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씨가 31일 오후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최순실 씨가 31일 오후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행정부 수반이자 국가원수로서의 자격과 권위, 신뢰를  상실해 실질적인 국정공백 상태에서 최순실 씨에 대한 수사가 시작됐다. 이 와중에 청와대는 “대통령이 흔들림 없이 국정을 이끌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아직도 사태의 심각성과 민심의 소재를 읽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여당에서조차 나오고 있다. 

이번 ‘박-최 국정농단 게이트’의 본질은 대통령과 최순실 일 개인 사이의 기형적 유착관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하고자 한다. 드러난 현상은 무속인 부녀에게 40년 가까이 홀린 대통령의 ‘최면상태에서 비롯된 국기문란’이지만, 문제는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도록 방치되어왔다는 점과, 그런 비상식적 유착관계를 알거나 최소한 짐작은 하면서도 기득권을 위해 눈 감고 대통령을 앞세워 기생해온 세력이 엄존한다는 점이다. 최순실씨 수사는 대통령과 최씨 일가의 유착과 실정법 위반 죄상을 밝히는 것이겠지만, 그 수사가 역사적 의미를 획득하려면, 이 비정상적 유착을 온존시킨 장기간의 구조에 대한 ‘대청소’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 ‘민주공화국’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현 상황의 타개방안을 놓고 하야와 탄핵(퇴진), 거국내각 등 크게 세 갈래로 나뉘는 양상이다. 하야와 탄핵은 대통령 직무를 즉시 중지시키는 것이고, 거국내각은 대통령 임기와 국가원수의 지위는 보장한 채 직무와 권한의 상당부분을 제한하자는 것이다. 주권자들 분노의 강도와 패닉의 정도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냉정하게 따져 볼 대목이 있다.

우선 하야 요구다. 대통령이 최소한의 체면을 지키면서 스스로 직에서 물어나라는 이 요구는 이승만 대통령의 전례가 있긴 하나, 현 청와대의 기류나 자세로 볼 때 실현가능성이 높아보이지 않는다. 물론, 국민적 분노가 비등점을 넘어 폭발점에 이르러 대통령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된다면 알 수 없는 일이다. 

둘째, 탄핵 요구다. 국회 몫이다. 재적의원 2/3 이상이 찬성하고, 헌법재판소에서 통과되어야 한다. 새누리당을 제외한 야권 전체와 무소속 의원이 다 찬성한다 해도 30석 가량이 모자란다. 새누리당 내 이탈자가 합세해서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해도 헌재 결정이 남아있다. 탄핵안이 최종적으로 성취되리라고 장담하기 힘든 지점이자 이유이다. 만일 탄핵안이 최종적으로 부결될 경우, 국기문란자들에게 결과적으로 정치적 면죄부를 발급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하야건 탄핵이건 간에 이뤄진다면, 헌법 제68조 제2항에 따라 궐위일로부터 60일 이내에 대통령선거를 치러야 한다. 60일은 대선을 치르기에 물리적으로 대단히 빠듯한 시간이다. 박-최 게이트의 전모가 채 다 밝혀지기도 전에 뒷 페이지로 밀려나고, 상황은 대선으로 완전히 빨려들어갈 공산이 농후하다. 전대미문의 국기문란 때문에 치러지는 대선이므로 현 여권이 승리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들 짐작할지 모르나, 많은 문제점이 제기되는 현 헌법체제 아래서 새 정부가 시작될 수밖에 없다는 문제점도 고려해야 한다. 물론 새 정부가 시대에 맞는 방향으로 개헌을 주도할 수는 있겠지만, 허다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현 체제라는 ‘동굴’로 일단 들어가야 한다는 점에서 고민이 필요하다. 

셋째, 거국내각이다. 이는 당연히 책임총리를 전제한다. 여야 합의로 거국내각을 구성함으로써 국회가 실질적으로 국가운영을 담임하는 형국이다. 비상 중립거국내각이 현 대통령 임기까지 국정을 맡고 내년 말 치러질 19대 대선을 관리해야 한다. 책임총리와 국무위원 구성 과정이 순탄하게 진행될 수 있을지 지극히 의문스럽다. 시일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이 안 역시 신중한 접근과 고민이 필요하다. 거국중립내각이 명실상부한 역할을 해내려면 현 상태 수습의 최우선 조건인  ‘박-최 게이트 진상규명’을 위해 수사조직(검찰)을 완전하게 통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문제점들로 인해 탄핵이냐 하야냐, 거국내각이냐의 논쟁은 접점을 찾기가 지난하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어서 실망스럽기까지 하지만, 이 논쟁이 분열적으로 전개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다시 강조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적당한 선에서 꼬리자르고 현 구조를 유지시키려는 움직임 때문이다.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시급한 사항은 박-최 게이트의 전모를 낱낱이 밝히는 것이다. 그 작업을 현 검찰특별수사본부에 맡길지, 아니면 상설특검에 맡길지, 별도특검으로 갈지가 또 다른 논란 사항이다. 어떤 형태의 특검이냐를 두고 시일을 보내면 진상규명의 추동력이 약해질 가능성이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반동적 공세도 상정할 수 있다. 별도특검에 현실적으로 좀 더 많은 절차와 시간이 걸린다면, ‘이명박대통령 사저 특검’의 전례에 따라 상설특검으로 가되, 야권의 특검추천권 확보가 ‘현실적 측면’에서 현명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국기문란에 대한 주권자들의 분노와 비판을 에너지원으로 국정농단 기득권층의 죄상을 밝히고, 그를 통해 ‘인식상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정상화시켜 새로운 체제로 나아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죄상을 밝히는 것이다. 설마 최순실 개인 혼자의 힘으로 이 어마어마한 장기간의 국정농단이 이뤄졌겠는가. 이것은 구조의 문제이자, 체제의 문제이다. 최씨 일문을 끼고, ‘불쌍한 천애고아 영애’를 앞세운 세력을 낱낱이 밝혀야한다. 탄핵이나 하야 또는 거국내각은 진상규명 이후에 방향을 정해도 늦지 않다. 역설적이지만, 박-최 게이트가 중대한 모멘텀을 제공했다. 구조화된 비정상을 일소할 천재일우의 기회이다. 박-최 게이트 수사를 통해 국기문란자들의 전모를 백일하에 드러내고, 국민적 합의에 따른 대청소에 이를 때, 명예혁명으로 일컬어지는 ‘87년 시민항쟁’은 비로소 진정한 완성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최면상태에 빠져 지내왔다는 대통령과 최씨 일문 간 40년 동안의 비상식이 계속 드러나다 보니 국민들은 급기야 자신들의 상식체계를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집단적 패닉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박-최 게이트를 두 개인 간의 비정상적 일탈로 치부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꿰뚫지 못한 것이다. 구조화된 병소를 도려내는 것만이 이 사태 해결의 첩경이자 국민치유책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대한민국은 무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