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원내대표와 비장하게 싸우는 대통령

정말이지 이런 대통령은 처음 겪어본다. 이전까지의 모든 대통령들은 임기 도중에 민심이 등을 돌리면 현실을 받아들이며 자숙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어느 쪽 정당에서 나온 대통령이냐에 관계없이 다들 그렇게 해왔다. 때로는 억울하게 생각되고 하고 싶은 말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민심을 거스르지 않는 태도라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달랐다. 단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도 국회의원 시절에 발의했던 내용을 갖고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일방적 주장을 하며 헌법재판소 역할을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국회와 여야 정치권을 향해 호통치고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의 광경이었다.

기본적으로 지금 자신이 국민 보는데서 누구를 야단치고 있을 때인가. 메르스 사태를 이 지경으로까지 만들었던데 대해 정부의 최고 책임자로서 그 책임을 통감하고 국민 앞에 고개 숙이며 사과를 해도 시원치 않을 판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는 민간 병원장을 불러서 90도 각도의 사과인사를 받아내는 장면을 연출하더니, 이번에는 국회와 여야 정치권을 맹폭격하다시피 했다. 국회법 개정안이 삼권분립을 훼손한다고 주장하면서, 정작 자신은 삼권분립을 무시하고 국회 위에 군림하려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야당하고야 원래부터 그랬다치고, 이번에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여당에 대한 성토였다. "정부를 도와줄 수 있는 여당에서조차 민생법안을 관철시키지 못하는 상황" 이라며 새누리당을 비판하더니, 급기야는 유승민 원내대표를 직접 겨냥해 비판하고 나섰다. "여당의 원내 사령탑도 정부 여당의 경제살리기에 어떤 국회의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 가는 부분"이라며 "정치는 국민들의 민의를 대신하는 것이고 국민들의 대변자이지 자기의 정치 철학과 정치적 논리에 이용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여당 원내대표에게 이런 망신주기식 아니면 자신의생각을 전할 방법이 없는 것인가. 국가적 난국 속에서 이렇듯 여당 원내대표하고 비장하게 싸우고 있는 대통령의 모습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대통령이 나서서 정쟁을 유발한다는 시선을 무릅쓰고 거부권을 행사한 속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유승민에 대한 불신임 선언이고, 그에 따른 ‘유승민 찍어내기’가 이번 거부권 행사의 핵심이다. 대통령인 자신의 말을 듣지않는 정치인은 그가 여당 지도부라 해도 용납할 수 없으며, 정치적 응징을 하고야 만다는 결기를 보여준 것이다. 참으로 서슬퍼런 무서운 모습이다. 유신독재 시절에나 통했던 리더십이 오늘에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지지라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이같은 위압적인 태도의 바탕에는, 자신을 위임받은 한시적 권력이 아니라 제왕이라도 된 듯이 여기는 착각이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게다가 박 대통령은 정직하지 못했다. 그는 말했다. “국회법 개정안으로 행정업무마저 마비시키는 것은 국가의 위기를 자초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사법권을 침해하고 정부의 행정을 국회가 일일이 간섭하겠다는 것이다.” 이전의 법과 비교해 표현의 강도만 약간 달라진 내용을 갖고 ‘행정업무 마비’ ‘국가의 위기’니 하는 표현을 사용하는가 하면, 정부의 행정을 일일이 간섭하려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터무니없이 부풀린 정치적 선동일 뿐이다.

자신을 곧 국가로 생각했던 루이 14세조차도 죽음 직전에 남긴 말은 의미심장했다. “짐은 떠나로라. 그러나 국가는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영원불멸의 존재임을 과시했던 절대군주도 자신과 국가의 분리를 선언하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하물며 민주주의를 한다는 시대에 대통령이 어떻게 국가일 수 있으며, 모든 정당성을 강변할 수 있겠는가. 박 대통령 자신의 판단이 곧 국가의 판단이고, 자신만이 정당하다고 믿는다면 자신이 민주주의 부적응자임을 고백하는 것일 뿐이다.

이런 것을 가리켜 평지풍파라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메르스 사태로 국민들이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터에 이 무슨 난리인가. 이쯤되면 국민을 향한 ‘박근혜의 난’이다. 이로 인한 갈등과 혼란의 모든 책임은 그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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