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을 넘기기 이전에 자신이 결단해야

혁신위원장을 맡아달라는 문재인 대표의 제의를 안철수 의원이 받아들이지 않음에 따라 혁신위 구성을 통한 당 내분 수습 구상이 진통을 겪는 모습이다. 사실 안철수 혁신위원장 카드는 친노와 비노의 대치상황을 봉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 대표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안 의원 입장에서는 한편으로는 재기의 기회이기도 하지만, 새정치연합의 혁신이 가능할지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감당하기가 어려운 도박에 뛰어드는 것과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세간의 관심이 혁신위원장을 누가 맡게 되느냐로 향하게 되면서 새정치연합 위기의 본질이 가리워진 느낌이다.

주지하다시피 새정치연합 위기의 핵심에는 친노-비노 프레임이 자리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물러난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야당은 이 친노-비노 프레임에 발목을 잡혀왔다. 근래 들어 야당이 선거만 하면 여당에게 번번히 패하는 것도 이 프레임이 위력을 발휘한 결과였고, 야당 내부의 계파갈등이 만성화된 것도 이 프레임 때문이었다. 야당이 어떻게든 친노 프레임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계파갈등도 해결하기 어렵고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 승리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여기서 또 다시 그런 프레임을 인정하는 것 자체 여당이나 보수언론의 프레임에 말려드는 것이다, 친노라는 것이 있기나 하냐, 친노가 무슨 죄냐는 식의 얘기는 우리의 논의를 다시 원점으로 갖다놓을 뿐이다. 지금은 더 이상의 논쟁을 벌일 때가 아니가 현실을 직시하고 해법을 찾아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설사 친노- 비노 프레임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여당과 보수언론의 프레임에 말려드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 프레임이 선거 때마다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 야당은 그것을 넘어설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어제 새정치연합 초재선 의원 12명이 안철수 의원의 혁신위원장 수락을 주문하면서 친노-비노 프레임을 넘어서는 것이 당의 최대 과제라고 밝힌 것도 이같은 맥락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당내 친노든 비노든 혹은 제3 지대에 있는 세력이든, 이 프레임을 넘어서야 한다는 데는 일치하고 있다. 다만 그 해법이 동상이몽이지만 말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야당 혁신의 과제가 혁신위원장을 인선하고 위원회를 만든다고 해서 전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물론 혁신위를 통해 계파 불문하고 당내 기득권을 내려놓게 하며 고강도의 혁신과 물갈이를 하는 것을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의 경험은 아무리 비대위나 혁신위를 만들어봐도 좀처럼 이루기 어려운 것이 야당의 혁신임을 말해주고 있다.

혁신위를 만들더라도 우선은 물꼬를 트고 흐름을 만드는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일은 문재인 대표의 손에 열쇠가 쥐어져있다. 문 대표는 자신은 빠지고 혁신위에 공을 넘기려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결단으로 친노-비노 프레임을 해체시키고 당 혁신을 가져올 수 있는 흐름을 선도해야 한다. 그것이 당을 이끄는 정치지도자가 감당하고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문 대표는 아무런 말이 없다. 친노-비노 프레임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문 대표의 자기희생적 결단이 필요하다. 가장 결속력이 강한 문 대표 쪽에서 “우리가 먼저 이렇게 내려놓겠다. 그리고 이렇게 고치겠다. 그러면 앞으로는 친노라는 소리도 안나오지 않겠나. 그러니 다들 함께 내려놓자.” 이런 식으로 선제적 내려놓기를 할 때 야당 전체의 물갈이와 혁신의 물꼬가 비로소 트여질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새정치연합 내에서 물갈이와 퇴진의 대상이 어디 친노에 국한될 일인가. 호남 기득권- 원로 기득권도 다 같이 내려놓아야 야당이 산다. 친노 프레임을 무기 겸 방패삼아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러한 상황에서는 문 대표가 먼저 자기 희생의 결단을 보일 때, 그 흐름이 대세를 형성하면서 자기 희생의 도미노 현상을 통한 전체의 혁신이 비로소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흐름을 선제적으로 만들어가는 리더의 역할일 것이다.

그러나 문 대표는 여전히 좌고우면하고 있다. 자신은 아무런 정치적 결단을 내리지 않고 모든 것을 혁신위에 넘긴다고 해서 야당의 살 길이 찾아질 수 있을까. 재보선 완패 직후 문 대표는 모든 것을 바꾸겠다고 했지만, 정작 문 대표 자신은 아직 바뀌지 않았다. 새정치연합의 대표는 문재인이지, 누가될지 모르는 혁신위원장이 아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모든 것이 바뀌는게 아니라,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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