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에서 연이어 발생한 노동자 사망사고에 국민과 노동계의 원성이 빗발치고 있다. 인명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안전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기보다 쉬쉬하며 어물쩍 넘어가려다 오히려 또 다른 사고를 야기했기 때문이다.

사업 특성상 조선, 건설, 제철, 석유화학 등 중공업은 다른 산업 분야에 비해 인명 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관심과 함께 꾸준한 안전교육이 진행돼야만 한다.

그동안 산업현장에서는 끊임없는 인명사고가 발생했고 이에 대해 그룹 최고경영진들이 머리를 숙여 사과하고 재발을 방지하겠다는 약속이 이어져왔다. 하지만 그런 약속이 번번이 깨졌다.

현대중공업에서는 올해만 다섯 번의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다섯 번의 사망하고가 발생했다면 크고 작은 안전사고는 더 많이 발생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틀리지만은 않을 것 같다. 이전에 발생한 사망사건은 일일이 거론하기도 힘들다.

현대중공업은 9분기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규모가 5조 원에 이른다. 우량기업 몇 개를 인수할 수 있을 정도의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한껏 뽐내며 각종 수주전에서 경쟁사들을 물리치며 승승장구했지만 글로벌 조선 경기가 침체에 빠지며 현대중공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그동안 체력을 비축해뒀기에 지금까지 견디고 있지만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현대중공업의 체력도 바닥이 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조선업의 날개 없는 추락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천문학적인 영업손실, 경기 침체로 인한 수주 절벽 직면 등이 인명사고를 덮을 수는 없다. 그들이 있었기에 활황을 누렸고 수주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년 전 권오갑 사장은 비를 맞으며 정문 앞에서 출근하는 직원들을 향해 파업 자제를 호소하며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진정성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 진정성이 지금은 의심된다. 노사가 화합을 해서 새로운 도약을 이루자고 다짐했지만 계속되는 인명사고에 ‘과연 진심이었을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사가 합심해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그 기저에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작은 것에서 신뢰가 깨진다면 이는 커다란 저수지가 작은 구멍 하나로 무너지는 것과 같은 현상이 벌어진다.

인명사고는 노사의 신뢰를 깨는 가장 커다란 구멍이다. 작업자도 자신의 안전을 지켜야하겠지만 작업 중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도 안전장치가 있어 안전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안정적인 작업이 이뤄질 것이다.

수년 전 현대중공업 울산 현장을 방문했을 때 느꼈던 것은 ‘거대하다’는 느낌과 함께 사방이 거대한 철골 구조물로 이뤄져 있어 ‘위험하겠구나’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래도 “안전하다”는 현대중공업 인솔자의 말에 신뢰가 갔지만 이제는 큰 실망으로 되돌아올 뿐이다.

지금의 글로벌 경제 침체는 시간이 지나면서 회복될 것이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각종 산업분야도 재도약을 이룰 것이다. 재도약을 이루기 위해서는 글로벌 인재와 숙련공이 반드시 필요하다. 경기가 회복돼 일감이 밀려와도 일할 사람이 없다면 기회를 놓치고 말 것이다. 현재 현대중공업이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인명사고가 계속되는 것을 받아들일 국민은 아무도 없다.

불의의 사고로 생명을 잃은 이들의 가족과 친지 앞에서 그리고 국민들 앞에서 10년 전 방송의 재방송을 다시 보는 듯한 똑같은 사과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대중공업을 재도약시키는 이들은 결국 그들이기 때문이다. TV 속 등장하는 ‘사람이 미래다’라는 문구를 현대중공업이 잘 새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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