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중앙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오찬 간담회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중앙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오찬 간담회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4.13 총선이 끝난 이후 민심을 경청하겠다고 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언론사 보도 편집국장들과 가졌다는 오찬을 겸한 간담회에서 답변한 내용들은 듣는 사람들의 귀를 의심하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무엇보다 박근혜 대통령의 무능과 불통에 대한 심판이라는 모든 언론의 한결같은 분석과는 달리 박근혜대통령은 4.13 총선의 결과는 국민이 일하지 않는 양당체제의 국회를 심판하고 3당체제를 만들었다고 본다는 것으로 자신이 강조했던 국회심판론을 국민이 받아들였다는 뉘앙스로 말했다고 한다. 대통령제 하에서 임기 중반에 총선이 치러지면 그 결과가 좋으면 정부여당의 국정운영이 탄력을 받기도 하고 선거에서 패배하면 국정운영의 기조를 수정하기도 하는 것은 총선이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을 갖기 때문에 너무도 당연한 것이며 국민들도 선거 결과에 걸 맞는 변화를 기대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결과는 정부여당의 참패로 나타났지만 대통령은 국정의 최고 책임자이자 집권당의 최고 권력자로서 패배를 인정조차 하지 않고 국회를 심판한 것이라 강변하면서 청와대와 내각도 개편하지 않고 국정운영의 기조도 바꾸지 않은 채 나의 길을 가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공약했던 경제민주화가 뒷걸음 치고 생애맞춤형 복지는실종된 지 이미 오래 전 일이 되었고, 청년실업율이 사상 최고로 치솟는 현실에서 국민들이 정부 여당을 향해 분노의 회초리를 들었지만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여전히 오불관언인 채 딴전만 피우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세월호 문제,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 어버이 연합 문제 등에 대한 대통령의 언급은 거의 모순덩어리라 할 수밖에 없을 만큼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조선, 해운업 등 대규모 실업이 예상되는 심각한 경제문제에 대해서도 양적완화 조치를 거론하고 기업에 대한 규제완화를 언급하는 등 기업만 앞세우는 입장으로 일관했다. 

선거 패배의 직접 당사자라 할 수 있는 새누리당의 모습은 더욱 볼썽사납다. 여전히 친박 비박으로 나눠서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할 뿐 성난 민심 앞에 진심으로 석고대죄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선거운동 과정에서는 이반된 민심을 돌리고 당장 표를 얻기 위해 무릅을 꿇고 머리도 조아리면서 싸우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는 모습을 보이던 사람들이 선거가 끝나자말자 당권을 놓고 다시 싸우는 것이 책임 있는 집권당의 모습으로는 보이지는 않는다. 새누리당이 가장 먼저 시작해야 할 일은 총선 민의를 겸허히 수용하고 그동안 수의 우위를 앞세워 일방적으로 추진해 왔던 잘못된 사안들을 야당과 머리를 맞대고 다시 타협하고 절충하는 것과 집권당의 역할을 상실한 채 청와대에 끌려 다니면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던 무기력한 모습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한국 경제가 일찍이 겪지 못한 대규모 구조개편을 단행하지 않을 수 없는 절박한 현실에서 집권여당으로서 정부만 처다보는 것이 아니라 수습방안 마련에 발벗고 나서야 할 것이다. 최소한 그런 모습이라도 보이는 것만이 성난 민심을 조금이나마 달래는 길이란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잘 한 것 없는 야당들도 선거 결과에 만족하고 안주한다면 더 큰 수렁에 빠질 것

더민주당은 자신들의 텃밭이라 할 수 있는 호남에서 대패했지만 수도권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원내 제1당을 차지할 수 있었고 국민의당은 수도권에서 두석을 얻고 호남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는 단 한 석도 얻지를 못했지만 정당득표율에서 더민주당을 앞서서 비례대표 13석을 확보하고 호남 23석을 더하여 전체 38석을 얻는 성과를 거두었다. 야당이 분열된 상태였고 공천과정에서 여러 문제들이 노정이 되었지만 이렇게 큰 성과를 거둔 것은 정부와 새누리당을 심판해야 한다는 민심의 반사이익이 컸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4.13 총선에서 20대와 30대의 투표율이 50%에 육박할 정도로 높아지고 50대 이상 고령층의 투표율은 상대적으로 낮아지면서 계층별 투표성향이 적극 반영된 측면도 유의해야 할 것이다. 또한 영남과 호남에서 그동안 기득권을 누리던 정당들이 고전하거나 참패하는 현상 또한 눈여겨 볼만하다. 

문제는 야당이 이런 총선 결과에 대해 마치 자신들이 잘해서 성과를 거둔 양 착각하면서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을 보이는 현상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더민주당은 총선이 끝나자마자 비대위 체제 연장 문제로 논란을 빚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원내 제1당으로서 민생현안과 정치적인 사안들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책임 있는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번 총선에서 20대와 30대가 투표를 통해 표출하고자 했던 정치적인 요구들에 대해 어떻게 답할 것인지 진지하게 모색해야 할 것이지만 더민주당의 경우 지난 19대 국회에 비해 청년층을 대변할 수 있는 의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이를 어떻게 접근할 것이지 당 차원에서 고민해야 할 것이다. 국민의당에서 20대 국회가 열리기도 전에 연정에 대한 거론이 끊이지 않는 것 또한 바람직한 모습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호남에서 국민의당에게 의석을 준 것은 그동안 실망감을 안긴 더민주당에 대한 심판의 의미가 강한 것이지 이를 바탕으로 새누리당과 연정 운운하라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다. 야당이 새누리당을 심판한 민심을 오판하고 오만에 빠지거나 안주한다면 머지않아 더 큰 심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4.13 청선의 결과는 야당에게 기회를 준 것이기도 하지만 정신을 똑바로 차리라는 회초리의 의미도 담긴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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