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권 3년에 분노한 시민들에 의해 엉겁결에 제1당이 된 더민주당이 총선 후 보름이 지나도록 방향성을 잡지 못한 채 지지부진 이다. 핵심은 당 지도체제와 김종인대표의 거취다. 출처가 불분명한 당대표 합의추대설이 계속 논란을 부르면서 급기야 김 대표와 문재인 전 대표 사이에 “문 대표는 자기 마음대로 작문하는, 단 둘이 못 만날 사람”, “독대 사실을 마음대로 옮긴 건 김 대표이고. 당권에 욕심있는 것 같다”는, 도를 넘는 언사들이 어지럽다. 둘만 있던 자리이니 누구 말이 맞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런 가시돋힌 언사들이 오가는 것 자체에 대해 민망해해야 하건만, 그 대좌 이후 확전일로를 치달아 패인 골은 더 깊어지는 양상이다. 

근저에는 문 전 대표로 대표되는 이른바 ‘친노’에 대한 김 전 대표의 불신과 격하가 자리하지 않는가 싶다. 친노 편들자는 것 아니다. 친노, 당연히 성찰해야 한다, 그러나 공개적 축출 형태라면 비정치적이다. 아울러, “당신들이 다 죽게생겼대서 왕진가방 들고 달려와줬는데 왜 내 하명대로 하지 않느냐”는 제왕적 인식과 태도도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는 본인을 위해서나, 수권정당을 만들겠다고 달려온 그 당을 위해서나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언급하는 게 필요하다. “엉겁결에 1당이 되긴 했지만 아직 당신들은 수권능력에는 거리가 머니까 내 가르침을 좀 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당당하게 당대표 의지를 천명하고 당헌당규 상 절차를 밟는 게 옳다. 한 수 가르쳐줘야 할 새까만 후배들과 경선하는 게 영 못마땅한 건 아니신가. 아니면 행여 패배했을 때 입을 체면과 권위 손상이 마음에 걸려서인가. 

작년 12월로 기억된다. 김 대표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기자들이 비례대표 출마 여부를 묻자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인 국회에 내가 이 나이에 가서 앉아 있어 뭐하겠느냐. 비례대표 같은 건 관심 없다”고. 서너 주 쯤 지났을까. 이른바 비례대표파동이 터졌다. 제자 논문 표절이 드러난 박미경교수를 1번에, 본인은 2번에 배치했다. 들끓었다. 필자가 보기에 그 비례대표 순번배치의 최대 패착은 논문표절 교수를 1번에 올린 거였다. 그래서야 향후 청와대가 표절혐의 등 도덕성 결격자를 공직후보자로 임명해도 더민주는 비판할 근거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언론들은 셀프2번을 더 많이 문제삼았다. 선거 후 호남참패 원인 토론회에서 김 대표의 국보위 경력과 셀프비례가 호남인들을 돌아서게 했다는 얘기도 비교적 설득력있게 제시됐다. 자신을 비례 후순위에 놓고 배수진을 치는 게 옳았다느니 하는 사후약방문은 관두자. 

김 대표께 질문한다. 본인에게 민주적 리더십이 있다고 생각하시는가. 스스로는 카리스마라고 여기는, 권위주의와 독선으로 뭉쳐있는 것은 아니신가. 비대위 체제에서는 민주적 리더십 보다 “아무 말 말고 나를 따르라”는 일사불란 리더십이 단기적으로 효율적이다. 그러나 비상대책위, 즉 비대위는 말 그대로 비상한 국면을 수습하고 정상 체제를 만들기까지 위기를 관리하는 과도체제다. 짧으면 몇 주, 길어야 두어 달 정도면 그 이름과 기능에 걸맞는다. 수 개월에서 1년 정도 유지된다면 그건 비대위가 아니라 체제다. 정상 체제를 민주정당에서 합의추대로 구성한다는 게 동의를 얻을 수 있을까. 더구나 대표에 출마하겠다는 사람들이 즐비한데 추대가 가당은 고사하고, 가능이나 하겠는가. 과거 김대중이나 김영삼은 합의추대됐다. 그게 민주적이거나 좋아서가 아니라, 당시 그들의 정치적 비중이나 존재감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추인받은 거였다. 김 대표께서는 스스로를 ‘양김 급’으로 여기시는지 모르나, 유감스럽게도 양김 정치는 20년 전 애저녁에 끝났다. 시대정신에 맞지 않다는 얘기다.  

한 석 차이의 엉겁결 1당. 김 대표께서, 행여라도, 자신이 진두지휘해서 얻은 성과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리라 본다. 수권 정당으로 체질을 변화시키는 게 목표라면, 숙제를 잔뜩 남긴 이번 총선결과를 놓고 논쟁해서 보고서를 만들게 하는 게 김 대표의 1차 임무가 아닐까. 그 분석과 보고서를 바탕으로 당 지도체제와 노선, 로드맵을 제시하도록 하는 게 옳지 않을까. 대표 노릇을 좀 더 해야 당 체질이 바뀔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 “내가 하겠다. 선거 전후 나의 능력과 당 운영에 대해 당신들의 판단을 구한다”고 당당하게 선언하시라. 예상되는 비판을 무릅쓰고 비례2번에 셀프 배치했던 것처럼. 

선거 후 보름이 지나가는데 더민주당의 정치적 스탠스건 정책적 태도건 달라지는 모습이 뭐가 있는가. 더민주당 대표 직. 그래봐야 야당 대표다. 무슨 영화가 있겠고, 무슨 권세가 있겠는가. “김 대표의 당권 노욕”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상당하다. 필자는 생각이 다르다. 누릴 거 다 누리고 오를 자리 다 올라봤는데 무슨 영화나 부귀를 누리겠다고, 무슨 권세를 부리겠다고, 논란 자체가 체면 깎이는 짓인 합의추대를 은근히 흘리겠는가.   

“합의추대설은 아궁이 없는 연기다, 대표직 따위 관심 없다, 헌법에 경제민주화 조항을 담은 내 원고심려를 후배들이 잘 살펴 집권 액션플랜을 만들기 바란다. 감수나 자문은 기꺼이 하겠다. 이제 왕진의사는 환자 예후를 관찰하며 꼭 필요한 처방만 하겠다”. 이게 총선 표심을 정확히 읽고 반영하는 것 아니겠는가. 

옛날 동네 큰 잔치나 대행사가 끝난 뒤의 풍경, 잘 아시리라 믿는다. 차일 걷고, 집집마다 꺼내왔던 큰 상들 깨끗이 닦아서 넣고, 멍석과 그릇들도 다 제 집으로 돌려주며 정리한다. 대사 치르고 났으니 종부가 다시 일상을 운영해간다. 종부가 시원찮으면 일 잘 하도록 지켜보다 은근한 훈수 두는 게 문중 어른의 도리다. 종부가 어리고 미욱해보인다고 어디 처삼촌이 제주 되던가. 

대한민국의 가장 큰 비극은 말씀 귀담아 들을 ‘어른’이 없다는 것이고, 정치판의 가장 큰 약점은 리더가 없다는 것이다. 김 대표께서 리더란 이런 거라는 것을 보여주면 좋겠다. 대한민국에 몇 되지 않는 명망가의 후예이자 노정객에게 그 정도 기대는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이강윤.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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