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사퇴 요구는 당연, 야당은 대선까지 내다보는 호흡으로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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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국정농단의 실상이 알려지면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요구가 자연발생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야당들은 대통령 탄핵은 입에 담지 않고 있지만, 분노한 국민들 사이에서는 탄핵을 추진하라는 목소리들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만큼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바라보는 울분이 크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왜 안 그러하겠는가. 과거에도 정권마다 측근 비리 문제가 터져 나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익히 알려진 대통령의 아들이거나 형제였다. 하지만 이렇게 누군지 정체조차 알지 못하는 인물에 의해 국정이 농락당한 일은 없었다. 최순실이라는 인물에 대해 우리가 접한 것이라고는, 자기 딸에 대해 출석관리를 하려는 학교에 쳐들어가 선생과 교수에게 모욕을 주는 안하무인의 인물일 뿐이다. 그리고 대통령을 등에 업고 내세우며 호가호위하던 사람이었다. 그렇게 기본적인 품성과 자질조차 없는 사람이 대통령 뒤에서 국정에 대해 감놔라 배놔라 했다니, 정말 모골이 송연해질 일이다. 이 나라가 어디 아프리카 부족국가도 아니고, 그래도 민주주의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국민에게 모욕감과 상실감을 안겨준 희대의 막장극이었다.

이 사건은 다른 누가 아닌 박 대통령 자신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대통령 탄핵 요구 혹은 사퇴 요구가 나오기 시작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박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직을 수행할 자격을 상실했다. 그리고 대통령 자리를 지킨다 하더라도 남은 1년 4개월동안 정상적인 국정운영이 불가능한 식물 대통령이 될 수 밖에 없다. 생각해 보라. 국가의 기본을 무너뜨리면서 자기 절친에게 기밀문서까지 다 갖다 바치고, 인사에까지 개입하도록 만든 대통령이 어디 가서 고개를 들고 무슨 말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이제는 그가 이끌고 있는 공무원들도 속으로 비웃으면서 임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그가 물러나든 아니든, 대통령으로서의 리더십은 종언을 고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라를 위해서는 박 대통령이 조기에 사퇴하고 60일 이내에 대통령선거를 치러 새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박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날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물러나게 하기 위해서는 헌법에 규정된 탄핵소추 절차를 밟아야 하는 데 이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선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발의되더라도 의결이 되기 위해서는 재적의원 3분의2, 그러니까 200명의 찬성이 필요하다. 야3당 의원 165명에 친야 무소속 의원들을 합해도 170명을 넘기 어렵다. 결국 새누리당에서 30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비박 의원들이 대통령 비판에 나선다 해도 그러한 규모의 이탈까지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설혹 국회에서 극적인 상황 전개로 의결이 된다 해도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통과하기가 어렵다. 보수성향 재판관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헌재에서 3분의2의 찬성을 얻는다는 것을 기대하기는 무리이다.

도중에 이루어지지 못하더라도 일단 탄핵안 발의라도 해야 한다는 주장들도 있지만 여기에는 잘 따져봐야 할 전략적 득실이 있다. 탄핵은 국민의 분노를 모아 박 대통령을 심판한다는 의미가 있겠지만, 그대신 보수층 재집결의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박 대통령에게 등을 돌렸던 보수층 가운데서는 막상 대통령을 강제로 끌어내리는데 대해서는 반대하며 다시 돌아설 층이 제법 있을 것이다. 어떤 단계에서든 탄핵이 중도에서 무산된다면 오히려 야당들의 힘이 빠지고 박 대통령의 힘이 회복될 위험도 있다. 탄핵이 실제로 성사될 가능성이 있다면야 그런 것들을 감수하면서라도 추진할 수 있겠지만, 최종적으로 성사되기 어려운 탄핵절차에 그만한 댓가를 지불하는 것은 너무 큰 모험이다.

내년 12월에는 대선이 치러진다. 여전히 염려되는 바가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단은 박 대통령의 힘이 회생불능의 상태로 꺾여버린 상태이니 너무 급하게 몰아갈 필요가 없다.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는 아직 정리하고 심판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다. 온갖 비리와 범죄의 실상들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탄핵이 가능하다 해도, 60일 내에 서둘러서 대선을 치르는 것 보다는 시간을 갖고 박근혜 정부의 실정들을 국민과 함께 심판해가는 과정도 필요하다. 국민이 박 대통령의 사퇴와 탄핵을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주권자로서 그것을 조심해야 할 이유는 없다. 다만 절차와 제도를 통해 정권을 교체해야 하는 야당들로서는 내년 12월까지 내다보는 긴 호흡 속에서 전략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일부 여론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당이 당 차원에서 탄핵 얘기를 꺼내지 않는 기조는 이해가 되는 일이다. 그 대신 박근혜 정부의 비리와 범죄행위들을 낱낱이 규명함으로써 국민과 함께 심판하는 일은 야당들의 어깨에 지워진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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