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도 개혁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지역주의 대책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대부분의 제도 개혁안의 배경이 그랬고, 이번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의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제안 취지도 지역주의 극복 대책이라고 내세운다. 소선거구제와 거대 여야당 독과점 체제의 한계가 지역주의 구도를 배경으로 극단화돼 나타난다는 점에서 지역주의 대책과 무관하지는 않다. 그러나 소선거구제나 양당 독과점의 폐해에 대한 대안이지, 굳이 지역주의의 해법으로 볼 필요는 없다. 

지역주의 구도에 대한 문제는 여러 차원에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문제이다. 지역불평등이나 차별, 특정 지역패권, 지역감정, 지역간 갈등과 통합 등 문제의식이 다양하다. 문제의식이 다양한 만큼, 다양한 처방이 제안될 수도 있다. 그러나 권역별 비례대표제 등 최근 대안으로 제안되는 선거제도는 위의 이런 문제들에 대한 직접적인 대안은 아니다. 다만 선거결과가 실제 이상으로 극단화되는 지역균열의 악순환 구조를 제어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다. 소선거구제와 양당 독과점이 그런 악순환의 제도적 고리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소선거구제가 양당 제도를 견인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사르토리 등 정당학자들의 주장과 더불어 거의 일반이론처럼 보편화돼 있다. 우리의 경우 기성 거대 정당에 특권을 부여하면서 단순한 양당제가 아니라, 기성 양당에 독과점적인 기득권을 만들고 있다. 따라서 소수 정당이나 새로운 세력의 정치적 성장이 어렵다. 두 정당 중 다른 한 정당에 배타적인 지역에서는 결국 1당체제가 되고 만다. 그 1당에 불만이 있을지라도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기가 힘들다. 지역주의 문제가 아니라, 1당 독점체제가 문제인 것이다. 이 1당 독점체제를 제도가 오히려 보호하고 있는데, 이를 개선하면 된다.

정당 민주주의는 정당들이 국민의 지지를 얻으려고 경쟁하면서 이루어진다. 문제는 정당 사이의 경쟁이 생산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기득권만 누리게 되는 경우이다. 현재 우리의 정당 정치를 보면 두 정당이 아무리 잘못하더라도 국민의 대표 권력은 다시 두 정당으로 귀착된다. 둘 간의 미세한 경쟁이 있을 뿐이다. 국민들의 일부는 이 정당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 볼모로 잡혀 있게 되는 셈이다.  

정당 민주주의 원리에 따른다면 두 정당이 유권자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유권자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새로운 정당이 등장하면 된다. 그래야 기존의 정당도 개혁되고, 새로운 혁신 정당이 등장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회 구조에서도 그렇듯이, 일단 구축된 정당들의 기득권 구조가 형성된다. 새로운 세력의 등장이 쉽지 않다. 이를 두고 1970년대 말 유럽의 정당학자들은 ‘카르텔정당체제’ ‘담합정당체제’로 부르기도 했다. 국민, 유권자에 호소하는 경쟁이 아니라, 그들만의 거래, 그들만의 경쟁 정당이라는 것이다. 서로간에 경쟁하지만, 그들 모두의 기득권을 넘어서는 개혁은 하지 않는기득권 담합 구조에서의 경쟁이다. 

이런 비민주적 정당체제를 극복하려는 ‘새로운 시민사회 운동’도 있었고, ‘녹색당’ 같은 새로운 정당운동이 등장하기도 했다. 일정한 변화를 가져오기는 했지만, 오랜 정당정치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안정된 정당체제에서 그 파급력은 상대적으로 미약했다. 

우리의 정당들은 여전히 선거를 앞두고 이합집산하는 불안정한 구조이다. 소선거구제는 양당제를 촉진하지만, 또 사회적 이해관계와 권력투쟁이 양당체제로 제대로 통합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현 야권의 정당이 그렇다. 우리의 정당체제는 불안정한 양당제와 불안정한 다당제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고 할 수 있다.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양당제적 기득권 구조가 다양한 사회적 요구에 호응하지 못하고 있다. 제도 개혁 요구와 논란이 당연히 있어 왔다. 그런데 양당에 특혜를 부여하고 있는 독과점 문제라기보다 마치 지역주의 문제에 대한 해법처럼 제기됐다. 그러다가 유야무야 지금까지 오고 있다. 그러면서 오히려 양당 독과점의 특혜 문제는 피해가고 있다. 

지역 구도의 해법도 마치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상대 지역에 서로 적당히 의석을 차지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더 낳은 정당이 등장해 경쟁할 수 있도록 1당 독점체제를 타파하는 것이 과제이지, 현재의 독과점 정당들이 상대 지역에 적당히 배치되는 것이 지역주의 해법은 아니다.

물론 비례대표제 등이 강화된다면 소선거구제 한계가 보완되면서 양당 독과점 문제가 완화될 수 있다. 그러나 비례대표제 자체에 대한 논란, 의원 정수 확대의 어려움 등을 고려할 때 제도개편을 동반한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도입은 쉽지 않을 것 같다. 대신에 정수 증원이나 제도 개편 같은 무리한 변화 없이, 양당 독과점 폐해를 줄일 수 있는 개혁 과제가 있다. 기호순번제의 폐지이다.

큰 정당 우선 순으로 고정 기호를 주는 기호순번제(공직선거법 제150조), 거대 정당에 특권을 부여하면서 독과점의 폐해를 극단화시키는 불평등한 제도이다. 미국 등 다른 나라 등에서는 위헌 판결이 나, 추첨제, 순환제 등의 방식을 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추첨제를 택했다. 1967년 대통령 선거에서 제1당인 공화당의 박정희 후보가 기호 6번이었다.

기호 자체를 매기는 것도 불필요하다. 알다시피 사람은 보지 않고 기호만 보고 투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방선거 등에서는 줄줄이 같은 번호를 찍는 이른바 ‘줄투표’ 현상까지 있다. 지난해 6.4 지방선거에서 교육감 후보에게 적용했던 방식으로 개선하면 된다. 추첨으로 하되, 추첨에 따른 로또식 프리미엄을 방지하기 위해 투표구마다 순서를 돌아가면서 배정하는 교호제를 채택했다.   

현재의 기호순번제가 당연히 시정되어야 하나, 국회에서 모른 척 하거나, 정당정치 어쩌고 하면서 얼버무려 왔다. 현행 기호순번제 체제에서는 제1,2당 공천만 받으면 사실상 거의 재선되는데, 기호순번제가 없어지면 그것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야 거대 정당이 놓지 않으려는 불공정하고 부조리한 대표적인 기득권이다. 

현행 선거제도가 개편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기호순번제를 개선하는 것만으로도 양당 독과점의 폐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며, 지역별 1당 독점에 따른 지역균열의 악순환 구조를 끊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당 공천을 위한 줄서기 같은 제1,2당의 과도한 프리미엄이 만들고 있는 정당민주주의 문제를 개선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현재 선거제도 개혁의 초점은 양당 독과점의 폐해를 줄이는 것이며, 이를 위한 제1의 개혁 과제는 기호순번제의 폐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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