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의원이 여권재편의 ‘핵’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여권의 핵심기반인 대구경북(TK)의 정치적 향배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연말정국을 장식했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분당되는 야권재편과정에서 야권의 중심인 ‘호남’의 선택이 핵심변수 역할을 했던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박 대통령 탄핵과 함께 TK는 사실상 ‘정치적 진공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여권 재편의 향배는 어느 정치세력이 ‘진공’이 된 TK의 민심을 잡느냐에 달려 있다. 유승민 의원은 새누리당 뿐 아니라 여권 정치지도자 중 ‘진공 상태’의 TK에 정치적 기반을 확보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 바로 이 때문에 유 의원이 ‘박근혜 이후’ 여권재편의 중심이 되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의 ‘유승민’은 가능성만 입증됐을 뿐 ‘TK의 지도자’는 아니다. ‘유승민’은 ‘가능성’이란 ‘싹’을 틔었지만 열매를 맺을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바로 이 때문에 ‘유승민’을 둘러싼 친박계의 정치적 이해와 비박계의 정치적 이해가 충돌하고 여기에 ‘유승민’ 개인의 정치적 이해까지도 얽혀 있다.

‘친박’의 속내는 유 의원이 ‘TK 맹주’가 되는 것을 ‘최악’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비대위원장으로 유 의원을 앉히는 것을 반대한다. 유 의원이 비대위원장으로 전권을 행사할 경우 ‘진공상태’의 TK 민심이 유 의원 쪽으로 쏠리며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악몽(惡夢)이다. 유 의원이 TK 민심을 업는 순간 그가 TK를 넘어 여권진영의 리더가 부상하면서 친박계는 정치적으로 소멸할 수 있다.

친박은 유 의원에 전권을 가진 비대위원장직을 주기보다는 비록 위험부담이 크지만 유 의원의 탈당이 차라리 낫다고 본다. 이것이 비록 비주류의 세를 확산시키는 기폭제가 돼 비박계 신당이 여권재편의 주도권을 행사하도록 할 수 있지만 친박계는 여권의 핵심기반인 ‘TK’를 완전히 내주는 것은 아니라고 자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친박’은 분당 국면에서 유 의원을 당내 비주류로 가둬 놓은 것을 ‘최선’으로 보고 있다. 유 의원이 TK 맹주를 노리는 한 새누리당 탈당을 감행하기 어려운 정치적 현실을 최대한 활용해 그를 적당히 주저앉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유승민’의 정치적 거세과정이기도 하다.

‘비박’은 ‘유승민’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유 의원과 동반 탈당하지 않을 경우 여권의 핵심기반인 ‘TK’를 통째로 친박에 넘겨주는 것이 돼 차기 대선에서 정치적 역할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유승민 동반 탈당이 전제되지 않을 경우 비박계의 탈당규모 또한 크게 위축된다.

‘유승민’은 새누리당에 남아 자신이 당 혁신을 이끄는 것이 ‘최선’이다. 이를 통해 진공상태의 ‘TK’를 접수하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 그러나 이는 친박계의 정치적 생명이 걸린 문제이기에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유승민 비대위원장 제안을 두고 “내 목을 치겠다는데 목을 내놓을 사람은 없다”는 말까지 한다.

친박계가 절대 안 된다고 반발하지만 분당으로 여권재편의 주도권을 비박계에 넘길 수 있다고 판단할 경우 ‘유승민’을 붙잡을 수도 있다. 이 경우 최경환 등 친박 핵심에 대한 ‘육참골단’을 각오해야 한다. 이는 친박계의 결단과 맞물려 있는데 친박계가 유 의원에게 비단길을 깔아줄 리 없어 보인다. 다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영입이 매개가 될 경우에는 정치적 타협은 나올 수 있다는 예상이다.

‘유승민’이 비대위원장직을 맡지 않을 경우 지금처럼 새누리당 테두리에서 갇혀 있는 것은 ‘최악’이다. 존폐기로에 서 있는 새누리당 속에서 언젠가 자신이 전권을 휘두를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란 희망으로 움츠릴 경우 정치 지도자로서 온당하게 평가받기 어렵다. 설사 그러한 기회가 올 경우 재생 불능의 정당으로 전락했을 경우나 자신이 친박계의 품에 안겼을 경우다.

또 유 의원은 공화국의 가치를 내걸면서 박근혜 정부와의 단절을 자신의 ‘정치적 비전’으로 국민에게 제시해왔다. 그런 그가 친박계가 주도하는 정당에서 남아 기회를 엿보겠다고 하면 ‘기회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친박계가 ‘유승민’을 비대위원장으로 수용하지 못할 경우 유 의원의 차선의 선택은 비박계와 함께 탈당하는 길이다. 지금 비박계도 이를 정말 간절하게 원하고 있다. 그러나 유 의원 개인으로 보면 정치적인 모험일 수 있다.

겨우 ‘싹’만 틔운 ‘TK 지도자’가 과연 제대로 된 ‘지도자’로 갈 수 있는 지를 가름할 ‘정치적 시험대’가 필요한 시점이지만 온실 울타리를 벗어나 과연 자신의 정치적 강점을 살릴 수 있을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유 의원은 같이 탈당을 감행하는 비박계 내에서 자기세력이 취약하다. 따라서 자칫하면 ‘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만고만한 정치적 역할에 갇히거나 차기 대선국면에서 이리저리 휩쓸리면서 존재감을 잃어갈 가능성도 있다. 집 나간 아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TK’가 아무리 진공상태라 해도 유 의원을 자신의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유 의원에겐 ‘사망선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