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동영상 파문 <사진=연합뉴스></div>
▲ 이건희 회장 동영상 파문 <사진=연합뉴스>

메가톤급 기사가 보도됐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보도를 하는 거냐” “무슨 사건을 덮으려 하는 거냐”, 또는 “사드 문제나 권부 실세들의 여러 비위 의혹들이 희석되거나 덮히지 않겠느냐”... 21일 뉴스타파의 ‘삼성 이건희 회장 매춘의혹’ 보도 이후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말들이다. 결론적으로 그같은 말들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론사란 기본적으로 팩트 체크가 끝나고 기사가 최종 완성되면 보도할 수 있는 것이다. 아니 보도하는 게 원칙이다. 언론사는 자료나 파일 틀어쥐고 있다가 여론 상황이나 정국 동향 봐가며 수도꼭지 잠갔다 풀었다를 선택하는 ‘모 처’가 아니다.

또, 보도에 자막으로도 나온 이 회장의 발언 중 “OO”으로 처리된 글자가 이거라느니, 저거일거라느니 하는 식의 얘기 역시, 사안의 본질을 벗어나 뉴스타파 보도를 선정적 흥밋거리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삼성전자 노동자들이 백혈병 걸려가며 벌어다 준 돈으로 비밀 아방궁에서 수 년 간 매춘해왔다는 게 팩트 아니겠는가. OO으로 처리된 그 두 글자가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그런 일종의 ‘뒷담화’는 생길 수 있는 궁금증이긴 하지만, 공개적으로 거론할 것 아니라고 본다. 그런데 각종 SNS에 그런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다. 그런 낄길댐은 우선, 두 달여 팩트확인과 검증에 몰두해온 뉴스타파 취재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또, 발언 당사자인 이 회장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어떤 잘못을 저지른 경우라도 보호되어야 할 인권은 분명히 있다. 뉴스타파측도 원고심려 끝에 OO으로 처리했을 터이다. 이번 보도를 통해 드러난 한국의 경제적 최상류층 일부의 일탈과 범죄 부분에 대해 논의하고, 법적으로 처리할 대목이 있으면 적법하게 처리하도록 하는 논의가 이어지는 것이 옳다고 본다.

삼성그룹의 수 많은 ‘일벌’들이 뼈빠지게 일해서 회사를 이 정도로 만들어놨는데, 전체 지분의 단 몇% 정도만 갖고서 황제로 군림해온 것, 120억원짜리 저택을 짓고, 그것도 모자라 13억원 짜리 고급 전셋집을 얻어 그런 데 사용했다는 것이 팩트 아니겠는가. 이런 관점에서 “OO이 어떤 단어일 것”이라는 류의 얘기는 한가함을 넘어, ‘일벌’들이 스스로 자신에게 재를 뿌리는 것일 터이다. 하긴, 그래서 교육부 ‘나 국장’은 “대중들은 개돼지”라고 서슴없이 말한 것인가.

또 이런 지적도 제기된다. “공갈범들이 불법하게 만든 동영상을 보도했는데, 그것이 사회의 공익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모르겠다. 뉴스타파도 결국 또 하나의 선정적 보도 아닌가”라는 지적이다.

몰래카메라로 돈 뜯어내려던 공갈범들의 더러운 동영상이 기사의 ‘소스’인 점, 물론 맞다. 그렇지만 이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장물이라 해서 증거로 채택되지 않는 건 아니잖는가. 공갈범들의 소행은 별도로 수사하거나 비판하면 되는 일이지, “공갈범들의 더러운 소스에 의거한 보도는 문제있다”는 지적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현행 성매매처벌법은 성매매·성매매알선 등 행위 및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를 근절하고 성매매 피해자의 인권보호를 목적으로 지난 2004년 9월 23일부터 시행되었다. 처벌 시효는 5년이다. 이 회장에 대한 도덕적 비난과 별도로, 실정법위반이 확인됐으면 수사기관은 상응 조치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 인지 수사든 고발 수사든 수사기관은 상응한 조치를 취하는 게 의무이자 직분이다. “성매매법도 유전무죄 무전유죄인가?”라는 비판이 나오기 전에 수사기관은 맡은 바 소임을 다 해야 한다. 이 회장이 현재 와병중이어서 현실적으로 조사가 불가능한 상황이라 해도 일단 조사에는 착수하는 것이 순서일 터이다.

삼성그룹은 22일 “회장의 사생활이어서 그룹 차원에서 특별히 대응할 게 없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사생활 맞다. 그런데 그 사생활 중에 실정법 위반 부분이 있다면 어떻게 하는 게 법치국가에 맞는 건가. 그리고 사생활이라 대응할 것이 없다면서, 긴급대책회의 같은 것은 왜 했는지, 혹시라도 그룹 법무팀에게 대응방법 등을 알아보라고 시켰다면, 회사의 자원을 특정 개인을 위해 사용한 것이므로 배임에 해당하는 건 아닌지 되묻고 싶다.

이번 뉴스타파 보도가 선정적이라는 문제제기는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지없이 드러난 한국식 천민자본주의의 민낯을 통해 우리 경제체제와 풍토에 대한 인식과 논의를 진전시는 계기로 삼는 게 생산적이다. 관음증으로 몰고가거나, 흥밋거리로 전락시켜버리면 우리 사회는 영영 고쳐지지 않는다. ‘헬조선’과 ‘빌어먹을 금수저’는 영영 바뀌지 않는다. (이강윤.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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