동떨어진 경선 결과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실 경쟁하는 다른 정당들이 보면 해괴한 장면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법하다. 경선이라는 것이 자기 당에서 본선 경쟁력이 가장 높은 후보를 선출하는 절차인데, 국민의당 경선은 반대로 본선 경쟁력이 높은 후보가 탈락할 위험성이 대단히 높은 경선룰을 정했으니 말이다. 무엇을 위한 경선인지를 알기 어렵게 된 셈이다. 물론 누가 본선 경쟁력이 더 높은 지에 대한 주장조차 엇갈리고 있지만, 이는 상식의 잣대로 판단한다면 쉽게 결론이 내려지는 문제일 것이다. 손 전 대표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최고로는 2퍼센트대, 최저로는 통계적으로 잡히지 않는 수준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무난한 본선행을 당연시했던 안 전 대표로서는 예선에서부터 힘든 승부를 벌이게 되었다. 특별한 조직적 기반이 없는 그로서는 자발적인 지지층의 참여 여부가 본선 진출 여부를 가리는 상황을 맞게 된 셈이다.

국민의당 또한 기로에 서게 되었다. 손 전 대표의 입장이 최대한 반영된 경선룰에 따라 본선경쟁력과는 어긋난 후보가 선출되는 사태가 빚어질 경우 당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도 안개 속이다. 그동안 손 전 대표가 김종인 전 의원이나 바른정당과의 연대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왔음을 생각한다면, 그가 후보가 될 경우 그들과의 반문연대 구축에 합류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 경우 국민의당은 정권교체의 노선이 아닌, 과거 새누리당 세력과의 권력분점의 길을 가게 되는 셈이다. 그런 상황이 온다면 당이 유지될 수 있을지 조차 불확실해 보인다.

그런 위험한 경선룰을 결정했던 국민의당은 다시 후보선출일을 둘러싸고 계속 갈등하고 있다. 본선 준비를 하고 역선택을 막기 위해서는 4월 2일에 선출해야 한다는 안 전대표 측 입장, 충분한 현장투표를 위해서는 4월 9일에 해야 한다는 손 전 대표 측 입장이 맞선 가운데 당 선관위는 4월5일로 절충적인 결정을 내렸다. 역시 손 전 대표 측이 경선 불참으로 압박한 결과이다. 안 전 대표 측은 일단 이를 거부한 상태이다. 

안 전 대표 지지층의 시선에서 보자면 국민의당에 아무런 기여도 한 것 없는 손 전 대표가 경선불참을 무기로 당과 경선을 휘두르고 있다는 불만을 가질 법 하다. 실제로 온라인 상에서는 손 전 대표의 일방적 요구에 무한정 끌려다니는 박지원 대표에 대한 당원과 지지자들의 항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번 대선은 ‘문재인 대 안철수’의 대결이라고 공언해왔던 안철수 전 대표로서는 뜻밖에도 힘겨운 경선을 치러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경선이 철저한 조직동원 대결로 가게 되면 결과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조직력에서 한계를 안고 있는 안 전 대표로서는 지지자들의 자발적인 투표참여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태이다. 안철수의 지지층은 과연 그를 본선까지 무사히 보낼 수 있을까. 예상과는 달리, 국민의당 경선의 불가측성이 높아지게 되었다. 안철수가 이를 돌파한다면 본선에 좋은 약이 될 것이고, 반대로 현장투표에서 패한다면 급사하게 되는 독이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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