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담에 “호미로 막을 것, 가래로도 막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해가 있을 때 건초를 만들라”는 서양 속담도 있다. 둘 다 때를 놓치지 말라는 얘기다. 최근 두어 달 간 검찰과 법조계는 건국 이래 최대의 질책을 받고 있다. 올림픽과 함께 이 여름은 끝나갈 것이다. 가는 여름과 함께 검찰-법조계의 수술 역시 어물쩍 넘어가고, 다시 옛날로 돌아갈 조짐이 곳곳에서 보인다.

첫째, 어버이연합 수사가 궁금하다. 전경련을 통한 대기업들의 어버이연합 자금지원과 청와대의 시위 사주 혐의에 대해 고소장이 접수된 것은 지난 5월이다. 석 달 전이다. 고소장이 접수되자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이 잠적했다. 세월호참사 때가 생각난다. 참사 직후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실질적 소유주 유병언 씨에 대한 대대적 조사가 시작됐다. 서너 달 뒤 검-경은 “유병언 씨가 전남 순천 인근 과수원에서 시체로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수 만 경찰병력을 동원해 전국을 들쑤시며 유 씨를 쫓고, 유 씨만 잡으면 참사의 원인이 밝혀질 것처럼 호들갑 떨다가 “죽은 척 하느라 애쓴다”는 조롱섞인 반발만 남긴 채 수사는 흐지부지됐다. 유 씨의 생사 여부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검찰과 경찰은 왜 그 때 처럼 추선희씨 소재를 포함한 어버이연합 건에 대해 수사하지 않는가. “수사중”이라는 말만 몇 달 째 하다가 겨우 어제(8일) 전경련 이승철 부회장을 소환했다. 그런 와중에 추선희 씨는 지난 달 보수성향 인터넷 매체에 “잠시 둥지를 잃고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지만, 어버이연합은 폐쇄된 것이 아니다. 지루한 여름방학이 끝나고 나면 다시 활동을 재개할 것”이라고 버젓이 밝혔다. 지난 6월 24일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해 조사받은 직후다. 겨우 이 정도 수사능력으로도 월급은 따박따박 받아지는가?

이런 가운데 어버이연합의 자매 단체 격인 ‘엄마 부대’가 더민주당 초선의원 6명의 방중을 비난하기 위해 다시 모였다. 이들은 8일 “박근혜정부는 ‘친북-친중’ 세력들의 주장에 흔들리지 말고 힘차게 밀고 나가라”고 충고하고 나섰다. 어버이연합에 대한 수사가 착착 진행됐어도 그들이 이 폭염에 길거리에서 시위에 나설지 궁금하다. 일당 없이, 오로지 나라가 걱정돼서 그러는 거라면 그들의 ‘순수한 애국심’을 평가하겠다.

둘째, 일일이 열거하기가 벅찰 정도의 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조사는 어떤 상태인지 역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 자체 감찰결과를 지켜보는 중”이라고 답할 것이다. 이 사안에 대한 국민적 관심사와 국회에서의 질타를 감안할 때, 검찰은 당연히 내사중이어야 한다. 검찰은 법조 기자를 상대로 하는 ‘백브리핑’에서 가끔 “특정 건에 대해 내사중”이라는 사실을 흘리곤 한다. 발표 여부는 물론 검찰의 ‘필요’에 따라서다. 검찰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어떤 건은 발표하고, 어떤 건은 비밀에 부쳐왔다. “검찰 내사중”이라는 발표만으로도 ‘은근한 겁주기 효과’나, ‘여론 돌리기 효과’는 충분히 위력을 발휘하곤 했다. 대한민국 검찰 사전에 ‘형평’은 없다.

셋째,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기소 된 진경준 전 검사장에 대한 법무부의 해임 징계에 대해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진 전 검사장의 해임이 파면을 피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현직 검사장이 수뢰 혐의로 건국 이래 최초로 구속된 참담 지경이다. 일반 행정직 공무원이었으면 어땠을지, 검찰직 공무원의 파면 및 해임에 관한 징계규정은 다른지, 다르면 왜 다른지, 묻는다. 규정을 살펴보니 파면이 아니라 해임되면 연금액의 25%만 삭감된 채 평생 꼬박꼬박 받게 돼있다. 수 년 전, 공무원기강잡기 국면에 500만원 받은 게 들통 나 파면된 경찰관 기사가 오버랩된다. 상대적으로 힘 없는 경찰은 500만원에 파면이고, 힘 센 검사장은 10억 뇌물에도 해임이다. 이 역시 검찰이 평소 그렇게 강조해오던 ‘형평’인가?

넷째, 후배 검사에 대한 지속적 폭행과 폭언으로 결국 후배를 자살에 까지 이르게 한 서울남부지검 김 모 부장검사에 대한 해임결정 역시 후속 수사 여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자살한 검사의 유가족들은 수사와 형사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해임으로 적당히 끝나면 그 부장검사는 3년 후 변호사로 활동할 수 있다.

다섯째, ‘전관예우의 끝판왕’ 홍만표 변호사의 기소 죄목에 대한 것이다. 홍 변호사는 탈세혐의로 기소됐다. 변호인선임계 없이 전화 변론한, 즉 변호사법위반혐의에 대해서는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며 상대적으로 처벌이 가벼운 탈세혐의만 적용했었다. 그러나 언론보도에 따르면 홍 변호사의 변호사법위반 정황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검찰은 홍 변호사를 기소하면서 “기소 후에도 계속 수사하겠다”고 했다. 믿는 사람들도 없었지만, 이 말 역시 당일 언론발표용에 불과했다. 대한민국 검찰이 국민들의 신뢰실종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아주 오래된 일이다.

입에 올리기도 뭐하지만, 길거리에서 음란행위를 했다가 결국 사직한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이 중국인 카지노고객 성매매 알선혐의로 구속된 여행사 대표의 변론을 맡았다는 소식도 들린다. 8일 제주지법에 따르면, 김 전 지검장은 구속기소된 모 여행사 대표를 변호하기 위해 제주지법에 변호사선임계를 제출했다. 길거리 음란행위에 거짓말까지 들통난 뒤 평생 얼굴 못들고 다닐 것 같더니, 버젓이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것도 성매매 알선혐의 피의자를 변호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김 전 지검장은 사직 당시 “병증이 깊어 장기간 치료를 요한다”는 말이 있었다. 벌써 치료가 다 됐는지 모르겠다. 며칠 전에는 현직 판사가 성매매 현장에서 붙잡혔다. 경찰조사에서 공무원이라고만 밝혔지만, 곧 신분이 밝혀지자 사의를 표했다고 한다. 그 사의가 ‘의원면직’으로 처리되어서는 당연히 안될 것이다.

자고 나면 큰 사건이 터지는, 그래서 이전 사건을 덮어버려 정권유지가 쉽다는 말이 끊이질 않는다. “너는 짖어라, 나는 간다” 격이다. 대검찰 청에는 “검찰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대형 편액이 걸려있다. 법원 앞에는 눈을 가린 채 저울을 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 디케 조각상이 떡 하니 서있다. 호미로 막을 것 가래로도 막지 못한다는 속담, 법조계만 모르는 것 같다. 그러다 게도 구럭도 다 잃는다. (이강윤.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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