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우병우 청와대 전 민정수석이 국정조사 청문회장에 출석한 가운데 청문회위원장이 개의를 알리는 의사봉을 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 지난 22일 우병우 청와대 전 민정수석이 국정조사 청문회장에 출석한 가운데 청문회위원장이 개의를 알리는 의사봉을 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올해의 보도사진 하나를 고르라면, 건물 옥상에서 내려찍은 장엄하기까지 한 ‘촛불바다’ 장면이리라. 필자는 다른 사진 하나를 추가하고자 한다. <박근혜정부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사건>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한 우병우 청와대 전 민정수석을 청문위원장 바로 뒤에서 잡은 사진이다. 청문회 개시를 알리는 위원장이 의사봉을 내리치는 장면을 포착한 건데, 타이밍이 기가 막히다. 의사봉 나무망치가 우 전 수석 머리 위에 오기 직전 눌려진 셔터. 촬영기자의 감각과 순간포착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수작이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 
필자는 그의 이름 정도만 들어봤을 뿐, 검사 시절이나 청와대 재직 시절의 그를 취재해본 적이 없어 그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지난 22일 청문회장을 14시간 동안 집중 관찰한 결과, 듣던 대로 빈 틈 없이 치밀하고, 총명하고, 주어진 일은 뭐든 족족 잘 했을 것이라는 점,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그를 곤혹스럽게 만든 청문위원은 국민의당 김경진 의원이 유일했다. 그것도 결정적 증거로 꼼짝 못하게 했다기보다는, 후배 검사로서의 개탄과 심문테크닉으로 그를 잠시 흔들리게 했다. 수사권이 없는 국회 청문회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자, 그날 청문회의 성과이기도 하다.
 
우병우 씨는 창피는 좀 당했지만 ‘방어’에는 일단 성공했다. 직접 들은 건 아니지만 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산회 중 몇몇 기자에게 “우병우, 과연 세다 세”라고 했다는데, 사실이라면 그 말 한 마디가 그 날 청문회 상황과 ‘인간 우병우’를 잘 함축하고 있다. 그러나 ‘승패’로 따지기엔 분노와 아쉬움, 씁쓸함과 답답함이 너무 많은 청문회였다.  

우 전 수석이 자신은 결코 잘못이 없다고 확신하는 이유도 알 수 있었다. 맞다. ‘총애 받은 호위무사’라는 점만으로, 시건방지고 안하무인이었다는 점 때문에 처벌받아서는 안된다. 누가 됐건 그런 이유로 처벌받아서는 안된다, 욕이야 먹겠지만. 그 날 그의 태도를 보니 ‘그런 욕이야 뭐 신경이나 쓸까’ 라는 생각이 필자에게만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의 가장 큰 잘못은, 자신에게 주어진 논리나 질서를 뒤집어보기보다는 따르는 쪽을 택해온 게 아닌가 싶다. 그는 그것을 ‘적응’이나 ‘규칙준수’라고 생각했겠지만, 필자 눈에는 순치나 자발적 타협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순치, 공직자로서는 잘못이다. 결과에 따라서는 처벌받을 수도 있는 잘못이다. 순치나 자발적 타협이 공동체에 손해를 끼치는 경우 처벌받는 게 당연하다. 그게 국록을 먹는 공직자다. 

검사와 청와대 민정수석으로서 그의 최대 잘못은 ‘주인을 잘못 알았다’는 점이다. 그러니 그는 공직 부적격자였다. 그는 직속상급자나 인사권자만 쳐다보느라 주인을 잊거나, 착각하거나, 심지어 주인을 물려하기까지 했다(아직 혐의입증이 안됐으므로 이렇게 밖에는 쓸 수 없다). 그런데 실은 우리나라 공직자들의 70% 안팎이 이러하다. 자기 주인이 누군지 모른다. 차상급자나 기관장이 주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경우가 열 중 예닐곱이다. 상급자의 인사고과권 때문에 주인을 착각한다. 이 점 고치지 못하는 한, 누가 집권한들 이 나라의 싹수는 밝지 못하다. 두 달 째 시민들이 광장에서 목이 터져라 외치는 “민주공화국”은 요원하다. 

우병우 씨. 
이번에 처벌까지는 받지 않을 것이다. 특검이 그를 수사할지, 한다면 구체적 혐의입증을 어떤 증거로 해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청문회장에서의 그의 진술태도와 방어논리로 미뤄보건대 처벌에까지 이르는 혐의입증은 어려울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는 화려한 경력과 뛰어난 재주를 살려 앞으로도 잘 살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가 매우 짠하다. 그 총명함과 치밀함에 공동체의식과 검사로서의 기개가 겸비됐더라면 큰 일 했을 사람으로 보이던데, 여러 방면에서 부족할 것 없다던 그는 무엇에 자신을 넘겼을까. 권력욕? 대통령의 총애 때문에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머리 조아리고 눈치보게 되는 그 권력욕? 중독되면 어떤 주사로도 고치지 못하는 그 권력욕? 

청문회를 통해 국민들은 한 영재의 추락을 생생히 지켜봤다. ‘당신들의 창으로 뚫을 테면 뚫어봐라, 내 방패는 결코 뚫리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강고한 자기변호와 항변을 보면서, 실정법 상 무죄임을 항변하는 그의 섬찟한 강고함을 보면서, 사람들은 마음속으로는 이미 유죄를 판정하지 않았을까. 그가 일정부분 시인하고 사과한 직무유기로 처벌받게 될지, 비판 사유는 되지만 현행법으로는 처벌불가라는 결론이 나올 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병우 씨를 통해 우리는 나라의 공직자가 어떠해야 하는지 하나는 똑똑히 인식할 수 있었다. 그를 보면서 교육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는다. 성적 말고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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