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말을 하지 않는 대통령

지난 해 4월 세월호가 수많은 어린 생명들을 태운 채 바다에 가라앉는 그 긴박한 상황에서 대통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사건 발생 8시간 이후로 학생들이 배속에 갇혀서 속절없이 죽어가는 상황에 처한 오후 5시가 지나서야 중앙재난대책본부에 나타나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있다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어려우냐’고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한편 청와대에서는 안보실장 등이 자신들은 그 상황의 콘트롤 타워가 아니라는 언급이 나오는 등 청와대가 사태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 5월 메르스가 발생하고 지속적으로 확산되어 온 국민이 불안에 떨고 있는 상황에서도 열흘 가까이 대통령은 전혀 언급이 없었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어 가던 시점에 열흘이나 지나서야 마치 제 3자인 양 ‘초기대응에 미숙한 점이 있었다’며 사태를 파악하라는 뒷북을 치는 언급을 하면서 엉뚱하게 유어비어를 유포하는 사람들을 강력 단속하라는 지시를 내려서 도대체 사태의 심각성을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인지 우려를 자아내었다. 

지난 20일 오후 국정원 직원 임모씨의 빈소 모습 <사진=연합뉴스>
▲ 지난 20일 오후 국정원 직원 임모씨의 빈소 모습 <사진=연합뉴스>


국정원 해킹 의혹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지만 이번에도 대통령은 2주가 지나도록 언급을 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국정원 직원 한사람이 자료 삭제를 고백하고 자살을 했고 국정원 직원일동 명의의 집단성명이 발표되는 등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상황이 잇달아 연출되고 있지만 청와대는 여전히 이 사건과 거리를 두고 있고 대통령은 아무 언급도 없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의 국가정보기관이고 그 임무의 특성상 의회와 언론으로부터도 감시와 견제를 비교적 받지 않는 특수조직이다. 그런 만큼 국정원에서 행하는 업무는 대외적으로는 기밀이 유지되어야 하고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통제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조직이 해킹 프로그램을 외국에서 도입했고 그 프로그램으로 민간인을 도청을 해왔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면 누구보다도 먼저 대통령이 나서서 사태의 진상을 파악하고 문제의 심각성에 따라 적절히 대처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 여야가 국정원 해킹 문제를 놓고 치열하게 공방을 벌이며 대치하고 있고 국민 다수가 내국인을 상대로 도청을 했을 것이란 의혹을 가지고 있는 사안임에도 정작 대통령이 입을 닫고 있는 것은 심각한 직무유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 않아야 할 말을 쏟아놓는 국정원 

국가정보기관은 그 조직원의 숫자나 조직체계 자체가 국가의 기밀에 속하는 사항이라 할 것이다. 그런 조직이 직원 일동 명의의 집단성명을 발표한 것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난센스라 할 것이다. 더구나 발표된 성명의 내용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조사에 임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똑 같은 프로그램을 구입한 다른 나라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왜 우리나라에서만 문제를 삼느냐’는 식의 얼토당토않은 항변과 ‘이런 논란이 지속될 경우 국가안보의 가치가 욕되게 할 것’이라는 등의 협박성 발언으로 점철되어 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이 성명이 국정원장이 먼저 결재를 한 상태에서 직원들에게 참여를 종용하여 발표된 것이라고 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공무원법과 국정원법을 위반한 불법행위로 법의 처벌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 정보기관의 활동은 잘한 것이라 하더라도 외부로 노출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원칙이며 더구나 불법적인 활동이 언론에 노출이 되는 것은 스스로 무능을 드러내는 것에 다름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다. 

21세기는 무한 정보전쟁의 시대이고 그 대치 전선은 단순히 남북관계에만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테러방지, 산업 기밀 보호,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에 따른 정보 서비스 강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이뤄져야 함은 세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이 권력의 허수인 노릇을 자처하여 정치공작과 선거개입 그리고 민간인 사찰 등의 舊(구)시대적 행동 패턴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는 스스로 국가경쟁력을 좀먹는 퇴행적인 조직에 머물고 말 것이란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정원은 이런 문제로 정치적 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스스로 자괴감을 느껴야 할 것이다. 정보화 시대에 전문성을 가지고 세계 속에서 경쟁하는 국가정보기관의 종사자라면 직원 일동 명의로 상식 밖의 집단 성명을 발표하는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벌이는 것은 스스로가 용납할 수가 없어야 할 것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권력의 비위를 맞추어 조직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일부 잘못된 세력들이 조작 내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근절하는 한편 국정원이 시대의 변화에 걸맞게 변화하여 치열한 정보전쟁에서 첨병의 역할 다하는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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