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의 결과는 안철수의 손에 달려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본다. 안철수가 무당파층와 일부 보수층으로 지지기반을 넓혀 야권의 외연을 확장한 뒤 야권연대를 성사시키다면 야권은 대반전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 물론 야권연대시 더불어민주당이 싫어 다시 이탈하는 층이 있겠지만, 그래도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의 양자 대결 때보다 훨씬 나은 결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마지막까지 야권연대 없이 3당구도로 투표일을 맞을 경우 야권이 참패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에서의 참패는 야권에 재앙을 불러올 것이다. 안철수가, 아니 안철수 신당이 앞으로 야권연대에 대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총선 결과는 극과 극의 결과를 맞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시점에서 야권연대의 가능성 여부는 안개 속에 가리워져 있다. 물론 당연한 일이다. 아직 안철수 신당이 만들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정리된 입장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더욱이 이제 막 세력화를 시작한 입장에서는 야권연대는 할 때 하더라도 아직은 입에 담을 얘기가 아니다. 갈라서자마자 연대하겠다고 하는 세력을 누가 지지하겠는가. 야권연대에 관한 안철수 신당 쪽의 모호한 태도는 충분히 이해되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선거가 불러오는 착시 현상 때문이다. 후보든 정당이든 일단 선거판에 들어가면 자기를 둘러싼 지지자들만 보인다. 그래서 너도 나도 이길 수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더구나 안철수 신당 쪽은 출발하기도 전에 예상을 넘어서는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순식간에 더불어민주당과 각축을 벌이며 3당구도를 몰고왔으니 말이다. 고무될 법하다.

그래서인가. 안철수 의원은 "새누리와 더불어민주당이 2~3등에서 엎치락뒤치락하게 만들 것"이라고 기자들 앞에서 말했다. 그의 말대로 안철수 신당이 1등으로 올라서는 상황이 된다면 굳이 야권연대를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정치를 바꾸겠다며 발을 내딛는 정당이, 더구나 국민의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는 정당이 그 정도의 포부를 갖는 것은 좋은 일이다. 또 그 가능성을 미리 배제할 이유도 없다. 민심의 흐름이 어디로 갈지는 아직 누구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발 떨어져서 냉정하게 봤을 때 그러한 포부가 현실이 될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특히 수도권의 경우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에게는 무슨 일이 있어도 묻지마 지지를 보내는 고정 지지층이 있다. 안철수 신당이 경쟁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만 해도 아무리 국민의 불신이 크다 해도, 어떤 경우에도 문재인 대표를 지지하는 층이 15~20퍼센트는 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안철수 신당의 지지율이 계속 상승세를 타서 더불어민주당을 앞서게 된다 해도, 두 야당의 지지율을 합하면 새누리당에 앞서지만, 어느 야당도 단독으로는 새누리당을 이길 수 없게 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

안 의원이 말한 가능성을 굳이 배제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 꿈이 현실이 되지 못했을 경우를 생각하자는 것이다. 아직은 때가 아님을 알면서도 이런 얘기를 미리 꺼내는 것은 일종의 노파심 같은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안철수 신당 주변에서는 끝까지 야권연대를 고려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들이 있다. 설마 끝까지 그러랴 싶기는 하지만, 정치적 열정은 종종 합리적 판단을 뒤로 밀어버리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1987년 대선에서 있었던 양김의 분열이다. YS와 DJ가 동시 출마하면 노태우 표를 당해낼 수 없으리라는 것은 상식적 판단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지지자들의 열광에 둘러싸인 양김은 제동장치 없는 질주를 했고, 6월항쟁의 열매를 군사반란의 후예들에게 선사하고 말았다. 그 때의 뼈아픈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새로운 정치에는 예측가능한 정치도 포함되어야 한다. 당장 한달 후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정치는 정상적인 정치가 아니다. 그런데 지금이 그 상황이다. 총선이 세달 반 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선거구도가 어떻게 되는지조차 내다보기 어렵다. 정치세력은 국민에게 예측가능한 정치를 해야 할 책임이 있다. 당장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마음이 떠난 수도권 의원들도 겁이 나서 탈당을 못한채 눈치만 보고 있지 않은가. 안철수 신당이 끝까지 야권연대를 안 하면 수도권에서는 당선이 불가능할 것이고, 모험을 하느니 그냥 있는 것이 낫다는 판단일 것이다. 하지만야권연대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안철수 신당으로 가더라도 일단 2등만 하면 야권연대를 통해 당선을 내다볼 수 있다는 판단을 할 수 있게 된다. 누구보다 안철수 신당 자신의 세 확보를 위해서도 야권연대의 가능성은 열어놓는 것이 필요하다. 야권연대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 지지층 규합을 위한 노력과 상충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를 더 많이 지지해주면 야권연대에서 우위를 점해 제1야당도 바꾸고, 박근혜 정부도 견제할 수 있다는 호소가 충분히 가능하다.

물론 야권연대 추진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제1야당의 불공정행위에 대해서는 국민이 함께 감시할 것이다. 아무쪼록 안철수 신당이 더불어민주당과의 승부에만 갇히지 말고 야권 전체를 보면서, 아니 나라의 민주주의를 생각하면서 20대 총선의 길로 가기 바란다. 다시 지지받는 만큼 역사에 대해 책임져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