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오후 2시30분 청와대에서 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사진=연합뉴스>
▲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오후 2시30분 청와대에서 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사진=연합뉴스>

결론부터 말하겠다. 새누리당 비박계 동향 살피느라 탄핵 늦추는 게 혼란의 시작이다. 지난달 29일 대통령의 ‘마지막 담화’는 일고의 가치도, 대꾸할 필요도 없는 탄핵교란책이다. 95%라는, 전무후무할 압도적 국민의 요구에 도저히 맞설 수 없기 때문에 여야 대립구도로 바꿔 탄핵만은 면하고, 퇴임 후 신변보장까지도 시도해보는 노림수다. 정치권이 “임기단축”이라는 헌법 파괴적 덫에 걸려 정치적 협상에 들어간다면 이 국면의 역사성을 망각하는 것이다. 백가쟁명식 얘기가 꼬리를 물고, 탄핵안 부결을 무기로 국면을 바꾸려는 청와대와 새누리당 친박계의 노림수에 걸려든다면 “구체제 타파”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결집된 동력을 약화시키는 정치적 과오다. 물론 현재 흐름으로 봐서는 국민들 분노가 비등점으로 치달아 여지껏과는 질적으로 다른 상황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새누리당 비박계 일부의 이탈로 탄핵안이 설령 부결되더라도 야권은 정치적 패배로 간주할 일이 아니다. “새누리당과 협상 없음”을 선언하고 재추진하면 된다. 필요할 경우 임시국회 소집 후 재발의까지도 각오해야 한다. 탄핵안이 부결되면 국민들 분노지수는 극에 달할 것이다. 

새누리당 주류는 투표거부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 투표불참 새누리당 의원들 명단 공개하면 현 정서상 정치적 매장운동이 본격화될 것이다. 비박계들 결국 탄핵연대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왜? 그들은 임기가 아직 3년 6개월이나 남아있으니까. 그리고 어떻게든 정치적 활로를 모색하려 발버둥을 칠 것이니까. 자식 이기는 부모 없고, 국민 이기는 정치인 없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대통령은 4분여밖에 안된 ‘마지막 담화’에서 몇 가지 심각한 내적 모순을 드러냈다. “사익을 추구한 적 없으며 잘못이 있다면 주변 관리를 잘 못한 것일 뿐”이라고 아직도 말하고 있다. 

첫 번째 모순. 잘못한 게 없다면서 왜 ‘임기단축’을 거론하고, 왜 ‘진퇴’를 국회에 맡기는가? 심각한 자가당착이다. 

또 있다. “임기단축”이란 말을 썼다. 퇴진이 아니라는 얘기다. 즉 징계해고 당하는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잘못은 없지만 국민들 여론이 그러하니 “임기를 단축하고 그 임기는 정상적으로 마치는 것으로 해달라”는 얘기다. 명예졸업 시켜달라는 것이다. 이 발상 역시 헌법 파괴적이다. 대통령 임기에 관한 헌법 조항은 탄핵 말고는 없다. 비헌법적 발상인 임기단축을 고리로 개헌을 논의해달라는 요구는 헌법이나 개헌을 주머니 속 100원 짜리 동전만도 못하게 여긴다는 반증이다. 국민 모독이다. 초등학교 반장선거에도 이런 것은 없다. 

“진퇴를 국회에 맡긴다”는 대목도 국민들 의사와 완전히 배치된다. 얼핏 들으면 ‘국회에 모든 것을 맡기고 그 뜻에 따르겠다’는 다소곳한 얘기같다. 사퇴면 사퇴지 왜 ‘진’퇴인가.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자퇴나 퇴학, 즉 ‘퇴’ 밖에는 없는데 왜 진퇴를 거론하는가. 국회가 합의된 임기단축안을 만들지 못하면 직을 그대로 계속 유지하겠다는 얘기다. 이 역시 “나는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오는 말이다. 국민 열 중 아홉 사람 이상이 물러나라고 한 달 째 외치는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서도 정치적 반격을 통해 활로를 모색하는 대통령의 야심찬 의중에, 그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상황 인식을 못하는 대통령에게 계속 ‘상황 강의’만 하는 것은 국력 낭비다. 대통령 한 사람 때문에 국정이 마비되고, 대한민국이 표류하는 것을 방치하는 것이야말로 망국적 행위다. “국회가 정기국회 안에 바로 탄핵을 의결하지 않고 어정쩡하게 시간을 보내면 국민은 광화문이 아닌 여의도로 모일 것”이라는 남경필 지사나 김용태 의원의 지적, 정확하다. 

비교하기에는 너무 오랜 얘기라 이 상황에 단순대입하는 것은 아니지만, 1960년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 성명에서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 ‘3.15 정부통령선거’에 많은 부정이 있다하니 선거를 다시 하도록 지시하였다. 만일 국민이 원한다면 내각책임제 개헌을 하겠다”라고 국정 정상화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엊그제 대통령 담화에는 이런 구체성은 하나도 없었다. 신뢰는 정직함과 구체성에서 온다. 그러므로 대통령 담화는 국민을 우롱한 것이었다. 

야권은 좌고우면할 필요 없이 예정대로 탄핵안을 상정하면 된다. 대통령은 국회가 뽑은 것이 아니라 국민이 뽑았으며, 국민들은 그의 퇴진을 명령하고 있다. 국회가 지금 해야 하는 유일한 것은 국민을 대리해서 탄핵안을 상정하는 것뿐이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의 형사상 유-무죄를 가리는 게 아니라, 공무원이 그 직을 유지하는 게 정당한가를 따지는 것이다. 대외비 공문서를 외부 민간인에게 유출했음은 이미 지난 10월 25일 대국민 담화에서 대통령 스스로 자백했다. 그것으로 탄핵요건은 이미 충분하다. “도둑이 도망가다가 쫓아오는 경찰들에게 돈다발 뿌린 격”이라는 항간의 비판이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다.

지금은 시민이 지도부다. 정치적 이해득실을 계산할 때가 아니라 국민을 믿고 따를 때이다. 대통령의 견강부회 제안을 ‘분석’할 때가 아니라, 국민의 명령을 분석하고 받들 때이다. 그게 ‘촛불 바다’의 역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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