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진해운의 미주노선 영업망 인수를 놓고 SM그룹이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현대상선이 우선협상자가 될 것이란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이를 두고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은 21일 “SM그룹의 한진해운 미주노선 영업망 인수는 한진해운의 전체성과 가능한 많은 인력·영업망을 보존하는 차원도 있다”고 말해 한진해운 구성원을 그대로 떠안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피인수 기업의 직원에 대한 고용 승계는 언제나 뜨거운 감자였다. 이 때문에 한진해운 직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부의 오락가락한 행보에 대해서는 반드시 명확한 설명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부는 해운업계의 인수·합병(M&A)를 통해 대형 국적선사 1개를 키우겠다고 공공연히 밝혔다. 6개월 전만 해도 정부는 위기에 처한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처리를 놓고 고심했다. 이 과정에서 업계에서는 한진해운이 현대상선을 인수해 대형 국적선사가 될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한진해운은 법정관리를 맞았고 용선료 협상을 잘 마무리한 현대상선은 정상화 작업에 들어갔다. 이에 정부는 법정관리에 처한 한진해운의 자산을 매각케 하고 오히려 미주노선을 매물로 내놓았다. 업계는 또다시 현대상선을 유력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지목했다. 처지가 완전히 바뀌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SM그룹이 한진해운 미주노선 영업망 인수를 코앞에 두게 됐다. 벌크와 LNG선을 중심으로 한 대한해운을 보유하고 있는 SM그룹이 해운부문 사업다각화를 이루기 위해 한진해운 미주노선 영업망 인수전에 뛰어든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려가 앞선다. 현재 글로벌 해운업계는 ‘제살 깎기식’ 출혈 경쟁을 벌이고 있다. 세계 최대 해운사인 머스커(MAERSK)는 가격 인하 정책을 펼쳐 경쟁력 없는 해운사를 도태시켜 해운업계를 재편하겠다는 계획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운임은 계속 낮아지고 있다. 모두들 살아남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며 비용을 줄이고자 하는 상황에서 노하우가 없는 노선을 인수하는 것은 자칫 ‘승자의 저주’로 다가갈 수 있다.

더욱이 선복량 50만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를 확보하겠다는 SM그룹의 계획에는 우려가 아닌 불안감이 들 수밖에 없다. 50만TEU는 현재 현대상선의 선복량보다 크다. 선박을 새롭게 건조하든 배를 빌리든 50만TEU를 확보할 경우 단번에 글로벌 해운업계의 수위권에 이를 수 있다. 풍부한 자금력이 있다면 가능하겠지만 비용을 감당하기에 시장 상황은 끝모를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대규모 투자를 감행할 수 있을지, 언제쯤 수익을 낼 것으로 예상하는지조차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동안 해운업계를 출입하면서 보유 선박수와 거미줄처럼 퍼진 영업망이 성공의 필수충분조건이 아님을 느꼈다. 얼라이언(동맹) 회원사 간의 유기적인 노선 연결, 협력업체와의 관계, 다양한 노선 개발 등이 오히려 필수조건 중 필수조건이었다. SM그룹이 미주노선 영업망을 가져온다고 해서 이 모든 것이 한번에 해결되지는 않는다. 여기에 기업문화의 동질성을 이루기 위해서는 중간에 불협화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정부의 해운업 구조조정 계획에 SM그룹의 한진해운 미주노선 영업망 인수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정부가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는 않고 있음에는 틀림없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동시에 어려움을 겪으며 대한민국 해운업의 명예가 추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조건 입찰가를 많이 써내고 그럴싸한 계획만을 냈다고 해서 무조건 이를 믿어서만은 안 된다. 정부는 좀 더 적극적으로 인수 능력과 향후 시너지도 고려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초대형 해운사를 따라가기 바쁜 국내 해운사들은 또다시 공멸의 위기를 겪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연 이 책임은 누가 질 것이며 책임을 묻기 전에 풍비박산 난 대한민국의 해운업을 상상하니 두려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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