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웬만한 학교는 운동장에 인조잔디를 깔아 진흙탕 축구는 옛말이 됐다. 15년 전만 해도 비만 오면 체육은 실내 수업으로 대체되기 일쑤였지만, 혈기방장한 10대 머스마들은 웃통 벗어제끼고 진흙탕에서 뒹구는 걸 재미로 여기기도 했다. 물론 이전투구다.

총선이 25일 남은 지금 모든 정당은 누가누가 못하나 경쟁중이다.당 내분이 봉합됐다고는 하지만 정체성 혼란으로 인한 극심한 내분에 인물난을 겪으면서 한 축이 무너진 국민의당은 갈팡질팡, 준 와해상태다. 야박하게 들리겠지만, 자력 당선자 숫자보다는 상대 집을 얼마나 삭감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 정치적 후과는 만만치 않을 것이고, 안철수대표의 앞날에 치명상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새정치 대신 들고나온 “양당구도 타파” 역시 공명도 실효도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게 안 대표의 최대 상처다.

땅 짚고 헤엄치기가 될 거라던 새누리당은 안팍으로 내 코가 석 자가 돼버렸다. 눈 밖에 난 사람들 쳐내다 보니 여기저기서 종주먹질에 무소속출마가 줄을 이어 ‘1여 다야’ 구도가 ‘2여 다야’로 바뀔 게 확실해졌다. 지난 18대총선 당시의 친박연대 돌풍만큼은 아니겠지만, 타격은 상당할 것이다. 자기 집을 자기 돌로 메꾸는 자충수가 되기에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도 심난하기는 마찬가지. 필리버스터 중단 이후 야당통합 제안으로 국면 반전에는 성공했으나 이후 공천문제로 계속 스텝이 꼬인다. 대표의 지향점이나 총선 아젠다셋팅 영점 조정능력에 문제가 노출됐다. 영점 조정이 1mm만 틀려도 탄착점은 과녁에서 최소 50m는 벗어난다. 전통적 지지표의 분산으로 여야 모두 극심한 혼전이 불가피하다. 현재로서는 계가 자체가 불가능한 지경이다.

제1, 2당인 새누리와 더민주 중 누가 더 타격이 클까. 섣부른 예측이긴 하지만, 그래도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고정표가 단단한 새누리 쪽의 피해가 조금 덜 할 것 같다. 이득이 크리라는 게 아니라, 손해가 적을 거란 얘기다.

이번 4.13 총선은 선거구획정 자체가 워낙 늦었던데다 정파도 많아 역대 총선 중 전선이 가장 복잡하게 엉켜, 중구난방과 오리무중이 최대치에 이를 전망이다. 시대정신 논쟁이 사라진 건 물론이고, 남은 기간 동안 쟁점화될 가능성도 전무해보인다. 오늘(3월 18일) 현재까지로 보자면, 이번 총선의 키워드는 ‘방향성 완전실종’과 ‘비효율의 극치’로 집약된다. 쌍방 모두 화력을 최대로 동원해 퍼붓고 있는데 누가 누구에게 쏘는지, 가서 제대로 맞히는지, 맞힐지는 아무도 모른다. 안개가 극심해 척후병의 정탐활동 자체가 힘들다보니 사령관에게 전선(戰線) 보고가 아예 올라가지 못한다. 사령탑도 공천 권력다툼에 정신이 없어 보고받을 겨를도 없다. 그저 서로간에 안개 속으로 총만 쏠 따름이다. 중앙당의 정교한 총선전략과 긴급사태 발생 시 대처하는 사령탑 기능은 온데 간데 없다. 그저 “어떻게 되겠지 뭐…”하며 서로의 얼굴만 들여다보는 형국이다.

총선이슈를 선제적으로 제기하고 이슈파이팅에 들어갔어야 할 시점이 지나도 한참 지났건만, 모든 팀이 스타팅 멤버도 고르지 못해 유니폼도 입지 못하고 있다. 폭우 속 질척거리는 맨땅 축구가 불가피하다. 공은 물을 잔뜩 먹어 힘껏 차도 몇 미터 나가지 못한 채 땅에 처박히고, 선수들은 뒤엉켜 이전투구 그 자체일거다. 설령 골이 들어가도 유니폼 배번이 흙탕에 가려 누구 골인지 알아내는 데 한참 걸릴 것 같다. 관중이나 중계 캐스터나 황당무계한 경기가 되겠다. 축구경기 한 판이면 날씨 탓에 운동장 사정 핑계를 대며 어쩔 수 없다고 치부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권력의 원천이자 주권 위임자를 이런 뽄새로 뽑고 있다. 총선 이슈에 불이 지펴질 가능성은 무망하고, “너는 이래서 떨어져야 해”만 난무할 게다. 이래저래 죽어나는 건 정치 주체이자 정치행위의 소비자들인 국민 뿐이다. 의석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한국정치사에 가장 큰 숙제를 남기는 선거가 분명하다. 학교운동장은 거의 다 인조잔디인데, 21세기 후기정보화사회의 한국정치는 갈수록 수렁이다.

(이강윤. 언론인. lkypraha@naver.com)
전) 동아일보 기자. 문화일보 부장.
전) <이강윤의 오늘>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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