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가빴던 20일과 스스로 멈춘 대선 시계…성공한 외교관이 실패한 대선주자 되기까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대선 불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div>
▲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대선 불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안병용 기자] 세계 대통령의 한 가지 소원은 ‘한국 대통령’이었다. 10년 간 세계 평화를 위해 동분서주 해온 반기문의 경험과 경륜은 ‘위기 홍수’인 대한민국에 ‘희망’으로 다가오는 듯 했다. 자의반 타의반 유력 대선주자로 거론된 이유다. 하지만 그의 꿈이 펼쳐지기엔 대한민국 정치권은 너무 살벌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1일 전격 대선 불출마 선언을 했다. 순수한 뜻을 접겠다는 말과 함께였다. 그는 “갈갈이 찢어진 국론을 모아 국민대통합을 이루고 협치와 분권의 정치문화를 이루어내겠다는 포부가 인격 살해에 가까운 음해, 각종 가짜 뉴스로 인해 정치 교체의 명분이 실종됐다”고 했다. 그로 인해 ‘분신’과도 같았던 유엔의 명예에 상처를 입히고, 국민들에게 큰 누를 끼쳤다고 했다. 정치권에 대한 실망도 드러냈다. “일부 정치인들의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이기주의적 태도도 지극히 실망스러웠고 결국 이들과 함께 길을 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이라고 했다. 반 전 총장이 밝힌 불출마의 변이다.

‘정치 신인’ 반 전 총장은 데뷔전도 치르지 못했다. 1월12일 귀국 이후 짧다면 짧은 20일 간 쏟아진 수많은 조명이 신인으로서는 부담스러운 일이었을까. 그렇게 치부하기엔 신인치고 너무 큰 위상이었다. 그는 지지율 수위를 다투는 ‘유력 대선주자’였다. 반 전 총장은 왜 불출마를 선언했을까. 우선 반 전 총장의 귀국 후 20일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정말 그가 주장한대로 ‘인격 살해에 가까운 음해, 각종 가짜 뉴스’로 얼룩진 20일이었을까.

반 전 총장이 지난 12일 인천공항으로 입국해 귀국인사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div>
▲ 반 전 총장이 지난 12일 인천공항으로 입국해 귀국인사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정치인 반기문의 20일

1월11일- 반 전 총장은 미국 현지시간으로 이날 오전 뉴욕 JFK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귀국 소감에 대해 “설렌다”고 했다. 그러나 속내는 불편했다. 전날 동생과 조카에 대한 뇌물 혐의 기소 건이 논란으로 불거졌기 때문이다. 반 전 총장의 동생인 기상 씨와 그의 딸인 주현씨는 베트남에 있는 경남기업의 복합빌딩 매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브로커를 통해 중동 관리에게 뇌물을 주려한 혐의로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에 기소됐다.

1월12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수많은 환영인파와 지지자들, 정치권 인사들과 언론이 모인 자리에서 그는 “정권교체가 아닌 정치교체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대선 출마를 공식화한 발언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더 큰 주목을 받은 발언이 있었다. 과거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대통령이 비전을 갖고 올바른 용단을 내린 데 대해 역사가 높게 평가할 것”이라고 한 발언에 대해 반 전 총장은 “오랫동안 현안이 된 문제가 합의된 것에 대해 환영한 것”이라면서 “다만 궁극적인 완벽한 합의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을 풀어주는 수준이 돼야 한다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발권기 2만원’ 논란도 있었다. 반 전 총장은 공항철도로 귀가하면서 발권기에 2만원을 넣으려 했다.

1월13일- 피선거권 논란이 도마에 올랐다. 귀국 전부터 불거졌던 논란이었다. ‘국내에서 5년 이상 거주해야 한다’는 선거법 규정 상 외국에 머물고 있었던 반 전 총장에게 피선거권이 있느냐는 갑론을박이 거셌다. 결과적으로 유효 결론이 나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선거일 현재 5년 이상의 기간을 국내에 거주한 사실이 있는 40세 이상의 국민은 국내에 계속 거주와 관계없이 피선거권이 있다”며 반 전 총장의 피선거권이 유효하다는 유권 해석을 내놨다.

