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현대자동차, SK 등 9개 대기업 총수들이 국정조사에 증인으로 채택돼 국회에 출석하게 됐다. 기업들이 비상이 걸렸을 것임은 확인하지 않아도 불을 보듯 뻔하다. 어떻게 해서든 자신들은 권력의 요청에 거부할 수 없는 입장이었음을 강조할 것이다.

일면 틀린 말은 아니다. 사업을 위해 주무관청을 들락거리고 몇 번씩 만나 사정을 해야 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고위 권력자의 요청에 눈과 귀를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런 변명이 ‘특혜 의혹’에 대한 충분한 대답은 못된다. 광복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기업들은 온갖 특혜를 받았고 그 특혜에 대해 또 다른 특혜를 제공하는 이상한 결초보은의 악습이 굳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토록 지적당했던 이른바 ‘정경유착’이다.

대기업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 자금을 지원했다. 심지어 승용차 뒤에 사과박스에 돈다발을 싣고 가 다른 차에 옮겨 싣는 대담한 일까지 벌였다. 어느 기업이 대선 자금으로 얼마만큼의 돈을 줬는지는 항상 국민의 관심사가 돼버렸다. 이런 무의미한 일로 국민의 정신력을 쓸데없는 곳에 소모시켰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기업과 권력은 이렇게 서로를 돕고 도우며 실익을 챙겼다. 특혜와 비리가 난무했고 온갖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다가 뭔가 사건이 터지면 대기업들은 납작 엎드렸고 무조건 잘못했다고 머리를 숙였다. 국민은 속는 셈치고 또다시 기업과 권력을 믿어줬다.

그러나 이번은 어물쩍 넘어갈 수 없을 만큼 중대한 사안이 발생했다. 대통령이 민간이 운영하는 재단 설립을 위해 모금을 지시하고 경영권 승계, 총수 사면, 총수 형제 간 분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기업들은 이를 해소해 달라고 돈을 냈다는 의혹에 사로잡혔다. 이 같은 의혹이 사실로 들어날 경우 정권과 기업 모두 국민의 심판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초일류 글로벌 기업을 지향하는 기업은 세계인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그래도 매를 맞아야 한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경영했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지만 그런 ‘못된’ 것만 배운 현재의 총수라면 법적 처벌과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환골탈태 해야만 한다. 지금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경제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서는 중소·중견이 튼튼해져 뼈대를 잘 잡아야 하지만 대기업의 힘도 분명 필요하다.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수출하고 내수 시장을 다시금 일으켜 세워야 한다. 많은 이들이 대기업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대기업 자체가 아닌 그릇된 인식을 가진 일부 총수들이다. 우리 국민은 언제든 열심히 노력해 글로벌 시장을 제패하는 기업에 박수를, 뼈를 깎는 고통 속에서도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기업에는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이 있듯이 대기업 총수들도 ‘여기까지 왔는데 어떻게 다시 돌리냐’고 걱정하지 않았으면 한다. 진심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쇄신의 의지를 보인다면 국민들도 조금씩 지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은 ‘채찍’을 들 수도 있지만 언제든 ‘격려’를 할 준비가 돼있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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