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뭣보다도 건강 잘 돌보시고 복 많이 나눠주시기를 여쭙습니다. 

박근혜-최순실게이트로 “이게 나라냐”며 온 국민이 분노에 들끓고, 제대로 된 ‘민주공화국’을 만들자고 1,000만 명 이상이 두 달 넘게 촛불을 들고 있습니다. 초중등학생이 광장에 나와 또박또박 얘기하는 걸 들으며,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 대견하기보다는 미안함과 창피함이 더 컸습니다. 한낱 필부인 제가 이럴진대, 지사님은 어떠셨겠습니까.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 ‘지사님’으로 정했습니다. 혹여 마음에 들지 않으시더라도 지사(志士)적 아량으로 너그러이 혜량해주시기를 청합니다. 

지사님께서 강진 땅 칩거를 마치고 서울에 오신 뒤 기회 있을 때마다 ‘개혁을 통한 국가 대개조’를 강조해 오신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촛불집회 국면이 펼쳐지자 그 누구보다도 힘주어 촛불정신을 역설하신 것도 익히 듣고 있습니다. 저는 촛불광장에서 “개헌” 주장은 거의 듣지 못했습니다만, 지사님께서는 촛불정신의 핵심으로 개헌에 방점을 찍으시더군요. ‘아무래도 정치 감각이 탁월하시니 민심을 그렇게 읽어내신 게 아닌가’라고 그저 추측만 할 따름입니다. 

최근 “반기문 전 총장에게도 문호가 열려있다”며 이른바 ‘빅 텐트’를 제안하셨습니다. 그 빅 텐트의 정체성과 지향점을 놓고 논란이 분분한 가운데 범야권에서 파열음이 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파열의 방식이나 양상이 건강한 토론이라기보다는 티격태격하는 예전 방식 그대로여서 몹시 아쉽고 실망스러워, 비록 둔탁한 필이지만 감히 들었습니다. 티격태격의 원인이 어느 한쪽에만 있지는 않겠습니다만, 지사님께서 ‘선 개헌’을 고리로 빅 텐트 깃발을 드셨으니 지사님께 먼저 여쭐 수밖에 없군요. 이런 식으로 티격태격할 거면 뭐하러 저 멀리 강진 흙집에 그렇게 오랫동안 가계셨나 싶기도 합니다.

직접 말씀하신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1월말 야권 빅뱅설’이 들려오더군요. 촛불정신을 누구보다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만, 그 촛불이 빅뱅을 빅‘팽’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시민들은 지금은 개헌보다는 개혁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제가 시민들의 의중을 잘 못 헤아리고 있는 건가요?
 
지사님. 
지사님께선 이제 깊은 역사적 안목과 경륜을 실천으로 보여주실 연배십니다. 촛불을 두 달 간이나 보시고도 지금같이 주장하시는 걸 보면서, 요즘 유행하는 말로 상당히 “우려”스럽습니다. 

자신을 던져 하나로 묶어낼 때 ‘흙집 시절’이 의미를 얻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반대로 가고 있으십니다. 주장하시는 ‘개헌 기반  통합’은 지향점과 공유가치가 모호합니다. 무엇을 위해, 누가, 왜 통합하려는 건지 의아합니다. 지사님의 행보가 ‘정치적 세 불리기’로 인식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특정세력 배제는 결국 변화요구층의 분열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정적 시기에, 결과적으로, 분열의 진원지가 되려 흙집을 나오신 건 아니잖습니까.

경기고 재학시절 삼총사셨다는 조영래 변호사와 김근태 선생이 지금 살아계시다면 지사님께 뭐라 조언하실지 궁금합니다. 다산(茶山) 정약용을 존경하고 강진 산천을 끔찍이 사랑하셨다니, 다산 정신을 다시 한 번 가다듬어보시는 건 어떠실지요. 

안희정 충남지사가 “손학규 전 대표는 어떻게 정치적 동지가 해마다 바뀌느냐”고 말했더군요. 버릇없는 후배라 여기실 수도 있겠으나, 왜 ‘새까만’ 후배에게서 그런 말까지 나오는지도 한 번쯤은 생각해보시는 게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주창하시는 ‘제7공화국’은 구체제 대청소와 개혁을 통해 비로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개헌, 물론 필요합니다. 저도 적극 찬성합니다. 그러나 현 단계는 개헌보다는 우선 ▲개혁의 방향을 정하고 ▲완급 로드맵을 수립하며 ▲개혁 추진동력을 어떻게 유지하는가가 시급하고도 절실한 문제라고 보는데, 지사님의 고견은 어떠신지 여쭙습니다. 

일단은 개혁작업을 위한 단일대오를 만드는게 유력 정치인이자, 위기 때마다 야당의 구원투수로 나섰던 분으로서 촛불국민들에 대한 응답이자 민심 부응 아니겠습니까. 이 역사적 과업에 솔선수범하시는게 원로분들의 역할 아니겠습니까. 권위주의는 청산되어야 하지만 ‘권위’는 바로 세워야 한다고 봅니다. ‘권위 있는 어른’을 마음속에 계속 모시고 싶은 것은 비단 저만은 아닐 듯합니다.   

새해, 더욱 건강하시고, 우리 정치사에 의미있는 족적 남기시기를 소망합니다.

                                                 2017.1.5. 필부 이강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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