1월15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는 지난해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논란거리였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찬반 입장은 명확하다. 반 전 총장은 정부의 입장을 옹호했다. 그는 이날 “한반도 현실이 거의 준전시 같은 상황이기 때문에 정부가 그런 조치를 취한 것은 마땅하다”고 밝혔다. 이튿날에는 “사드 배치 반대는 님비 현상의 일종”이라고 하기도 했다. 반대 진영의 맹공을 받기에 아주 적절(?)한 발언이었다.

1월16일- 반 전 총장은 이날 박근혜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했다. 그는 “직접 찾아뵙고 인사드려야 하는데, 상황이 이렇게 돼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범보수 대선 후보로 꼽혀온 그에게 야권의 비판이 쏟아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반 전 총장의 입당 가능성이 있는 정당으로 꼽혔던 국민의당은 이날 “(대통령과) 죽이 잘 맞는 것 같다. 연대는 곤란한 것 같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는다며 ‘기름장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반 전 총장은 박 대통령에게 전화통화도 하고, 대통령 탄핵 요구 시위인 촛불집회에도 참석하겠다고 밝히는 등 선뜻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음성 꽃동네를 방문했다가 ‘턱받이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고, 다음날에는 ‘반기문 퇴주잔 논란’이 인터넷을 달구었다. 반 전 총장이 부친 묘소를 참배할 당시 잔에 담긴 술을 비우지 않고 마셨다는 이 영상은 그러나 편집된 영상인 것으로 밝혀졌다.

1월17일- 범보수 대선 후보로 꼽힌 반 전 총장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과 세월호참사 희생자 분향소를 방문하면서 논란이 생겼다. 반 전 총장은 참여정부 시절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내고, 유엔 사무총장에 올랐지만 2009년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조문을 하지 않아 ‘배신자’ 공격을 받아 왔다.

1월18일- 정치인이 기자에게 ‘나쁜 놈’이라고 비판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귀국 전부터 그의 발목을 잡아온 위안부 합의 관련 발언에 대해 기자들의 질문이 줄곧 쏟아지자 반 전 총장은 한 기자를 가리키며 “이 사람들이 와서 그것(위안부 합의)만 물어보니까. 내가 마치 역사에 무슨 잘못을 한 것처럼. 나쁜 놈들이에요”라고 말했다.

1월19일-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만났다. 반 전 총장은 그에게 “녹색성장 정책을 통해 기후변화에 대응해 오신 점을 잘 알고 있고, 감사드린다”고 했다. 이 전 대통령은 4대강 사업을 통해 전국의 강을 ‘녹조’로 물들였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1월24일- 신천지 연루설이 불거졌다. 사교집단으로 알려진 신천지는 ‘이단‧사이비’라는 비판도 받는다. 반 전 총장이 신천지 관련단체로 알려진 단체 대표와 악수하는 동영상이 유투브에 공개되면서 ‘반기문 사이비’ 의혹이 제기됐다. 반 전 총장은 “새 똥 맞은 기분”이라며 불쾌한 기색을 여과 없이 나타냈다.

1월25일- 외교관 출신으로 영어실력을 자랑한 날이다. 반 전 총장은 이날 관훈클럽 토론회에 참석해 “솔직히 우리 (역대) 대통령들 중에 불편 없이, 통역 없이 외국 지도자와 대화할 수 있는 분이 몇분이나 될까?”라며 다자회의에서 영어 잘하는 대통령이 없어서 안타깝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역대 대통령들의 영어 실력이 형편없다는 말로 해석되기도 했다.

