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흠 칼럼] 국민, 나의 국민, 내가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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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은 13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앞으로 정무수석께서 당·청 관계나 대(對)국회 관계를 이끌어가는 데 있어서 지켜나가야 할 기본은 오직 국민을 보고, 국민을 위한 것에 모든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같은 날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혁신위원회가 제시한 혁신안에 대해 "우리의 시각이 아닌 국민의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면서 혁신안 수용을 촉구했다. 

    국민의 대표인 대통령이 국민을 보고 가는 건 당연하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국민을 대변하고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하니 국민의 시각으로 보는 것에 이의를 달 이유가 없다. 그러나 당청관계에 당이 빠지고 대(對)국회관계에 국회가 없이 국민을 언급하는 대통령의 발언이 당연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문재인 대표, 국민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혁신안이라면 환영해야 할 텐데, 당내 갈등은 더욱 격화되는 것 같다.    

    각자가 보는 국민이 다르거나, 국민은 겉치레뿐인 권력투쟁의 도구인지 모른다. 문제의 핵심을 은폐하는 ‘국민팔기’라고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다. 

    박근혜 대통령의 오늘(13일) ‘국민’ 발언은 ‘유승민 전 원내대표 사퇴 파동’ 이후 첫 공식회의에서 당청관계에 관한 언급이다.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을 보자면 당청관계나 국회관계에서 갈등은 당과 국회가 국민을 보고 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다시 한거다. 맞는 생각, 맞는 주장일까? 

    물론 대통령은 때에 따라 자신의 시각과 판단으로 국민을 위한 길을 생각할 수도 있다. 대통령은 국민을 그대로 대변해야 하지만, 임기 동안 일정하게 위임된 역할을 책임지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거를 통해 심판받는다. 그러나 대의민주주의는 선거 때만 책임을 지는 위임 독재가 아니다. 집권 과정에서는 국민의 요구에 호응해야 한다. 그래서 소통도 필요한 것이다. 선거를 통한 선택과 심판, 국정운영 과정에서의 소통과 호응이 대의민주주의의 두 축이다. 

    또 국민의 대표는 대통령만이 있는 게 아니라, 국회도 있다. 우리의 현행 헌법체계를 보자면, 사실 대통령보다 국회가 더 앞에 있다. 총강(제1장) 다음에 국민(의 권리와 의무)이 있고(제2장), 국회가 이어진다(제3장). 그리고 헌법의 제4장1절에 대통령이 따른다. 대통령이 국가의 수반인 대통령중심제이지만, 국회는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으로서 대통령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것이 헌법상의 의무이고 권한이다.

    국회가 대통령의 입장과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국민의 이름으로’ 비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회가 국민적 신뢰를 별로 못 받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국민의 뜻은 국회를 통해 대변된다. 청와대에 있는 대통령에 비해 국회가 더 국민 여론과 요구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도 알려진 바이다. 

    대통령과 국회가 엇갈릴 경우, 국민의 여론이 또 하나의 준거가 될 수 있다. 이를 토대로 서로 설득하고 타협해야 한다. 알다시피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정국을 보면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에 반대하는 여론이 더 우세했다. 또 하나의 국민대표인 국회도, 국민여론도, 둘 다 무시한 자신만의 입장을 내세웠던 것이다. 이를 두고 국민을 보고 간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새로운 당청관계나 대국회관계는 국민 이름 팔기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 국회와 더불어, 당과 더불어, 협력하면서 함께 가는 자세의 전환에서 비롯된다. 

    더구나 박근혜 대통령은 100% 대한민국을 말했다. 모든 사람의 의견을 100% 수용하는 정답은 어렵겠지만, 반대하는 소수의 의견도 경청하고 설득하며 가급적 수용하려는 자세가 100% 대한민국의 리더십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최근 리더십은 소수까지도 끌어안는 100% 대한민국 리더십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다수의 입장도 아닌 소수의 열성 지지세력의 의존하고 있다. 박 대통령 스스로 국민의 관점에서 돌아볼 일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재인 대표가 말한 ‘국민의 시각’ 또한 당내 계파 권력투쟁을 넘어서는 통합적인 공통 명분이 되지는 못하고 있다. 보기에 따라 당파적 명분을 국민으로 포장하는 위선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계파 갈등은 서로 다른 중간 조직과 지지 기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문 대표가 말한 ‘국민의 시각’은 그냥 각 계파의 ‘우리의 시각’을 ‘국민의 이름으로’ 포장하는 것이 되고 만다.

    이런 문제가 4.29재선 이후 던져진 문재인 대표체제의 과제이자 딜레마였다. ‘배타적 정의독점의 사고’는 국민적 시각과 공존할 수 없다. 문 대표가 국민적 시각을 말하기 위해서는 그 동안 새정치민주연합을 주도해 온 반(反)국민적 시각의 문화와 그 주도 세력을 교체할 수 있어야 한다. 막연하게 빌려 온 ‘국민 시각’이 아니라 지지자와 일반 국민에 호응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 논쟁은 제1야당의 기득권이라는 권리금을 등에 업은 정파적 권력투쟁을 벗어나기 어렵다.  

    새정치민주연합이 혁신 없이는 안된다는 이유로, 이 상태로는 집권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흔히 말한다. 그런 점도 있지만, 집권 하더라도 배타적 패권세력이 주도하는 집권은 야권 모두의 집권이 아니라 그들만의 집권에 불과할 것이라는 인식이 함께 하고 있다. 사실상의 공동운명체가 아닌 것이다. 과거 집권 시대의 경험과 이후의 정치 과정이 그랬다는 것이다. 아주 반(反)국민적인 정치이다. 정권교체라는 야권의 추상적 정치명분에 함께 하고 있는 듯하지만, 정권교체를 위한 공동 주체 의식과 연대가 약하다. 혁신을 통해 이 딜레마를 극복할 전망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

    ‘노컷뉴스’와 ‘조원씨앤아이’가 7월 11-12일 여론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야권재편의 필요성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보는 응답자(48.0%)가 반대하는 쪽(24.8%)보다 두 배가 많았다. 문재인 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평가에서는 부정 평가(66.0%)가 긍정 평가(22.0%)의 3배나 돼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 위기와 비할 바가 아닌 참혹한 수준이었다. 

    국민이라는 이름,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가장 쉽게 빌릴 수 있는 명분이다. 사실 독재체제에서도 권력자들의 명분으로 등장하는 것이 국민이고 국가이다. 용어만 다를 뿐 과거 왕조체제에서도 백성이라는 이름이었다. 오늘의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체인 체제이다. 유승민 의원이 제기하기도 했던 우리 헌법 1조에서도 ‘민주공화국’의 원리를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 국회, 시민이 존재하는 한국의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대통령의 생각을 국민의 이름으로 팔아서는 안된다. 이와 경쟁하는 대안 세력 또한 배타적인 정의독점의 정파적 정치문화 혁신 없이, 국민의 시각에 기초한 혁신을 말하기 어렵다.

    김만흠(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김만흠 기자 manma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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