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지난 2월 서울 서초구 서울가정법원에서 열린 ‘성년후견인’ 관련 심리에 참석한 뒤 휠체어를 탄 채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지난 2월 서울 서초구 서울가정법원에서 열린 ‘성년후견인’ 관련 심리에 참석한 뒤 휠체어를 탄 채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이주현 기자]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에 대한 관심이 또 다시 높아지는 분위기다. 90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지난해 여름 ‘왕자의 난’이 터지기 전까지 롯데그룹 경영을 좌지우지했던 신 총괄회장의 은퇴가 가까워 보여서다.

지난 7일 롯데제과는 신 총괄회장을 등기이사로 재선임하지 않겠다고 공시했다. 오는 25일 열리는 정기주주총회에 신 총괄회장 대신 황각규 롯데그룹 정책본부 운영실장(사장)의 새로운 등기이사 선임 안건을 상정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황 사장은 신 총괄회장과 대척점에 서 있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최측근으로 꼽힌다.

신 총괄회장은 49년 만에 롯데제과 등기임원에서 물러날 공산이 크다. 신동빈 회장과 그 우호지분을 고려할 때 25일 주총에서 황 사장 선임 안건 통과가 확실시된다.

신 총괄회장의 롯데제과 등기임원 퇴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롯데그룹에서 차지하는 롯데제과의 무게 때문이다. 일본에서 성공한 신 총괄회장이 1967년 한국에 처음 세운 기업이 롯데제과다. 한국 롯데그룹의 모태인 셈이다. 게다가 롯데제과는 다른 계열사 지분도 적지 않게 보유하고 있다.

‘왕자의 난’ 이후 도마 위에 올랐던 복잡한 지배구조 개선에 나선 신동빈 회장이 먼저 롯데제과 지분을 늘린 걸 보면 롯데제과의 무게를 알 수 있다. 신동빈 회장의 영향력이 미치는 일본의 (주)롯데도 롯데제과 주식의 공개매수를 통해 롯데알미늄에 이어 2대 주주로 올라섰다.

롯데제과에 대한 신 총괄회장의 관심도 각별하다고 알려졌다. 지난해 롯데그룹 총수 일가의 경영권 다툼이 불거진 뒤 한 계열사 직원은 신 총괄회장이 “롯데제과의 껌 종이 원가까지 보고받으며 경영 상태를 챙겼다”고 말했다. 롯데제과는 신 총괄회장의 등기이사 퇴진에 대해 이달 21일 임기가 만료되고, 1922년생 고령이어서 경영에 참여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었다.  

신 총괄회장은 롯데제과 외에 호텔롯데, 롯데쇼핑, 부산롯데호텔, 롯데자이언츠, 롯데알미늄, 롯데건설 등의 등기임원도 맡고 있다. 재계에선 신 총괄회장이 롯데제과에 이어 나머지 계열사 등기임원에서도 줄줄이 물러날 것으로 본다. 

게다가 신 총괄회장은 정신감정까지 받아야 할 처지다. 지난 9일 서울가정법원은 신 총괄회장의 ‘성년후견인 개시 심판 청구’ 2차 심리에서 4월 중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정신감정을 받아야 한다고 결정했다.

‘성년후견인’은 정신적 제약으로 판단 능력이 부족한 경우 후견인을 지정해 법률행위를 대리할 수 있는 제도다. 신 총괄회장에 대한 성년후견인 지정은 지난해 12월 신 총괄회장의 네 번째 여동생 신정숙씨가 신청한 바 있다.

신 총괄회장에 대한 서울대병원의 정신감정 결과 이상이 있다고 확인된다면 신동주-동빈 형제의 경영권 다툼에 결정적 영향을 줄 것이다. 판단 능력이 멀쩡하다는 정신감정 결과 나와도 신 총괄회장의 은퇴는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지난해 7월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주도한 ‘왕자의 난’을 계기로 신 총괄회장의 노년은 분수령을 맞았다. 두 아들의 경영권 다툼에서 신 총괄회장은 큰아들 편을 들고 있지만, 작은아들 승리로 기우는 흐름이다.

얼마 전까지 한·일 롯데그룹 경영을 좌지우지했던 신 총괄회장 입장에서 심기가 편할 리 없겠으나 이젠 깔끔한 마무리를 준비할 때라 할 수 있다. 새 출발을 설계할 때라는 뜻이다. 아무리 고령이라도 새 출발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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