1월26일~30일- ‘반기문 빅텐트’ 구축을 위한 활발한 행보가 이어졌다. 김형오‧정의화 전 국회의장,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 등 개헌론자들을 만났다. ‘대선 전 개헌’이라는 깃발 아래 ‘제3지대’ 구축을 위한 열혈 행보로 비쳐졌다. 여론조사 지지율 1위를 문 전 대표에게 내준 것에 대한 일종의 ‘돌파구’로 해석 됐다. ‘비문 연대’가 필요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실패로 돌아갔다. 대선 전 개헌에 대한 야권의 반대와 자신의 지지율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빅텐트 시나리오는 폐기 수순으로 접어들었다.

1월31일- 반 전 총장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고 정치권에 모든 정당·정파 대표들이 참여하는 개헌추진협의체 구성을 공개 제안했다. 폐기 수순으로 접어든 빅텐트 불씨를 살리기 위한 마지막 승부수였다. 그러나 반대 여론은 사그러들지 않았고, 그 이면에 담긴 ‘비문 연대’에 대한 비판 여론만 거셌다. 반 전 총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촛불민심이 변질된 면이 없지 않다”고 말해 비난을 받기도 했다.

2월1일- 대선 출마 뜻을 접었다. 반 전 총장은 “순수한 애국심과 포부는 인격 살해에 가까운 음해, 각종 가짜 뉴스로 인해 정치 교체 명분이 실종됐다”며 지난 20일을 되짚었다.

반 전 총장이 25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초청 관훈토론회'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div>
▲ 반 전 총장이 25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초청 관훈토론회'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대선주자 반기문의 자질과 준비는 충분했을까

‘정치 신인’ 반 전 총장이 본선은커녕 예선전이 시작되기도 전에 물러난 이유에 대해 정치권 안팎에서는 반 전 총장의 자질과 준비 부족, 참모들의 전략적 실패를 꼽았다.

반 전 총장은 불출마 기자회견을 통해 “일부 정치인들의 구태의연한 이기주의적 태도에 실망했다. 이들과 함께 길을 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대선 불출마의 배경이 ‘외부 환경 탓’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인격 살해에 가까운 음해, 각종 가짜 뉴스”라고 주장한 것도 정치인으로서 피할 수 없는 냉혹한 ‘검증’의 잣대를 회피했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23만 달러 수수 의혹’ 등을 둘러싼 각종 악재를 정면 돌파할 의지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은 ‘정치력 부재’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참모진들의 전략적 실패가 한몫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반 전 총장은 ‘진보적 보수주의자’라고 했는데, 이는 참모들이 스탠스를 잘못 잡은 것”이라고 했다. 그는 “반 전 총장이 설 자리는 보수다. 진보진영에는 문재인 전 대표, 중도에는 안철수 전 대표가 있다. 그런데 진보적 보수라는 게 어정쩡한 태도다. 이런 태도가 보수진영의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정치판은 지지율을 견디기 힘들다. 반 전 총장은 관료 출신으로 정치판의 ‘맷집’도 약했다. 게다가 대통령이면 국가비전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반 전 총장은 ‘돈이 없어서 정당에 들어가야 겠다’며 돈 이야기를 했다. 이런 전략적 실패는 참모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김능구 <폴리뉴스> 대표는 “준비 안 된 후보의 한계”라고 지적했다. 그는 “반 전 총장은 지난 10년 간 세계 대통령이라 불리는 유엔 사무총장 활동이 마무리 되면서 대선주자 지지율 1위에 오르는 등 엄청난 기대 속에 1월12일 귀국했지만 귀국 후 첫 메시지부터 누가 써준 듯한 원고를 읽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서민 행보에서도 여러 가지 실수로 일이 고약하게 꼬이게 되면서 서민 코스프레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때 결정적인 발언 두 가지가 있었다”면서 “하나는 진보적 보수주의자라는 정체성 문제다. 그가 대통령이 되길 희망한 보수층을 어리둥절하게 했고, 중도층은 냉담했다. 또 하나는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선거 비용 때문에 입당해야 될 것 같다고 얘기한 부분”이라고 했다.

