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봉합이 분열보다 니은 이유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계파간 갈등과 혼돈이 계속되고 있다. 친노 주류와 비노 비주류 간의 갈등이 감정싸움 양상으로까지 치닫고 있지만 이를 수습할 리더십은 작동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대로 가면 내년 총선에서 야권이 참패를 면할 길이 없다는 비관적 전망이 벌써부터 대두되고 있다.

그런데 야권 지지층들 사이에서는 분열론이 적지않게 거론되기도 한다. 이러면서 서로 싸우고만 있으니 차라리 당을 따로 해서 각자 갈 길을 가고 나중에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자는 것이다. 이러한 목소리들은 서로 다른 다양한 갈래로 터져나오고 있다. 호남민심이 새정치연합에서 떠났음을 강조하는 호남신당론, 사사건건 문재인 대표를 흔드는 비노 세력과 당을 같이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출당이라도 시키자는 문재인 지지층의 주장, 계파 기득권을 고수하는 친노와 결별하고 다른 세력을 결집시켜 새로운 대안야당을 만들자는 야당대체론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서로 다른 분열론을 주장하고 있다. 배경이나 의도는 다르지만, 분열을 하는 것이 더 낫다는 점에서는 한 목소리이다.

과연 분열은 옳은 것인가. 이제는 야당의 분열 밖에 달리 답이 없는 것일까. 물론 때로는 분열이 새로운 질서를 낳는 기폭제가 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1985년 12대 총선에서 상도동계와 동교동계가 연대하여 선명야당의 기치를 들고 출범한 신민당이 당시 관제야당이었던 민한당을 누르고 제1야당이 되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1995년 동교동계가 민주당을 버리고 창당했던 새정치국민회의가 1997년 대선에서 집권여당으로 등극했던 것 또한 분열이 성공을 거둔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같이 분열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경우는 대중적 지지를 받는 구심이 존재했을 경우로 한정된다. 과거의 성공 사례는 YS나 DJ라는 강력한 대중적 구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환경이 다르다. 어느 세력에게도 그런 구심이 없다. 대중적 구심이 없는 상태에서 분열을 시도했을 때 당사자 뿐 아니라 야권 전체의 패배로 귀결되었던 것이 보다 일반적인 패턴이었음을 생각해야 한다. 큰 선거가 다가오면 야권이 언제나 연대와 통합을 모색해왔던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지극히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한다면 분열은 힘을 분산시키는 선택이고, 따라서 유일 여당 앞에서 패배의 확률을 압도적으로 높이는 길이다. 2012년 총선에서 야권연대가 위력을 발휘한 이후 정권세력이 야권연대를 무너뜨리는데 왜 그렇게 전력을 기울였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권 측의 집요한 야권분열 기획은 통합진보당을 ‘종북세력’으로 낙인찍으면서 야권연대를 무너뜨리는데 성공을 거두었다. 현재 야권의 분열과 지리멸렬은 종북 공세를 통한 야권연대 파괴작업과 시기적으로 맞물려있다. 그만큼 장기집권을 노리는 정권 측의 입장에서는 야권의 연대가 두려운 것이고 반대로 야권의 분열이 고무적인 것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야권의 분열은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에서 여권세력의 승리를 보장해주는 선택이 될 뿐이다. 호남의 지지 없이 정권교체를 한다는 것도 어렵지만 그렇다고 호남의 지지만으로 정권을 잡을 수 없음도 분명하다. 그 점에서 호남신당론의 한계는 뚜렷하다. 호남신당론은 그 지역 정치인들에게는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당선을 안겨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총선과 대선에서 야권 전체의 승리에는 독이 될 위험이 더 크다. 친노와 비노의 독자정당론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야당의 최대 계파라고는 하지만, 친노만으로 지지층의 확장이 불가능함은 그동안 수없이 확인된 바이다. 비노와 결별하고 문재인을 중심으로 자기들끼리 가자는 주장은 계파의 기득권은 지키는 길이 될지 모르겠지만, 정권교체의 책임을 의식하는 사람들이라면 입에 담을 얘기는 아니다. 비노 또한 친노와 결별하고 자기들끼리 대안적 야당을 만드는 것은 현재의 환경에서는 불가능하다. 친노에 비판적인 국민이 그렇다고 비노 정치인들을 신뢰하고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 역시 낡은 정치세력으로 인식되고 있고, 국민의 지지를 끌어모을 대안적 구심이 되기 어려운 처지이다. 국민의 눈 높이에서는 새정치연합 내부의 친노와 비노 모두 과거 세력으로 인식되고 있을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 당장 야권의 속시원한 대안적 질서를 모색하기에는 현실적 한계가 있다는 얘기이다. 진정 의미있는 새로운 판짜기가 가능하다면, 내년 총선 이후 대선을 앞두고 대선주자들을 중심으로 판이 요동치는 가운데 그와 맞물리면서 비로소 모색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까지는 더 이상의 분열을 막는 봉합이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봉합이 분열보다 나은 것은,  총선에서 야권의 궤멸적 패배를 일단 막고 총선 이후에 손쓸 여지를 남겨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제1야당의 분당은 야권을 깊은 수렁 속에 빠뜨릴 것이고, 야권이 그 수렁에서 빠져나오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지금은 분열을 말할 때가 아니다. 절제가 진정한 용기일 때가 있다. 지금이 그 때이다. 분열을 막을 리더십이 절실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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