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뒤늦은 소통 코스프레에 속을 사람이 있을까
10월 29일 서울의 청계광장을 메운 수만의 시민들이 대통령 하야를 외치며 밤늦게까지 거리행진을 펼쳤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일방적으로 노무현 정부에서 요직을 지냈던 김병준을 총리로 내정 발표하고 11월 4일에는 2차 사과담화문을 내놓았다. 여전히 모든 책임을 최순실에게 떠넘긴 채, 자신은 국가가 비상한 상황이니 흔들림 없이 국정을 수행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11월 5일 광화문 광장에는 수십만 시민이 다시 모여 대통령 퇴진을 소리 높이 외쳤고 밤늦게까지 시위행렬은 계속되었다. 사태의 본질을 외면한 채, 모든 권력을 놓지 않고 국민의 분노가 잦아들기만 기다리는 것 같은 대통령의 행보는 활활 타고 있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것처럼 보였고 사태 해결에 일말의 책임이라도 나눠야 할 새누리당은 친박, 비박으로 나뉘어 죽기 살기로 싸울 뿐 국민들에게 아무런 해법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은 더 늦기 전에 광장에 모인 분노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스스로의 거취에 대해 결단을 해야 할 것이다. 다가올 11월 12일에는 더 많은 국민들이 다시 결집할 것이고 사태는 점점 더 심각한 국면으로 치달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지금이라도 대통령이 모든 권한을 내려놓고 국회에서 여야가 국민의 뜻을 받들어 결정하는 방향대로 따르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것이 그나마 최악을 모면할 수 있는 선택이라 보인다. 국민적 신뢰가 땅에 떨어져 5%대의 지지율을 간신히 유지하는 상태에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아무 것도 없다. 대통령이 강조하는 바대로 지금 나라는 안팎으로 위기상황이고 시급한 국정현안이 산적해 있는 것 또한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더 더욱 좌고우면하거나 허둥지둥 댈 여유가 없다. 국정의 공백을 우려한다고 하지만 지금이 상태가 지속되는 것만큼 더 큰 공백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전 대표도 광장의 시민들 소리에 답해야
1,2차 촛불집회가 진행이 되었지만 제1야당인 민주당은 참여하지 않았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1차 촛불집회부터 꾸준히 참석하고 있고 박원순 서울시장도 2차 촛불집회에 합류했지만 민주당의 지도부나 문재인 전 대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문재인 전 대표는 이 비상한 상황에 대해 대통령의 조속한 결단을 촉구하는 입장을 밝혔고 각계 원로들로부터 조언을 구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런데 무엇보다 가장 시급한 것은 이 시점에서 원로들의 조언을 듣는 것보다 광장에 운집한 국민들의 분노와 함께하고 그 속에서 답을 구하는 것이라 믿는다. 자칫 역풍이 불지도 모른다는 우려나 상황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주저하는 것이라면 이 거스를 수 없는 도도한 시대정신을 이끌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스스로 되물어야 할 것이다. 1980년 서울의 봄, 1987년 6월항쟁에서 보여준 정치권의 모습을 다시 반복한다면 역사의 세찬 물결에 쓸려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