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호 편집국장 칼럼] 럭비공 같은 정치판, 침묵하는 국민들을 무서워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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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5일 국무회의에서 작심하고 여야 정치권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국회선진화법(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정치권에 핵폭탄이 떨어진 모습이다. 청와대는 여야를 묶어 질타하고, 새누리당은 진퇴양난에 설상가상이고, 새정치민주연합은 국회일정 전면 거부로 맞서고 있다.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청와대, 여당, 야당 모두 출구가 없다. 청와대는 새누리당 유승민 원대표의 사퇴를 압박하고 있고, 새누리당은 원내 대표를 사퇴시키지 않기로 했다. 새누리당은 청와대와 야당의 공세에다 친박-비박 당내 파벌까지 작동돼 방향타가 없는 것과 다름없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청와대와 새누리당에 맹공을 펴지만 역시 한계는 있다.

    이번 파동은 조기에 수습되지 않을 경우 청와대와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이 모두 강경자세로 나와 정국이 완전 마비될 게 뻔하다. 정국이 마비되면 우선 국회에 계류 중인 60개의 법안처리가 난망해진다. 박 대통령이 그토록 주문하는 경제관련 법안들도 처리되지 않아 국가경제에도 엄청난 타격을 주게 된다.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혐오도 더 커질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박대통령의 강경발언 배경이다. 박 대통령은 “정치를 정쟁으로만 접근하고 국민과의 신의를 저버리고 국민의 삶을 볼모로 이익을 챙기려는 구태정치는 이제 끝내야 한다.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해주셔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을 두고 일부에서는 박 대통령이 최악의 경우 탈당까지 생각하고 아예 정치판을 다시 짜려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청와대는 대통령 탈당 얘기가 나오자 이는 “소설 같은 얘기”라고 서둘러 일축했다.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는 배신정치를 국민이 심판해야한다는 뜻이지 어떤 일이 있어도 당을 떠나지는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청와대는 그러면서 “대통령 발언의 엄중함을 여당인 새누리당이 아직 무겁게 못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했는데 이는 대통령의 경고가 있었는데도 새누리당이 유승민 원내대표를 사퇴시키지 않는데 대한 강한 불만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대통령에게 사과 했다. 하지만 친박의 불만은 폭발 직전이다.

    거부권 파동으로 가장 어려움에 처한 것은 새누리당이다. 대통령의 눈치도 봐야 하고, 야당과의 대화도 터야 하는데 어느 것 하나 수월한 게 없다. 청와대와의 관계는 싸늘한 상태를 넘어 아예 냉동상태다. 25일 토론회에서는 유승민 원내대표를 비판한 의원보다 두둔한 의원이 더 많았다. 대통령의 의중과는 반대의 길을 택한 것이다.

    김무성 대표는 입장이 특히 어려울 것이다. 총선과 대선에서 빛을 보려면 박 대통령과 관계를 잘 맺어야 하는데 당청관계가 너무 좋지 않다. 또 대통령이 진노했다고 원내 대표를 바꿀 수도 없을 것이다. 대통령 편에 설 수도 없고, 여당의 대표로 행세하자니 새누리당이 친박과 비박으로 갈리어 혼란을 겪고 있다. 김 대표에게는 모두가 암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거부권 행사와 관련, 가장 자유스럽고 걸릴 게 없는 위치다. 최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청와대와 새누리당을 싸잡아 공격하면 되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메르스 관련 법안을 제외한 모든 법안처리에 협조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실제로 개최가 예정됐던 상임위가 모두 취소됐다.

    문재인 대표는 26일 “정작 국민들로부터 심판받아야 할 사람은 대통령 자신이다. 대통령은 국회와 국민을 향한 독기 어린 말을 반성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공세를 폈다. 문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의 메르스 무능과 거부권 행사에 대한 우리 당의 입장’이라는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정부무능에 대한 책임면피용이자, 국민적 질타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치졸한 정치이벤트에 불과하다”며 주장했다.

    현 정치판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혼란스러운 양상이다. 마치 럭비공 같다. 청와대와 여당이 야당을 공격하는 것은 늘 있는 일이지만 청와대가 여당 원내대표의 사퇴를 압박하고, 여당이 이를 거부하는 것은 특이한 일이다. 공격의 화살이 다른 데로 간 것이다. 여당 원내 대표가 대통령에게 90도로 숙여 사과하고, 야당과 합의해 통과시킨 법안을 휴지통에 버리는 것도 보기 드문 일이다.

    청와대와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이 각자의 입장에서만 목소리를 높이고 상대방을 공격한다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들이다. 당사자들 모두 그럴듯한 논리를 펴고 있어서 이 말을 들으면 이게 옳은 것 같고, 저 말을 들으면 저게 옳은 것 같은 게 현 정국이다. 누구 말이 옳고 누가 그른지 판단하기도 어렵다. 한마디로 헷갈린다. 정치권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싸울게 아니라 침묵하는 국민들을 먼저 무서워해야 한다.

    김병호 기자 bhkim860@poli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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