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8일 국회 정론관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마친 뒤 차량에 오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8일 국회 정론관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마친 뒤 차량에 오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의회정치는 파탄나고 정당정치는 뒷걸음질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다시 국회로 되돌아온 국회법 개정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새누리당이 보인 모습은 의회정치의 파탄이라 해도 지나치지가 않을 것이다. 국회의원 211명이 찬성하여 가결시킨 법안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는 이유만으로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은 정두언 의원을 제외하고 표결에도 참여하지 않고 법안이 폐기되도록 했다. 이는 국회의원 개개인이 헌법상 독립된 입법기관이란 헌법정신을 저버린 것이며 국회의원들이 국회의 고유한 권한인 입법권을 훼손한 것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6월 25일 국무회의 석상에서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를 향해 ‘배신의 정치’라며 지명하여 공격한 이후 새누리당 내에서 벌어진 ‘유승민 찍어내기’ 과정들 또한 정당정치의 퇴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이 집권당의 총재를 겸하면서 당직과 국회직을 임명하던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문제가 되었던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대통령이 당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대권과 당권의 분리가 제도화되었으며 국회는 의원총회에서 원내대표를 선출하여 그 임기를 보장함으로서 의원들에 의해 선출된 여야 원내대표의 협의를 바탕으로 국회를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고 유승민 원내대표에 대해 원색적으로 공격했지만 새누리당 의원들은 이튿날 의원총회에서 유 원내대표를 재신임한 것도 바로 이런 제도가 정착되어 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의원총회에서 원내대표 거취에 대한 결론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분노가 식지를 않자 친박계를 중심으로 다시 총력을 기울여서 원내대표 찍어내기를 감행했다는 것이다. 결국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를 언급한지 13일 만에 유승민 원내대표는 사퇴했고 새누리당은 대통령에게 완전히 굴복하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은 일거에 무력화되었고, 의원들이 투표로 선출한 원내대표가 다른 힘에 의해 사퇴당하는 정당정치의 퇴행을 보였고, 새누리당은 오로지 청와대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머리 없는 공룡’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승자는 없이 패자들이 국민에게 고통을 전가시키는 형국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안도 무산시켰고, 지산이 '배신의 정치‘라고 규정했던 유승민 원내대표를 사퇴시키는데도 성공했다. 그러나 보수층 내에서조차 ’속 좁은 정치‘라는 질타가 쏟아지는 가운데 과연 진정한 승자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정 전체를 책임지는 대통령으로서가 아니라 내년 총선에서 공천권을 행사해야 하는 정파의 수장이라면 아직도 자신이 건재함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대통령이 국무회의 석상에서 산적한 다른 국정현안들은 뒷전인 채, 국회와 다투고 여당내의 특정세력과 인사들과 첨예하게갈등하는 모습만 보인 것은 그리 바람직 하지 않았다. 이번 과정을 통해 대통령이 국민들에게는 신뢰를 주고 안정감을 주었기보다는 여전히 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마이웨이를 고집하는 걱정스러운 모습만 보였다 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 메르스 피해와 가뭄 극복 등을 위해 국회에서 추가경정 예산과 각종 법안을 처리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야당은 새누리당이 표결에 불참하면서 국회법 개정안을 무산시킨 것에 대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새누리당 또한 원내대표가 공석인 상태에서 누가 당장 야당과 협상을 통해 국회를 이끌어 갈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청와대의 정무라인이 아무 것도 가동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국회가 정상 가동이 되지 않는 상태가 길어지면 새누리당은 또 다시 대통령의 심기만 살펴야 하는 살얼음판을 걷는 형국에 놓일 수도 있을 것이다. 

대통령 심기를 읽고 돌격대 역할을 자임해야 하는 친박계도 승자일 수는 없고, 좌고우면하면서 양쪽 모두로부터 비난을 자초한 김무성 대표도 승자일 수는 없다. 결국 자리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유승민 전 원내대표도 당장은 승자일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상황에서 야당이 그리 많은 것을 얻은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국회법 개정안 무산과 유승민 찍어내기 파동을 거치면서 의회정치는 파탄이 나고 정당정치는 퇴행을 보였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 피해는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것이기에 작금의 정국은 승자는 없고 패자만 남은 형국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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