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치’, 더민주-국민의당 중 한 야당을 따돌리는 정치 수단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국회에서 20대 국회 개원연설을 통해 협치를 강조했다.[사진=청와대 사진기자단]
▲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국회에서 20대 국회 개원연설을 통해 협치를 강조했다.[사진=청와대 사진기자단]
[폴리뉴스 정찬 기자]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3일 여소야대의 20대 국회 개원연설에서 ‘협치(協治)’를 얘기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언급은 ‘협치’ 본래의 의미를 담은 것이라기보다는 국민의 요구와 기대에 부응하려는 수사적 차원을 넘지 않았다.

4.13 총선이 여소야대로 귀결되면서 나온 화두가 ‘협치’였다. 박 대통령 또한 이를 받아 여러 번에 걸쳐 ‘협치’를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박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여야 3당 원내지도부와 회동하는 모습을 보여 ‘협치’의 가능성을 높였다. 박 대통령이 국정수행을 위해 야당의 정치적 요구를 일정 수렴하는 ‘타협의 정치’를 할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당이 요구한 ‘임을 위한 행진곡’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 제창 불허로 여야 간의 ‘협치’는 내용적으로 무너졌다. 박 대통령과 야당 간의 ‘협치’를 이룰 신뢰적 기반이 흔들린 탓이다. 또 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이른바 ‘상시 청문회’를 규정한 국회법개정안에 대한 박 대통령의 거부권행사는 ‘협치’가 구현되기 어려운 현실을 드러냈다.

20대 국회 역시 정치세력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치열하게 다툼을 벌여온 과거와 별 차이가 없을 것임을 보여준 것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 뿐 아니라 여야 정치권 모두가 ‘협치’를 입에 달고 있다. 그러나 실제 내용을 뜯어보면 3당구도의 여소야대 국회를 인식해 모두 ‘협치’란 정치적 수사를 남발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박 대통령은 국회 개원연설에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 국민이 20대 국회에 바라는 것은 ‘화합’과 ‘협치’”라며 “3당 대표와의 회담을 정례화하고, 국정운영의 동반자로서 국회를 존중하며 국민과 함께 선진 대한민국으로 가는 길을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국회를 ‘국정 동반자’로 존중하겠다지만 국민여론의 기대에 부응한다는 선언적 의미에 가깝다.

야당들의 대통령 개원연설에 대한 논평을 보면 박 대통령이 ‘협치’를 실행하겠다고 했지만 그다지 믿는 분위기도 아니며 절실하게 요망하는 듯한 분위기도 아니다. 야당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무산과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 당시 “협치는 무너졌다”고 공공연하게 말해온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수석대변인은 박 대통령의 협치 언급에 “화합과 협치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국회와 소통과 협력의 의지를 밝힌 것에 대해 평가하고 의미 있게 받아들인다”고만 햇다. 그러면서 대북정책 등 여러 정책 각론에선 “실망”했다고 해 박 대통령의 ‘협치’ 언급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국민의당 이용호 원내대변인은 3대 대표 회담 정례화를 환영하면서도 “기대와 실망이 공존하고 있다”며 각론에선 “경제적으로 고통 받고 있는 서민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이 안이하며 대책은 공허한 느낌”이라고 했다. 20대 국회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이 3당대표 회동 정례화에 대한 기대감을 보인 부분은 있지만 박 대통령의 ‘협치’에 신뢰를 보이진 않았다.

‘협치’, 더민주-국민의당 중 한 야당을 따돌리는 정치 수단

그럼에도 ‘협치(協治)’는 올해 내내 정치적 화두가 될 것만은 분명하다. 3당 구도의 여소야대 정국은 여야로 하여금 자신들 정치행위의 명분을 ‘협치’란 말 속에서 찾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내년 봄으로 예상되는 대선 국면 본격적 진입 전까지는 불가피할 것이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현 여소야대 국회에서 자력(自力)으로 단순한 법안 하나도 처리할 수 없다. 여권 무소속 의원들을 입당시킨다 해도 130여석에 불과해 과반수에 미달하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위안이라면 국회선진화법이다. 더민주-국민의당-정의당 야3당의 일방적 입법행위를 저지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집권여당은 자신이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선 정의당을 뺀 여야 3당이 합의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여의치 않은 것이 정치현실이다. 모든 일을 여야3당 합의로 진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실적인 대안으로 정책 사안별 제휴가 됐든, 전략적인 정치연대가 됐든 두 야당 중 어느 한 쪽과 손을 잡는 것이 필요불가결하다.

국회의장을 배출하고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자신을 배제한 입법행위에 제동 걸 수 있는 더민주과의 ‘협치’에 우선순위를 두겠지만 이것이 여의치 않으면 과반 확보를 목표로 국민의당과 힘을 합칠 수 있다. 이를 통해 더민주를 압박하고 견인하는 것도 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지난 5월 두 번에 걸쳐 ‘협치’를 사실상 내팽개쳤던 박 대통령이 개원연설에서 국민여론을 빌어 ‘협치’를 강조한 것은 바로 이 지점에 염두를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더민주-국민의당 두 야당을 상대하는 정치적 레토릭으로 ‘협치’ 만큼 유용한 것이 없다.

이때 ‘협치’는 두 야당 중 한 야당을 따돌릴 수 있는 정치적 수단이다. 이 경우의 ‘협치’는 정치적 수사를 넘어 전략적인 포석이 될 수 있다. 특히 내년 대선 국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정계개편과 같은 정치지형의 변화를 주도하는 중요한 지렛대 기능을 할 개연성도 있다.

게다가 정세균 국회의장이 개원연설에서 개헌 추진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상황까지 감안하면 박 대통령으로선 ‘협치’란 유연한 정치적 스탠스가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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