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이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올해 초 현대상선의 기업정상화 과정에서 한진해운이 현대상선을 인수할 가능성이 있다는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국적 대형선사가 탄생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선박, 영업, 네트워크, 인력 등 우량자산을 현대상선에게 매각해야 할지도 모르는 신세가 됐다.

해운 시황이 수년째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대기업들도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는 산업계 상황을 고려하면 이 같은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예상하지 못할 것은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정부의 안일한 대응을 눈감아 버릴 수는 없다.

우선 정부는 한진해운의 상황을 너무 낙관한 것이 아닌가 싶다. 현대상선 인수 얘기가 흘러나왔을 때도 정부는 “인수·합병(M&A)에 대해 논의한 바 없다”고 어설픈 자세를 취했다.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해 한진해운이 현대상선을 인수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고 했으면 어땠을까. 정부의 자세가 애매하니 한진그룹과 한진해운이 정부가 자신들에게 우호적이라고 생각하게 만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본격적인 협상 과정에서도 정부는 한진해운에 자구안을 실행하기 위한 자금 동원과 규모, 방법만을 요구했다. 충분한 자금이 있다고 판단해서였을지도 모른다. 현대그룹과 현대상선보다 한진그룹과 한진해운의 규모가 훨씬 크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진해운은 불과 3000억 원의 자금을 출자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기업정상화에는 턱없이 모자란 규모였다. 여기서부터 정부의 예상은 크게 벗어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곧바로 한진해운을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하자 국내외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입·출항이 거부되고 일부에서는 하역작업도 진행하지 못하는 상황이 일어났다.

정부는 해양수산부에서 운영 중인 비상대응반을 ‘관계 부처 합동대책 태스크포스(TF)’로 확대 개편하고 불끄기에 나섰다. 이 같은 상황이 펼쳐질 것이란 판단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처럼 허둥대고 있다. 그러면서도 향후 물동량 수송에는 문제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앵무새처럼 얘기하고 있다. 미래가 아닌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주 미온적이다.

물론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말한 것처럼 기업의 잘못으로 발생한 문제는 해당 기업 스스로가 해결하는 것이 당연하다. 피 같은 국민의 세금을 계속해서 지원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이런 논리는 지금까지 수조 원을 투입하고도 정상화는커녕 온갖 특혜와 비리 냄새가 나는 대우조선해양 사태를 대입할 경우 정부의 거짓말은 또다시 국민의 뜨거운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한진해운 알짜 자산을 매각하고 정부가 지급보증을 서는 것은 어차피 잠깐의 숨돌리기만 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 사이 그나마 수주한 거래도 다른 나라에 넘어가고 신인도 문제로 인해 경쟁사에 수주를 뺏긴다면 최악의 상황을 맞은 국적선사들은 벼랑 끝에 몰릴 수밖에 없다. 이미 절벽 너머로 발이 반쯤 나가 있는 국적선사들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절벽 아래로 떨어질 형국이다.

무조건 돈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면서 법정관리를 선택할 수도 있다는 아주 평범한 프로세스마저 간과한 정부가 지금 당장 할 일은 국적 해운사들의 생존을 위해 적극적인 자세로 나서는 길이다. 때는 이미 한 발 늦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 더 늦으면 안 된다. 초가삼간 다 태운 후에 후회하거나 집을 다시 지으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은 자칫 조선업계뿐만 아니라 물러설 곳이 없는 업종을 고사(枯死)시키는 일임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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