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이해선 기자] 행복한 삶을 위한 최선의 길. SPC그룹의 경영이념이다. 국가의 이익과 국민의 행복을 뜻하는 ‘국리민복(國利民福)’은 이 기업이 창사 이래 지켜왔다고 내세우고 있는 기업정신이며 경영 철학이다.

하지만 SPC그룹의 이 같은 경영철학은 비상 상황에서 지켜지지 못해 그 빛이 바라게 됐다. 국가의 이익과 국민의 행복을 위해 최선의 길을 간다던 기업 이미지에 ‘사재기’라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가 붙게 된 것이다.  

국내 제빵산업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는 최대 제빵업체 SPC그룹이 직원들을 동원해 계란을 사들여 뭇매를 맞고 있다. 회사는 일부 직원이 애사심에서 한 자발적인 행동이라 해명했다. 

그러나 이후 공개된 ‘전사 계란 수급 캠페인’이라는 제목의 대외비 문건에는 “계란 수급을 위해 전 직원을 대상으로 아래와 같이 캠페인을 시행하고자 하니 적극적인 동참을 부탁한다”는 안내문과 함께 구체적인 포장 규격과 품질 규격, 구입처, 결제 방법, 수집 장소, 수집 시간 등이 명시돼 있었다. 

직원이 달걀을 구매해 지하 3층 수집 장소에 가져오면 구매담당자는 영수증을 받은 뒤 구매 직원에게 확인증을 주고 총무팀이 계란 구매 대금을 직원에게 추후 정산해주는 절차도 소개됐다.

SPC그룹의 조직적인 사재기가 사실상 확인된 것이다. 앞서 보도된 거짓 해명은 더 큰 비난 여론을 만들었다.

조류인플루엔자(AI)의 영향으로 ‘계란대란’이 벌어진 상황에서 국내 최대 제빵업체가 사재기를 하려 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일반 소상공인들에게는 허탈한 소식이 아닐 수 없는데다 거짓 해명을 내놨다는 ‘괘씸죄’가 적용된 탓이다.

소상공인연합회는 22일 성명서를 통해 전 국민이 고통을 겪고 있는 가운데 직원들을 소비자로 위장해 사재기에 나선 SPC의 행태를 비판하고 나섰다. 이들은 소상공인들에 의해 성장한 대표적인 산업인 계란유통 시장에도 SPC그룹이 진출해 영세 소상공인들을 벼랑으로 내몰고 있다고도 꼬집었다.

유례없는 AI 급속 확산이 크리스마스 대목을 앞둔 제빵업체들에게 긴박한 상황임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문제다. 프랜차이즈업체인 만큼 가맹점들의 사활이 달려있다는 것도 알겠다.
 
그러나 대형 업체가 직원들을 동원해 사재기를 시도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소비자의 몫임은 분명하다.

연말연시를 맞아 기업들은 사회공헌활동이 한창이다. ‘이웃과 함께’ 라는 수식어를 붙인 채 연탄을 나르고 식료품을 나누고 있다. SPC그룹 역시 불과 며칠 전 사회공헌활동을 대대적으로 홍보한 바 있다.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 보여준 SPC그룹의 행태에 느끼는 실망감은 비단 기자만의 것은 아닐 거라 생각된다.

사람은 위기 상황에서 진면목을 드러낸다고들 한다. SPC그룹이 이번 AI 사태를 맞아 보여준 모습이 이 기업의 진면목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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