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국회를 망친 장본인은 누구인가

32일 국회에서는 어제 192시간 25분이 소요된 야당의 필리버스터가 종료된 직후, 테러방지법을 의결했고 이어서 북한인권법 그리고 선거구 획정안을 담은 선거법 개정안 등을 의결했다. 여야가 첨예하게 맞섰던 테러방지법의 경우 야당이 퇴장한 상태로 여당 단독으로 원안을 통과시켰다. 이날 선거구 획정안 처리로 2016110시부터 국회의원 선거구가 전면 무효가 된 지 62일 만에 무법 상태를 벗어나게 됐지만 이렇게 장기간 무법상태로 방치된 것은 정부와 여당의 책임이 크다. 여야가 선거구를 획정안과 비례대표 선출방식 등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새누리당은 야당의 제안을 묵살하고 요지부동으로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시켰다. 테러방지법 또한 야당이 독소조항을 고치면 합의할 뜻을 밝혔지만 한 자도 고칠 수 없다는 완강한 태도를 견지하며 국회의장을 지속적으로 압박하여 직권상정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했다. 결국 청와대의 뜻대로 테러방지법과 선거법을 연계처리 하는 데 성공했는지 모르겠지만 이것이 책임 있는 정부 여당의 태도라고 볼 수는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3.1절 경축사에서 극히 이례적으로 국회에 대해 지금 대내외적인 어려움과 테러위험에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이 노출되어 있는 상황에서 국회가 거의 마비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직무유기이자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과 다름이 없다며 국회를 비난했다. 박대통령은 이어서 이럴 때일수록 국민 여러분의 진실의 소리가 필요합니다. 나라가 어려움에 빠져있을 때 위기를 극복하는 힘은 항상 국민으로부터 나왔다면서 다시 국회심판론을 꺼내들고 국민을 향해 정치권 심판을 주문했다. 대통령의 반복되는 국회심판론은 헌법이 명시한 3권분립 정신을 훼손하는 것인 동시에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입법부를 향해 국민이 심판하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오만한 발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3.1절 경축사에서 민생구하기 서명운동에 나선 국민들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들의 힘으로 대한민국을 바꿀 것이라고 밝힌 비 있다. 경제계가 앞장선 서명운동에 동참한 국민도 있지만 같은 시기에 노동법 개악을 반대하는 서명운동에 참여한 또 다른 국민들도 많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과거 독재정권처럼 권력의 뜻에 따라 움직이던 국회가 효율적이고 생산적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다수의 힘만으로 일방통행식으로 국회를 운영하는 상태에서는 국민 모두의 마음을 한데 모을 수는 없을 것이고 국정과제를 추진할 동력을 얻을 수도 없을 것이다. 일부 보수언론과 종편 등에서 19대 국회가 최악의 국회라고 규정하면서 마치 그 책임이 대통령의 뜻을 힘 있게 밀어붙이지 못하는 새누리당이나 반대하는 야당 탓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생각과 이해관계을 가진 다양한 세력을 대표하는 정당이 해서 서로 타협하여 절충점을 찾는 것이 국회의 본 모습이다. 다른 생각을 조금도 용납하지 않고 다수당이 자신들의 정파적 이익이 걸린 문제는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 태도야말로 국회를 망치는 행태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야당을 겨냥한 대통령의 국회심판론은 정치 중립에서 벗어나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초, 국회에서 탄핵을 받았던 것은 대통령의 발언이 선거 중립의 의무를 저버렸다는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반복되는 국회심판론이 다가올 총선에서 야당을 심판해 달라는 것에 다름이 아니라면 그 또한 선거 중립에서 벗어난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의 소위 친박진영에서 대통령 가까이에서 뜻을 받들다가 총선에 출마하는 사람들을 진박이라 부르며 이들을 공천하고 당선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진실한 사람, 진실의 소리 등을 반복해서 언급하는 것 또한 간접적으로 이들에게 힘을 싣는 메시지라고 볼 수도 있다. 대통령은 자신에게 비판적인 정치적 반대자를 포용할 생각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들을 약화시킬 의도로 선거에 개입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자칫 선거의 공정성이 의심받게 되는 상황이 되면 그 반대급부는 국정혼란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새누리당 공천과정에서 그동안 압도적 명분으로 비쳐졌던 상향식 공천이 무력화되면서 살생부가 공공연하게 거론되고 전략공천이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이런 일련의 흐름 또한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서 청와대에서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은 현재의 정치상황에서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 후반의 국정과제를 힘있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집권여당에 대한 장악력을 강화할 필요성을 느끼고 또 그 집권당이 국회에서 야당에게 발목을 잡히지 않는 의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총선은 국민들이 지난 3년여 박근혜 정부의 성적표를 보고 냉정한 평가를 내리는 과정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며 평가를 받아야 할 대통령과 청와대가 그 과정에 개입하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20대 국회가 반대자의 목소리는 철저하게 외면당하는 퇴행적 모습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의 장으로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비판할 것은 하되 뒷받침할 것은 하는 생산적인 국회가 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은 철저하게 정치적 중립의 의무를 지켜야 할 것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