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이 주장하고 있는 것 처럼 ‘호남 석권’이 현실화된다면, 또 다시 ‘지역감정’이 운위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지역감정이 거론되기 시작하면 호남고립과 호남비하가 차례로 꼬리를 물 것은 자명하다. 이야기가 그 지경으로 흐르면 온갖 비방과 감정적 언사가 난무하고, 어쩌면 영원히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남긴 채 감정의 골은 안으로 안으로 내상화-구조화될 것이다. 필자가 염려하고 경계하는 것은 이것이다.

안철수대표는 지난 연말 탈당하면서 용도폐기된 새정치 대신 양당구도 타파를 들고 나왔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3당제, 또는 다당제가 성공하려면, 의원내각제와 정당명부비례대표제가 동반되어야 한다.

안 대표가 놓치고 있는 게 하나 있다. “양당구도 타파”만 외치느라 ‘호남자민련화’로 인한 호남의 2중, 3중 질곡은 보지 못한다. 판세가 이대로 흘러 호남에서 다수 의석을 확보하면 그저 “이겼다”고 생각할 것이다. 현재 판세를 종합하면 국민의당은 호남 제외 지역에서 겨우 1~2석 정도를 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호남자민련’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호남자민련. 호남 분들에게 불명예의 극치이자, 정치 퇴행의 상징어다.

설령, 국민의당 주장대로 호남을 석권해서 가까스로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한들 “양당구도 타파했다”고 할 수 있을까? 동의하지 않는다. 국회 지배구조에 변화나 중대한 균열을 가하지 못하는 한, 교섭단체 갯수만 늘어날 뿐 양당구도 그 자체는 온존된다. 그렇게 해서 국회의 일각을 차지한들 그들이 주장하는 ‘대표성’은 특정 지역의 몽니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필자의 사견이 아니다. 과거 자민련이 여실히 보여줬다. 충청 분들은 자민련이라는 말을 아직도 달갑지 않게, 부끄럽게 여기고 있는 듯 하다. ‘셀프 소외’이자 일종의 정치적 자해였다는 얘기다.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노태우의 민정당은 125석, 김대중의 평민당은 70석, 김영삼의 통민당은 59석, 김종필의 신공화당은 35석을 얻었다. 서울에서는 평민당이 17석으로 1위, 민정당과 통민당이 각 10석으로 공동 2위, 신공화당이 3석으로 4위였다. 수도권으로 넓혀보면, 민정당 32석, 평민당 19석, 통민당 14석, 신공화당 9석이었다. 김대중의 평민당이 정치사적 의미를 획득했던 것은 서울에서 1당이 됐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 평민당은 호남(광주와 전남•북) 전체 37석 중 36석을 말 그대로 석권했다. 국민의당이 호남에서 1988년 평민당과 버금가는 의석을 얻는다 해도 평민당과는 본질적으로 다름은 물론, 수도권에서 9석을 얻은 김종필 신공화당과도 비견할 바 못된다.

지금 호남에 읍소하며 올인하는 안철수-천정배-정동영의 최대 과오는 호남을 또 한 번 정치-사회적 볼모로 삼고있다는 점이다. 3인은 “양당구도타파”와 “호남정치복원”을 기치로 내걸고 있다. 전술했다시피 호남 의석만으로 겨우 교섭단체를 구성한들 전국적 대표성을 가진 교섭단체의 비중과 파괴력은 얻지 못한다. 양당구도를 타파하려면 수도권과 영남에서도 구 체제와 싸워 이겨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고 있는가? “비례대표 정당투표에서 10~16%(예상치 종합)를 얻었으니 전국정당”이라고 반론할 것이다. 3인에게 질의한다. 지지율 10~16%가 양당구도 타파의 추동력으로 충분하다고 보는가?

또 하나. 호남정치복원이 아니라 호남‘개혁정치’복원이 핵심이었다. 그것이 지난 민주화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호남의 역할과 희생에 복무하는 것이다. 그 희생으로부터 부여받은 호남의 ‘민주적 정통성’에 복무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호남기득권에 안주해왔다고 비판받는 토호화된 다선 의원들의 재공천으로, 호남정치개혁에 대한 열망을 희석시켜버렸다. 단순히 희석시킨 정도가 아니다. ‘호남홀대론’을 유포시키며 호남정치개혁요구를 영-호남 대립정서로 교묘히 치환하고 있다. 눈 앞의 승리를 위해 손 대서는 안되는 독배에 손을 대고 있는 것이다.

호남인들이 더불어민주당을 왜 외면한다고 보는가? 수십 년 몰표와 기득권에 안주한 토호성 정치인들을 물갈이해서 정권교체를 이루라는 것인가, 아니면 영-호남 대결정서를 바탕에 깔고 호남을 독립시키자는 것으로 보는가. 그건 호남독립이 아니라 호남고립으로 귀결될 공산이 농후하지 않은가. 그래서 3인은 결과적으로 ‘호남’을 정치적 볼모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당을 지지하는 호남인들이 “호남자민련까지를 승인했다”고 해석한다면, 민심왜곡이자 정치적 폭력이다.

안 대표는 4년 전 정치에 입문하면서 “한나라당(당시 명칭) 세력의 확산에 반대한다”고 공언했다. 그 말, 지금도 유효한가? 바뀌었는가? 바뀌었다면 왜, 어떻게 바뀌게 되었는지 밝히는 게 공당의 대표로써 도리이다. 오죽하면 새누리당이 “국민의당 잘한다, 안철수대표 잘한다”는 칭찬을 하겠는가. 비아냥인지 칭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강윤(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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