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판단능력 상실한 집권세력

몽니. 음흉하고 심술궂게 욕심부리는 성질을 뜻하는 말이다. 이 말은 김종필 전 총리가 DJP연합에서의 내각제 약속 이행을 요구하며 “몽니를 부릴 것”이라고 하면서 한때 유행어가 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시국을 지켜보노라면 이 몽니라는 말이 다시 떠오른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이 그 한복판에 있다. 4.13 총선에서 민심은 여권세력을 심판하면서 여소야대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그같은 민의에 따르고 이제는 몸을 낮춰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 대통령의 책임이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상황은 정반대로 치닫고 있다. 뒤로 물러서는 법이 없다. 국회에서 해임건의안이 통과된 장관은 모두 물러나곤 했던 관행을 무시한 채, 박 대통령은 김재수 장관을 향해 흔들리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주었다. 그런가 하면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는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문제를 거론하는 사람들을 ‘불순세력’ 취급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퇴임하면 결국 모든 것이 드러날 일인 데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덮으려는 무모한 시도만 계속하고 있다.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아도 시원치 않을 상황에 번번이 화를 내는 적반하장의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이미 박 대통령을 향해 합리적인 판단능력을 상실했다는 우려의 시선들이 많다. 보수를 자임하는 사람들도 대통령 얘기만 나오면 고개를 가로 젖는다. 박 대통령에게 세상은 자신의 말을 따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어지는 듯하다. 그것만이 선과 악,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유일한 척도인 것으로 비쳐진다. 그의 관심은 오직 자신이 이기느냐 지느냐 하는데 있다. 그래서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이 없고, 오히려 그럴수록 더 화를 내며 강경한 대결로 치닫는다. 대통령으로서 어떻게 하면 갈등을 최소화하고 국정을 원만하게 운영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 보다는, 딴 소리 하는 사람들을 힘으로 누르고 오직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데 매달린다.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와 친해지기를 싫어한다. 그러니 나라에 갈등이 끊이지 않게 만드는 몽니가 되는 것이다.  

집권여당도 대통령을 따라 덩달아 몽니를 부린다. 새누리당은 정세균 의장의 사퇴를 요구하면서 국정감사도 거부하고 초강경투쟁을 벌이고 있다. 물론 해임건의안에 대해서는 당연히 여야의 입장 차이가 있지만, 그렇다고 안건을 국회법 절차에 따라 처리했다고 사퇴하라고 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이다. 과거 국회에서 야당이 반대해도 여당이 강행 처리한 일은 비일비재했다. 그때 새누리당이 뭐라고 주장했는지를 기억한다면 할 말이 없는 일이다. 

이정현 대표의 단식농성만 해도 그렇다. 단식농성은 약자가 더 이상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을 때 선택하는 마지막 투쟁 수단이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권력을 가진 집권여당이다. 이 대표의 단식농성은 모기 잡으려고 칼 빼든 광경 밖에 되지 않는다. 일방 처리에 책임지고 국회의장 사퇴하라고 단식을 한다면 정당 대표들은 일 년에 수 십번은 단식을 해야 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야당이 아닌 집권여당이 국정감사를 거부하는 것은 국정에 대한 여당의 책임의식을 의심하게 만드는 일이다. 그렇게도 안보와 민생을 외치던 여당이 정작 그 위기 상황을 앞에 두고 국회를 거부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국민의 이해를 구하기 어렵다. 더 나아가 국회의장에 대한 형사고발, 미국방문 관련 내용에 대한 부정확한 폭로의 모습까지 보노라면 지금 새누리당은 브레이크가 고장난 폭주차량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오직 박 대통령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켜주어야 한다는 집념에 불타, 집권여당으로서의 합리적인 정치적 판단능력을 상실한 듯한 모습이다.  

지금 대통령과 여당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에서는 나라를 책임지는 세력이라는 믿음을 가질 방법이 없다. 집권세력 내부에서는 강경파들만이 득세하여 내부적인 자정능력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어버렸다. 권력 주변에서 이성적인 목소리가 축출되고 오직 주군에 대한 충성만 외치는 강경파가 득세했을 때, 그 정권들의 마지막이 어떠했는지는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유한한 권력의 무모한 집착 때문에 나라가 길을 잃고 있다. 지금 집권세력이 보여주는 수준을 보면 역사가 박정희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다. 그래서 남은 1년 5개월이 무척이나 긴 시간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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