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핵폐기의 고집이 오히려 北 선핵보유의 현실을 더욱 악화시켜

김근식(경남대 교수, 정치학)
▲ 김근식(경남대 교수, 정치학)
 박근혜 정부가 제재에 올인하는 국면에서 북한은 무수단 미사일발사를 성공시켰다. 대기권 재진입이라는 난제마저 해결했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한쪽은 제재를 지속함으로써 상대를 굴복시키겠다는 확신에 차있고, 다른 한쪽은 제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군사적 위협을 증대시키고 있다. 과연 제재가 능사이고 만능인가?

  제재는 제재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란 핵협상도 제재의 효과가 작동한 측면이 있지만 물밑에서 미국과 이란의 협상노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석유수출을 해야 하는 개방형 이란경제가 금수 제재로 어려움을 겪은 게 사실이지만 제재 일변도로 이란의 완전 항복을 시도하지는 않았다. 제재는 상대국가를 압박함으로써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하는 것이지 제재 자체를 목표로 해서 일체의 협상을 거부하고 상대국가의 완전굴복이나 체제붕괴를 꾀하는 것이 아니다.

  유엔결의 2270호의 대북제재도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이다. 반대했던 핵실험을 한 북한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응당한 제재이지만 이를 통해 김정은 체제가 붕괴하거나 완전히 무릎꿇고 엎드려 나올 때까지 제재만을 지속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결의안에 제재와 함께 9.19 공동성명에 따른 대화 재개를 강조하고 있는 것도 그 맥락이다. 대북제재는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책임을 묻고 북한의 태도변화를 유도해서 문제해결을 위한 협상이 재가동될 수 있도록 이끌어내기 위한 수단이다. 일체의 협상을 배제한 채 김정은이 생각을 바꾸고 핵을 포기할 때까지 제재만을 고집하는 것은 본래 의미의 제재에도 맞지 않는 감정적 오기와 고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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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제재는 제재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현실적인 정책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유엔의 대북제재는 4차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에게 정치경제적 어려움이라는 댓가를 지불하게 하고 더 이상의 추가도발을 억지하기 위한 목표이며 동시에 6자회담을 비롯한 북핵협상이 재개되도록 하기 위한 정책목표에 따른 것이다. 제재와 협상은 동시병행하는 것이다. 제재를 일관되게 하면서도 제재 이후 혹은 제재 국면에서의 대화를 모색하고 준비하고 유도해내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제재 역시 제재 자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제재의 목표를 설정하고 차후의 협상을 모색하고 준비해야 한다. 작금의 제재국면을 마치 김정은 정권의 성격변화나 정권교체를 목표로 한다면 결코 현실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핵실험에 대해 명확한 책임을 묻되 협상의 테이블로 나올 수 있도록 유도해내는 게 작금의 제재국면의 목표여야 한다. 따라서 북의 군사회담 제의나 중국의 평화협정 병행론 등은 무시만 할 게 아니라 제재를 지속하면서도 우리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협상을 이끌어나가려는 자신감을 보일 필요가 있다. 대화를 시작한다고 해서 제재를 중단하는 것이 결코 아닌 만큼 제재와 협상을 동시에 병행해야 한다.

  핵실험 도발에 대한 우리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 방침 역시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우리의 단호한 의지를 보인다는 점에서는 일견 이해가 될 수도 있지만 공단 재가동의 조건을 지나치게 높게 잡는 것은 피해야 했다. 상황 변화에 따른 원상복구의 전제조건을 지나치게 최대목표로 설정해 놓으면 후일 돌이키기 힘든 자폐적 조치가 될 수밖에 없다. 핵실험의 댓가로 개성공단을 폐쇄한 만큼 북이 핵실험 유예나 핵동결을 수용하고 북핵 협상에 나오는 조건이면 공단 재가동이 가능하도록 했어야 한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원상복구 조건은 북한의 핵폐기라는 최대치의 요구조건과 연동시켜 놓고 있다. 핵무기 개발에 공단 근로자 임금이 전용된다는 우려라면 무작정 폐쇄가 아니라 현금 아닌 현물지급 등 다양한 방식을 논의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외교적 출구를 마련하기 보다는 공단폐쇄라는 최종조치를 서둘러 강행했다. 공단 재가동을 위한 우리 스스로의 퇴로를 차단해 놓은 것이다.

 대북정책을 포함한 외교정책은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원칙과 단호함만으로, 상대방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 때문에 감정과 오기로 정책결정을 해서는 안된다. 제재국면에서도 대화는 진행되어야 하고 개성공단 폐쇄에서도 재가동의 가능성은 열어놓아야 한다. 북의 선핵보유와 남의 선핵폐기가 끝까지 평행선을 달리는 동안 한반도는 한치 앞을 모르는 위험한 지역이 되고 있다. 선핵폐기의 고집이 오히려 선핵보유의 현실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비핵화를 이유로 남북관계를 포기하거나 제재를 이유로 대화를 거부하는 일차원적이고 감정적인 대북정책은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외교는 감정이 아니라 이성이 지배하는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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