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노무현 정신’과 정치를 분리시켜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6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우리 정치의 뜨거운 화두가 되고 있다. 특히 봉하마을 추도행사에서 있었던 노건호씨의 김무성 대표 비판 발언, 비노 정치인들을 향한 일부 참석자들의 욕설과 물세례 같은 일들이 생겨나면서 정작 고인에 대한 추모보다는 이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부각되는 모습이다. 노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이든 반대했던 사람들이든 이제는 고인을 이 아수라장인 현실정치의 세계로부터 보내드릴 때가 지났건만, 오히려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다시 정국의 한복판에 등장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상황의 자초지종을 떠나 답답하고 우려되는 일이다. 고인에게는 이제  보내드려야 할 길이 있는 것이고, 정략적으로 그를 욕보이려는 행태나 고인의 이름을 빌어 정치행위를 하는 행태나 모두 잘못된 것은 매한가지이다.

이날 있었던 광경은 예상했던대로 언론들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으며 크게 부각되었다. 그날의 물세례를 속시원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여당의 친노 프레임을 깨기 위해서는 그에 맞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그동안의 숱한 경험들은 그것이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진작부터알려주고 있다. 일부라고는 하지만 지지자들의 격한 행동이 부각될수록 그 프레임은 더 단단한 낙인으로 굳어지게 되어있다. 아마도 이번 추도행사의 광경은 한 발짝 뒤에서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대단히 선명하게 각인될 것이다.

당 대표가 물세례를 받으며 쫒겨나다시피한 새누리당이지만, 그 누구도 언짢은 표정을 드러내지 않고 무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만큼 여유가 있다는 얘기이다. 김무성은 광주든, 봉하마을이든 화해를 청하러 갔다가 물세례를 받고 쫒겨난 측은한 피해자이고, 야당 쪽 사람들은 화해를 청하러 온 사람을 번번히 쫒아내는 옹졸한 자들로 비쳐진다. 국민통합을 위해서라면 물세례를 당할 각오가 돼 있다며, 앞으로도 비판받는 곳을 마다하지 않고 계속 찾아가겠다고 김무성 쪽에서는 말한다. 유세장에서 NLL포기 발언을 하던 김무성은 면전에서 유족의 비난과 물세례를 받고도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는 대범한 정치인으로 둔갑해 버렸다. 그들로서는 회심의 미소를 지을법한 상황이다.

문제는 야권이다. 이번 일은 야권이 친노 프레임을 넘어서지 못하고서는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에서도 예정된 패배의 길로 갈 수밖에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고 있다. 그 프레임은 여당세력의 음모이니 물러서지 말고 그에 맞서 싸우면 된다는 식의 단순 논법으로는 넘어설 수 없음이 그동안 거듭 확인되어 왔다. 팔목에 채워진 수갑은 풀려고 저항할수록 팔목을 더 조여온다. 그때는 수갑의 열쇠를 찾아 풀 생각을 해야 한다. 야권 스스로가 자신의 힘으로 그 프레임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다.
 
돌아보면 친노 프레임은 근 10년간 우리 정치를 가둬왔다. 한국정치는 그 오랜 기간동안 그 프레임 속에 갇혀있었고, 단 한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똑같은 논쟁과 논란만 반복될 뿐, 심각한 정치 지체 현상이 계속되어 온 것이다. 2016년 총선에서 여당은 어김없이 그 프레인을 들고 나설 것이고, 2017년 대선에서도 그러할 것이다. 꺼내들기만 하면 승리를 보장해주는 무기가 있는데, 여당세력이 그것을 내려놓을 이유는 없어 보인다.

이제는 결자해지의 결단이 필요하다. 더 이상 고인을 현실정치에 끌어들이는 일은 삼가야 한다. 정략적으로 고인을 번번히 욕보이는 여당에게만 하는 말이 아니다. ‘노무현 정신’을 앞세워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모습 또한 ‘노무현’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노무현 정신에 따라 어떤 정치인을 지지해야 하고, 노무현 정신을 배신했다고 어떤 정치인에게는 물세례를 퍼붓는 것은 노무현 정신을 정파적 도구로 추락시키는 모습일 뿐이다.

물론 야당 정치인들의 결단이 함께 있어야 한다. 앞으로 있게 될 당혁신 과정에서 ‘친노’라 불리웠던 정치인들은 기득권 내려놓기와 자기희생의 결단을 내려 혁신의 물꼬를 터야 한다. 그리하여 ‘더 이상 계파로서의 친노는 없다’는 선언을 문재인 대표가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결단이 선행된다면 친노 공격을 무기로 또한 자기 기득권 유지를 도모하려 했던 ‘비노’ 혹은 ‘호남’의 정치인들도 역시 내려놓기 행렬에 따라야 할 것이다.

이제는 노무현 정신과 정치를 분리시켜야 한다. 그래야 한국정치, 특히 야권의 정치가 이제라도 앞을 향해 갈 수 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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