썼다 하면 시청률 30%는 기본으로 나온다는 김수현 씨나 노희경 씨 같은 작가에게 주문해도 이런 대본이 나올까 싶다. 명석하기로 대한민국 1% 안에 든다는 검사, 그것도 초고속 엘리트 승진자들 사이의 물고 물리는 드라마가 두 달 째 계속되고 있다. 총명하기 그지없는 이들이 정의감으로 똘똘 뭉쳐 거악을 척결하는 통쾌한 대본이라면 이 기록적 폭염 속에 얼마나 청량할까. 실상은 정반대다. 

서울 만리동 고개 근처 동네에 머리 좋기로 유명한 두 학생이 있었다. 한 친구는 서울대 법대에 들어갔고, 다른 친구는 서울대 공대에 들어가  컴퓨터-IT를 전공했다. 둘 다 자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한 친구는 대학 재학 중 고시 양과에 붙는 ‘소년 급제’를 했고, 공대에 간 친구는 게임 분야에서 전무후무한 성공신화를 썼다. 우정으로 시작했다는 두 사람의 교유는 우정으로만 그치지 않았던 것 같다. 서로가 잘 나갔으니  서로 지켜주고 격려도 했던 듯 하다. 돈이 개입됐다. 4억 얼마 치의 주식을 ‘우정에 입각해’ 공짜로 줬고, 주식은 불과 몇 년 만에 30배 가량의 차익을 안겨줬다. 수익 126억원. “땅 짚고 헤엄치기”라는 속담은 갖다 대기도 부끄러운 대박이었다. 또 다른 유명 고위직 검사는 변호사 개업 하자마자 사건을 싹쓸이해서 3년도 안돼 300억 가까이를 벌었다. 세금은 안냈다. 그가 사모은 오피스텔만 116채. 우표 수집하듯 오피스텔을  수집했다. 유명 드라마 작가들의 상상력도 감히 이 정도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진경준 검사와 김정주 사장 사이의 빗나간 우정은 홍만표 변호사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쪽으로 튀었고, 그 불똥 속에서 우 수석의 비리와 의혹이 고구마 딸려나오듯 드러났다. ‘현직 검사장 구속’ 같은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초 기록들이 쏟아졌다. 이번 검란 드라마 동안  ‘건국 이래 최초’가 하도 여러 번 나와서 국민들의 ‘드라마 역치’는 둔감해졌다. 같은 대학 같은 학과 2~3년 선후배 사이의 얽히고 설킨 사연들의 종착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외나무 다리다. 권커니 잣커니 우정을 주고 받으며 서로 울타리가 되어주던 이들은 전혀 다른 표정으로 외나무 다리에서 만났다. 며칠 전 법정에서 진경준씨와 김정주 씨는 피고석에 나란히 앉았지만 눈 길 한번 나누지 않았다. 어느 작가가, 설령 섹스피어가 되살아온들 이런 플롯을 쓸 수 있을까.

우병우 민정수석이 고심 끝에 고르고 골라 앉혔던 이석수 특별감찰관은  우 수석에 대해 “검찰수사가 필요하다”며 수사를 의뢰했다. 청와대는 발끈했다. “아니 특별감찰관에 앉힌 게 누군데 내부 사람에게 총질을?” 또는 “감히 주인을 물어?” 라고 생각했음직 하다. 곧바로 “이 감찰관이 언론사와 내통하며 감찰내용을 누설했다. 국기를 흔든 중죄다”라고 대놓고  비난했다. 공격받은 이석수 감찰관은 “의혹만 가지고 사퇴시키지 않는 게 이 정부 아니냐”며 사퇴불가를 천명했다. 시쳇말로 “반사”라고 하면서 그대로 돌려준 것이다. 

감찰자와 피감찰자가 동시에 검찰수사를 받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김수현 씨나 노희경씨가 이 수준의 대담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사뭇 궁금하다. 검찰에서 이 둘을 수사할 사람 역시 이들과 형동생, 선후배 하며 지내는 사람들이다. 세상에 이런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드라마를  이 정도로 쓰면 시청률은 얼마나 나올까. 

또 다시 공은 검찰에게 넘어갔다. 자기 생사가 달린 수술을 제 손으로  해야 하는 검찰. 자기 살을 어디까지 도려낼지, 환부를 어디까지 드러내야 하는지, 아니 그 전에 자기 손으로 자기를 수술한다는 게 가당은 한지… 근본적 질문이 꼬리를 문다. 

대한민국의 모든 첩보는 검찰이라는 저수지로 입수(入水)된다. 첩보들은 분류와 정련작업을 거쳐 정보로 가공되고, 이 정보는 ‘힘’으로 바뀌어  저수지 바깥으로 흘러나간다. 출수(出水)다. 정보가 곧 힘이다. 경찰과 국정원에서도 정보를 수집한다. 이렇게 수집된 모든 정보는 청와대라는 가장 큰 저수지로 모인다. 그래서 청와대가 무소불위다.  

‘검찰공화국’이라는 얘기가 있다. 정보를 쥐락펴락하며 여론과 정국을 조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음험함을 태생적으로 안고 있다. 검찰이 바로서면 나라가 바로서는 건 맞지만, 검찰공화국이 우리가 지향할 공화국은 아니다. 

우 수석에 대한 검찰수사는 정권 실력자 한 개인의 명예에 관한 것이 아니다. 짧게는 현 정권의 도덕성과 국정담임 당부(當否)가, 길게는 검찰  조직의 생사 여부가 달려있다. 그 집도를 다름 아닌 검찰 스스로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수술 도중에 환자가 사망할 수도 있다. 그게 수술이다. 검찰은 이 중대한 수술 전에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 수술 전에 마취라는 것을 한다. 항간에는 이번 검찰의 수술 결과에 대해 벌써부터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파다하다. 수술 결과가 신뢰를 얻으려면, 그래서 재수술을 안하려면, 본 수술에 들어가기 전에 항간의 반신반의부터 불식시킬  정교한 마취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각본이나 가이드라인 없이, 가차 없는 마취와, 모든 병소를 제거하는 수술이어야 한다. 이번 검란을 거치면서 우리 드라마 작가들의 지평과 상상력이 한 단계 높아질 것 같다.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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