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지난 역사에서 무엇을 기억하고 있나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후보일 때 EBS 방송국을 방문하여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자신은 “이공계 였지만 역사같은 과목을 좋아했다”면서 “역사를 잊으면 역사의 보복을 당한다”고 했다고 한다. 지금 국민들 앞에 벌어지고 있는 이 참담한 국기문란, 국정농단 사태를 목도하면서 과연 대통령이 잊지 않고 있다는 그 역사의 실체가 무엇인지 너무나 궁금하다. 최순실이 국가 기밀에 해당하는 내용들까지 사전에 입수하여 수정을 했다는 사실을 대통령 스스로 인정하고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들불처럼 타오르고 있는 국민적 분노를 막을 수는 없었다. 급기야 대통령 국정수행에 대한 지지도가 10%대로 추락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지만 아직도 대통령과 청와대 측근 참모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원종 비서실장이 국회에서 ‘대통령도 피해자’라고 하면서 “좀더 꼼꼼하고 상세하게 챙기자는 순수한 마음에서 이렇게 됐다는 심경까지 밝혔다”고 박 대통령을 적극 감싼 것을 보면 사태를 수습하기는커녕 기름을 끼얹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 말기에 접어들어 측근인 차지철이 호가호위하는 것을 방치하고 자신은 주색에 빠져들었다가 권력 내부의 이반으로 붕괴되었던 사실만큼이나 박근혜 대통령이 잊지 말아야 할 역사가 더 있을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자신이 어려웠던 시기에 함께 했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책임을 질 수 있는 자리에 있지 않은 사인에게 대통령 선거운동에서부터 취임 연설문 작성, 그리고 국가 기밀에 해당하는 각종 외교문서에 이르기까지 사전에 검토를 받았다는 것은 보도들이 나오는 것 자체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전근대적인 국정운용 행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보좌하기 위해 방대한 조직이 운영되고 있고 각급 사정기관이 작동하고 있지만 어느 한 곳에서도 이 같은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문제제기가 없었다는 사실 앞에 절망감을 떨치기 어렵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이만큼 밝혀진 것은 언론사들의 집요한 탐사 취재의 결과라 할 수 있는데 대통령의 친인척이나 지인들을 관리해야 할 민정수석실이나 검찰은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미르, K스포츠 재단 문제가 터져 나오고  대기업들로부터 이들 재단의 출연금을 거두는 과정에서 권력이 작동했다는 의혹이 나왔지만 집권당인 새누리당은 결사적으로 이들을 국회의 국정감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대통령 연설문이 유출되었다는 보도에 대해 기자들이 질문을 하자 "나도 친구에게 연설문 수정 물어본다“면서 끝까지 대통령과 최순실을 감싸려하던 모습도 우리 국민들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의 한 대목일 것이다. 그동안 독일에서 숨어 지낸 것으로 알려진 최순실이 오늘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문서 유출 의혹에 대해 "당선 초기 이메일로 받아본 것 같다"고 시인했지만 "국가기밀인지도 몰랐다"며 발뺌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최순실은 ”약 먹고 죽을 수 있다“는 협박성 발언을 하면서도 "비행기를 탈 수 없을 정도로 신경쇠약에 걸렸다"고 말하고 있는데 현재로서는 한국에 귀국할 마음이 없다는 것으로 보인다. 언론사가 이미 소재를 파악하여 인터뷰까지 하는 상황에서 검찰은 이미 대부분의 증거가 인멸된 상태에서 뒤늦게 압수, 수색에 나서는 등 뒷북을 치는 인상마저 주고 있다. 
 
이제라도 더 늦기 전에 사태수습에 나서야 

지금 국민들은 참담한 자괴감에 빠져 있다. OECD에 가입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2차세계대전 이후 출범한 국가 중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나라라는 자부심을 안고 살아왔는데 일순간 그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말았다. 국가 시스템이 마비가 되고 대통령과 친하다는 것 이외에 아무런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국정을 철저하게 농단해 왔고,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은 꼭두각시 놀음을 하고 있었다는 것에 대해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그렇지만 한탄만 하기에는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 너무나 숨막히고 무겁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수출부진과 가계부채 누증 그리고 조선, 해운업 등의 추락으로 경제상황도 위기적 징후가 농후하고 남북관계의 경색만큼이나 꼬여가는 외교환경 또한 실마리를 풀기 어려운 상황으로 접어들고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총체적 난국에서 국정의 중심을 잡아야 할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진 그리고 내각에 이르기까지 국민적 신뢰가 추락한 상태이니 어디서부터 실타래를 폴어야 할지 보이지 않는 상태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대통령이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총체적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솔직히 시인하고 다시 한번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 청와대에서는 문제가 되고 있는 우병우 민정수석과 안종범 정책조정 수석 그리고 문고리 3인방 등을 즉시 직에서 물러나게 해야 할 것이다. 지금 상태로 우병우 수석이 그 자리에 버티고 있는 한 어떤 특검을 한다고 하더라도 국민들이 신뢰하지 않을 것이고, 안종범 수석의 경우에는 이미 그 자신이 특검의 수사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버티고 있는 것은 사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다음 대통령은 당적을 버리고 국내정치에 더 이상 개입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는 동시에 총리를 비롯한 내각을 새롭게 재편해야 할 것이다. 총리를 교체한다면 야당의 의견도 물어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위임하는 책임총리제를 한시적으로 도입하는 방안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민심은 대통령의 하야나 탄핵을 거리낌 없이 거론할 정도이지만 대선 1년여 남긴 시점에서 과도기적으로 국정을 이끌 주체를 세우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다시 우기고 넘어 가려한다면 그때는 그 어떤 수습도 여려울 것이란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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