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이 주주총회장에 나타나 머리를 조아렸다. 한 대기업 총수가 자신의 승용차를 몰던 운전기사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다는 의혹이 일었을 때만 해도 입을 굳게 다물고 있던 그가 이름이 언론에 공개되자 곧바로 사과했다.

자신의 잘못에 곧바로 사과하는 것은 대기업 총수가 아닌 ‘인간’으로서도 보기 좋은 모습이라 할 만하지만 이미 때는 많이 늦은 듯하다. 자신의 이름이 나오기 전까지 모르쇠로 일관하다가 이제야 사과하는 모습은 그다지 수긍하기 힘들어 보인다.

더욱이 부친인 이준용 명예회장은 지난해 사재 2000억 원을 기부했다. 재벌가에서 흔히 벌어지는 경영권과 재물 다툼으로 인해 재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날로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 명예회장의 ‘아름다운’ 기부는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란 칭송을 듣기에 전혀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아들인 이 부회장의 ‘갑질’로 인해 이 명예회장의 순수한 의도마저 퇴색되는 느낌이다. 심지어 이 명예회장이 기업을 잘 이끌었고 사회적 책임도 다했지만 ‘자식 농사’는 잘 못 지었다는 비난의 목소리마저 들려온다. ‘운전기사에게 했던 행동이 과연 이번이 처음이겠느냐’, ‘다른 임직원들한테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겠느냐’, ‘지금까지 왜 사과를 안 했느냐’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이들도 많다.

잊을만 하면 터지는 재벌들의 그릇된 행동에 서민들은 한숨을 쉰다. ‘돈이 있으니 저러지’라고 하며 혀를 찬다. 그래도 시간이 이 같은 일들은 잊힌다.

올해 초 퇴직한 대기업 고위 임원과 점심식사 자리에서 우연치 않게 재벌 일가의 집안 교육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이 임원은 우리나라 재벌가 인물 중에서는 간혹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유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재벌 2세보다는 3, 4세가 많다고 했다.

이에 기자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재벌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을 때는 70, 80년대였을 그 전까지 재벌 2세들도 부모님들이 고생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꼈을 것 같다. 더욱이 유교적 관습이 지금보다 강해 부모님은 자식들에게 절대적인 존재였을 것이다”고 말을 꺼냈다. 하지만 재벌 3, 4세들은 이미 어느 정도 기반이 안정된 후에 태어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모의 어려움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을 것이고, ‘밥상머리교육’도 거의 자취를 감춰버렸으니 부모로서는 외국에 유학 보내는 것이 자식들에게 좋은 것으로만 생각했던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 임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정교육은 자식들의 인성을 마련해주는 데 큰 역할을 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가정교육을 제대로 못 시켰을 테니 결국 부모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수긍했다.

과연 이 부회장의 잘못된 행동은 부친의 인성교육이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이 부회장이 제대로 못 받아들여서인 것일까?

이 부회장은 자신이 일으킨 물의에 대해 고개를 숙였고, 사과했다. 어느 정도의 진심을 담았는지는 본인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외 모든 이들은 앞으로 이 부회장의 행동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그는 재계순위 18위의 그룹을 이끄는 총수다. 총수는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그것도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따라서 이번에 일으킨 사회적 물의에 대해 머리 숙여 사과했으니 그것으로 도리를 다했다고 스스로 자위하면 안 된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기 전까지 움추리고만 있었다. 이에 임직원들도, 국민들도 실망했다. 더욱이 경영자로서 모범이 되고 있는 부친에게 실망을 안겨준 후에 사과하는 것은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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