그는 “이후 국민 통합의 리더십과 제3지대에서 보수와 중도를 다 아우르겠다는 메시지로 바꿨지만 국민들은 냉철했다. 가장 핵심 자산이었던 대선주자 지지율은 귀국 이후 계속 하락하기만 했고, 가장 분기점이 됐을 설 이후에는 13%까지 추락했다”고 했다.

김 대표는 “하필 이럴 때 동지로 뭉칠 정치 세력도 없었다. 공산당 아니면 어디든 가겠다던 다수의 새누리당 의원들이 주춤했던 것이다. 국민 지지도가 추락한 반 전 총장은 마지막 승부수로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항해 ‘반문 연대’인 개헌협의체 구성을 정치권에 제안하고, 1일 아침 각 정당 대표들을 만났다. 그러나 일은 그의 생각처럼 풀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결국 반 전 총장은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을 필살기도 없었고, 그와 함께할 동지로 뭉친 정치세력도 없었고, 정치 흐름을 움직일 수 있는 힘도 없었다. 외교관 공무원 출신의 적나라한 한계만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정확하게 2007년 고건 전 총리의 데자뷰였다”고 했다.  

김 대표는 “본인이 얘기했듯이 조금 더 지나서 불출마 선언을 했으면,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대통령 선거가 정말 혼란에 빠질 뻔 했다. 그의 결단은 예정된 것”이라고 했다.

반 전 총장이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 김구 선생의 묘소를 참배하기 위해 계단을 오르고 있다.<사진=연합뉴스></div>
▲ 반 전 총장이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 김구 선생의 묘소를 참배하기 위해 계단을 오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성공한 외교관과 실패한 대선주자

반 전 총장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성공한 외교관으로 평가받기에 부족함 없는 인물이다.

반 전 총장은 서울대 외교학과에 진학해 외무고시에 합격, 역대 정권의 외무부에서 승승장구했다. 외교부에서 최고 요직인 미주국장, 외교정책실장을 거쳤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외무부 1차관보와 대통령 비서실 의전수석비서관, 외교안보수석을 역임한 뒤 김대중 정부에서는 외교통상부 차관에 올랐다. 노무현 정부에서 외교부 장관을 지내고 정권 말기인 2006년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됐다.

반 전 총장은 임기 마지막 해인 지난해부터 ‘충청대망론’과 함께 대선 후보 지지율 수위를 다퉈왔다. 지난해 5월을 기점으로 대선 가도에 본격적으로 불을 붙였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는 방한 기간 김종필 전 국무총리를 예방하고, 보수의 본산인 대구·경북 지역을 방문하는 등 사실상 대선 행보에 나섰다.

반 전 총장의 임기가 다가올수록 그의 지지율은 상승하며 국민들에게 대선주자임이 확실히 각인됐다. 임기 마지막까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앞서 있을 정도였다. 1월12일 귀국 이후에는 일거수일투족이 뉴스가 되는 등 문 전 대표를 긴장케 하는 유일한 후보로 평가됐다.

그러나 귀국 이후가 문제였다. 대선 행보 내내 가십성 논란에 의연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기자를 향해 내뱉은 “나쁜 놈들” 발언은 캠프 실무진들을 당황케 하기도 했다. 지지율은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때문에 반 전 총장을 두고 정치 세력화를 고심하던 기성 정치인들의 고민이 시간을 두고 이어졌다는 후문이다. 결국 반 전 총장은 정치를 포기했다.

반 전 총장은 “지난 10년간에 걸친 유엔 사무총장으로서의 경험과 국제적 자산을 바탕으로 나라의 위기를 해결하고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위해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헌신하겠다”고 말했다. 정치적 행보는 없을 것이라고 한다.

반 전 총장이 대선 출마를 접으면서 대선 구도는 재편되게 됐다. 반사이익을 누가 누리느냐에 따라 대선 판도가 다시 짜여 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반 전 총장 지지층이 한쪽으로 쏠릴 가능성은 적다. 판세가 급격히 변화할지는 두고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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