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진보 싫다고 보수로만 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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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연합뉴스>

한 달여 동안 탄력을 받던 국민의당이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지율 면에서는 더불어민주당과 여전히 각축을 벌이고 있지만 일단 상승세는 멈춤에 들어갔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여기에는 더민주가 영입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며 효과를 거두고 있는 점, 문재인 대표의 사퇴가 예고되면서 탈당 행렬이 소강국면에 들어선 점 등이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국민의당이 최근 들어 눈에 띄게 답보 상태에 들어간데는 자신의 문제가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선은 한상진 창준위원장의 ‘이승만 국부’ 발언 파문이 있었다. 발언 자체도 부적절했을 뿐 아니라 사후 대처도 문제가 있었다. 보수층을 의식한 메시지였겠지만, 4.19 혁명으로 쫒겨난 독재자를 국부라 칭했으니 반발이 따르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도 한 위원장은 해명만 하고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한 위원장이 이런 얘기를 꺼낸 것은 보수층으로까지 지지 기반을 넓히겠다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야당을 하겠다면서 국민적 상식에도 반하는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이 의아하다. 무엇보다 이승만을 무엇이라 평가하는가는 국민의 관심사도 아니요, 민생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논의일 뿐이다. 미래로 가야할 시점에 어째서 과거의 무덤으로 가서 자신을 드러내려 하는가. 미래를 얘기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알려야지, 어째서 무덤 앞에서 그러고 있나.

게다가 국민의당 일부 의원들 입에서는 원내교섭단체가 구성되면 테러방지법과 북한인권법 등에 대해서는 여당과 협조하여 처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 역시 부적절해 보인다. 아직까지 그런 법안들이 처리되지 못하고 있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테러방지법의 경우는 국정원에 과도한 권한을 부여하는 문제점, 북한인권법은 북한을 자극만할 뿐 아무런 실효성이 없다는 문제점 등이 제기되어 왔다. 문제가 되는 내용에 대해 여당 측이 의미있는 개선을 하려 한다면 모를까, 제3당이 되면 존재감을 보이기 위해 쟁점법안들 처리에 무조건 나선다는 것도 선후가 바뀐 모습이다. 더 신중해야 할 일이다.

국민의당은 근래 들어 뚜렷한 우향우 행보를 보이고 있다. 물론 우리 야당들도 합리적 보수층으로 지지기반을 넓혀야 정권교체도 가능하다는데 동의한다. 모든 사안들을 보수-진보의 잣대로 나누어 진영논리로만 판단하는 것에 반대한다. 하지만 지금 국민의당이 보이는 모습이 박근혜 정부의 오만과 실정에 등 돌린 국민들의 마음을 읽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일단 야당은 야당다워야 한다.

‘이승만 국부’ 발언으로 당장 국민의당에 대한 호남의 여론이 달라지고 있다는 얘기들이 전해진다. 국민의당은 자칫 호남당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들을 만큼, 호남을 전략적 승부처로 삼고 있다. 그런데 정작 호남 민심의 요구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고 있는 듯하다. 호남 민심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박근혜 정부를 제대로 견제할 것, 그래서 정권교체의 희망을 만들어줄 것을 야당에게 주문하고 있다. 문재인 대표에게 등 돌리는 현상이 나타났던 것도 근본적으로는 그 역할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 때문이었다. 그런 호남 민심이 ‘이승만 국부’ 발언에 고개를 가로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독재에 대한 과도한 칭송을 사과하든지, 아니면 호남을 포기하든지 할 일이다.

국민의당은 새로운 중도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저 보수와 진보, 여와 야 사이의 중간에만 위치하면 되는 걸로 아는 안이한 발상들이 눈에 띈다. 새로운 중도의 힘은 진영을 넘나드는 역동성을 보일 때 만들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국민의당이 전직 장관이나 관리 같은 스펙 우선의 영입이 아니라, 별다른 스펙은 없지만 사회적 약자로서의 상징성을 갖는 인물을 영입 1호로 내세웠다면 어떠했을까. 아마도 안철수라는 정치인에 대해 갖고 있는 선입관들을 깨는데 적지않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국민의당이 보이고 있는 더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 사회의 약자들에 대한 관심이 표현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약자들의 손을 잡아줄 수 있는 따뜻한 중도의 모습이 없다. 강자와 약자 사이에서 중간에 위치하는 것이 진정한 중용이나 중도는 아닐게다. 강자는 힘도 있고 대변해줄 사람들도 많지만, 약자에게는 아무 것도 없다. 그렇다면 약자의 편을 조금 더 들어주어야 사회라는 저울의 추가 중심을 잡게 된다. 보수표 얻겠다며 그리로만 갈 일이 아니다. 자기 집에서 예쁨받지 못하면 다른 집 가서는 괄시받게 되어있다. 내 눈에는 국민의당이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야당 하겠다고 했으니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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