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수영 산업부장
▲ 전수영 산업부장
아흔을 훌쩍 넘기신 외할머니를 최근에 뵀다. 초등학생 시절, 방학이 되면 무조건 시골로 내려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보고, 만지고, 느꼈던 모든 것이 현재의 내가 성장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됐을 것으로 믿고 있다.

이제는 노쇠하셔서 낮에는 소일거리로 농사를 지으시고, 저녁에는 텔레비전을 보시며 시간을 보내고 계시는 외할머니께서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초점을 맞춰가며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셨다. 그 모습이 괜히 짠하기만 했다.

채널을 돌리던 외할머니께서는 문득 “예전에는 여기저기 (채널을) 돌려도 잘 나오던데 이제는 아무리 돌려봐도 나오는 곳이 별로 없어. 싼 걸 봐서 그런 거니”라며 투정 섞인 말로 내게 물었다.

생각해 보니 촌로(村老)인 외할머니에게 텔레비전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낙(樂)이자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였던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친구(채널)가 점점 줄어드는 게 매우 아쉬웠던 모양이다.

최근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를 놓고 이동통신3사의 공방이 치열하다. 케이블TV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향후 새로운 플랫폼을 통한 이익을 창출하려는 SK텔레콤과 이를 막겠다는 KT와 LG유플러스의 협공이 매섭다.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 기업의 존재 이유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것을 두고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경쟁은 품질과 서비스를 향상시키고 이를 이용하는 고객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이 독점적인 구조가 됐을 때는 얘기가 다르다. 독점 위치에 있는 기업을 뺀 나머지 경쟁자들은 자신들끼리 ‘치킨게임’을 벌일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그 안에서 또 다른 우월적 지위를 가진 기업이 탄생된다. 만약 한 기업만이 살아남는다면 기존 독점적 지위를 가진 기업과 맞설 수 있겠지만 현대 산업구조에서 이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결국 독점적 지위를 가진 기업과 그 기업을 제외한 몇 개의 기업이 무게추가 한 쪽으로 쏠린 시장에서 경쟁하게 된다. 이미 승패는 뻔하다.

독점적 지위의 기업은 가격은 그대로 두면서 서비스 품질을 낮추거나, 서비스 품질을 높이면서 가격을 높일 수 있게 된다. 나머지 경쟁자들은 제살 깎아먹기를 하며 소비자들에게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하거나 투자를 통해 서비스 품질을 올릴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기업의 채산성을 악화시키게 되고 종국에는 존폐의 위기에 놓일 것이다.

너무 과장된 생각일지도 기우에 그칠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안 되리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그런 우려가 현실화된다면 얼마나 더 사실 수 있을지 모르는 외할머니를 비롯한 노인들은 해가 진 후 가족이 되고 친구가 돼 주는 채널을 더 이상 잃지 않기 위해 자식들이 쥐어준 고쟁이 속 용돈을 더 꺼낼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이제 공은 정부로 넘어간 상태다. 정부가 인위적인 시장 흔들기를 해서는 안 되겠지만 방송·통신 약자들의 입장에 서서 미래 시장 상황을 면밀히 예측해보는 지혜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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