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자산총액 5조 원 이상인 65개 기업집단을 ‘상호출자제한 채무보중제한 기업집단(대기업 집단)’으로 지정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산업계의 표정은 굳어 있다. 시대가 변했음에도 기준이 낮아 업계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된 기업은 계열사 상호 간 출자와 신규 순환출자가 금지된다. 아울러 계열 금융, 보험사에 대한 의결이 제한되기 때문에 경영활동에 제약이 많아진다.

이 때문에 대기업집단에 지정되는 기업은 그만큼 기업의 규모가 크다는 것을 인정받았다는 영광과 동시에 의무와 책임이 커진다는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다.

시대가 변해 산업과 금융 간의 융합도 지속적으로 시도되고 있다. 인터넷 전문은행이 금산(金産) 융합의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다. 다음카카오도 인터넷 전문은행에 참여하고 있지만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인터넷 전문은행에 대주주로 참여하기 어려워 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KT 또한 마찬가지다. K뱅크를 이끌고 있지만 금산분리 원칙을 엄격히 적용할 시작부터 가속도를 낼 수 없게 된다. 정부가 적극 추진하고 있는 신(新)산업의 뿌리가 안착하기 전에 정부가 마련한 규제로 인해 고사(枯死)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산업계에서는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금까지 계속해서 지적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당국에서는 그동안 손을 놓고 있었다.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 투명한 지배구조를 확립하기 위해 마련한 요건인 만큼 함부로 손대기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물론 대기업의 무분별한 확장으로 인해 중소기업에 피해가 발생하고, 순환출자 규제 완화로 인해 경쟁력이 약한 계열사에게 우량 계열사들이 수혈을 하는 것을 그대로 보고 있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전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산업 간 융합을 뜬눈으로 바라만 봐서도 안 된다. 새로운 시장에서 우리 기업이 경쟁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는 낭패를 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자산규모 5조 원 요건이 이제 막 규모가 커지고 있는 기업이 대기업집단으로 편입돼 성장에 장애물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 정부는 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발생할 경우 이를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현재의 상황이 그렇다. 지금이라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시장에 뛰어들려는 많은 기업들은 주저할 수밖에 없다. 이는 곧 대한민국 경제의 정체 또는 퇴보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대기업집단에 편입되는 자산기준을 높여 조금 더 많은 기업들이 자유롭게 경영활동을 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월등히 많은 자산을 보유한 기업들에게까지 관리·감독을 느슨하게 해서는 안 된다. 이 경우 자칫 ‘대기업 봐주기’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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