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만에 드러난 친박 대표의 얼굴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 박근혜 대통령의 각별한 인연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잘 알려져 있다. 12년 전 무명의 정치인이었던 이 대표를 발탁해서 당직을 주었던 것도, 그동안 그를 정치적으로 성장시켜 주었던 것도 박 대통령이었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모두가 ‘친박’ 꼬리표가 무서워 박 대통령과 거리두기를 할 때도 그만은 박근혜 대통령의 이름을 당당히 거명했다. 전당대회 당일 이 대표는 마지막 후보연설에서 “모두가 근본 없는 놈이라고 등 뒤에서 저를 비웃을 때도 저 같은 사람을 발탁해준 박근혜 대통령께 감사함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이제까지 그의 정치행보가 보여주었듯이, 그는 박 대통령을 위해 정치를 해왔던 사람이다. 앞으로도 여간해서는 박 대통령을 의리를 저버리는 일이 없을 사람이다.

사진=연합뉴스
▲ 사진=연합뉴스

그런 이 대표가 이제 집권 여당을 이끄는 대표가 되었다. 그것도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둔 중차대한 시기에 말이다. 청와대는 즉시 축하의 난을 보내고 정무수석이 예방하는가 하면, 신속하게 대통령과의 회동 일정을 잡았다. 전례없이 반가워하는 박 대통령의 마음이 베여있다.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도부의 새로운 밀월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문제는 국민들의 눈이다. 불과 몇 달 전의 총선에서 대통령의 불통정치와 여당의 오만한 막장공천에 대해 심판을 했건만, 새누리당의 당심은 이를 무시해 버렸다. 아무런 변화의 노력조차 없이 그냥 그대로 ‘박 대통령의 복심’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쯤 되면 눈에 보이는 것 없는 여당의 당심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바로 내년이면 대통령선거를 치른다는 점이다. 대선은 당원들이 찍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찍는 것이다. 민심을 얻지 못한다면 어쩔 도리없이 정권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 대통령선거이다. 그것을 의식해서일 것이다. 이 대표는 선출 직후 “청와대와 정부가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 방향으로 간다면 과감히 지적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이제 새누리당에는 친박, 비박, 어떤 계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자신을 따라다니는 ‘친박’ 꼬리표에 대한 시선을 의식해서 한 얘기일 것이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이정현 대표는 청와대를 향해 ‘과감한 지적’을 할 수 있을까, 새누리당에는 친박도 비박도 없게 될 수 있을까.

이 어리석은 질문에 대한 답은 하루 만에 나왔다. 이 대표의 속내는 이미 거침없이 드러나고 있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앞으로 남은 1년 6개월 동안 차기 대선 관리도 중요하지만 대통령을 중심으로 국가와 국민, 민생, 경제, 안보를 챙기는 게 더 시급하다”고 했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생각하며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는 여당이 되겠다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김재원 정무수석을 만난 자리에서는 “대통령과 맞서는 것이 정의인 것처럼 인식을 갖고 있다면 여당 소속 의원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누가 들어도 당내 비박 정치인들을 향한 경고였다. 대통령이 하는 일에 반대하는 것은 여당 사람들이 해서는 안될 일이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과감한 지적’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되묻는 것은 세상 물정 모르는 얘기일 뿐이다.

이정현 대표는 결코 박 대통령을 어렵게 만드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박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비서가 아니라 당 대표가 되었으니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기대섞인 전망은 그리 현실적이지 못하다. 그래서 이 나라 집권 여당의 앞길이 걱정스럽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결국 민심을 이기는 당심은 없다는 사실이다. 이 대표가 내걸어온 ‘섬김의 리더십’은 누구를 섬기려는 것인가. 국민인가, 아니면 대통령인가. 그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새누리당 이정현호는 다시 난파선이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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