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집권세력 ‘면책’의 장이 되어서야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원리는 ‘책임정치’에 있다. 그래서 ‘책임정치’가 실종된 민주주의는 상상할 수 없다. 
집권세력에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정치시스템은 미국 건국기 대통령 제임스 메디슨의 표현에 의하면 전제정(tyranny)이다. 이는 전제 왕정국가, 독재국가, 식민지 신생국가 등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은 국가에서나 벌어지는 일로 치부된다. 이러한 시스템에서 집권세력은 자신들의 잘못된 국정에 ‘책임’지지 않는다.
그런데 민주화가 일정 진전됐고 세계를 주도하는 선진국가 대열에 서 있다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과거 전제정의 표본인 ‘책임정치의 실종’이 버젓이 횡행하고 있어도 국민들이 이러한 ‘책임정치 실종’을 그다지 심각한 문제로 바라보지 않을 만큼 무감각해 지고 있는 현실이다. 마치 대한민국은 집권세력이 왜곡된 의미의 면책특권을 누리는 전제국가로 퇴행하고 있는 느낌이다.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채 304명의 생명을 앗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의 정치적 책임문제는 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실종돼 있다. 참사 이전과 이후에 곳곳에서 정권의 ‘무능’과 ‘책임회피’에 대한 분노가 치솟았지만 곧바로 치러진 6.4지방선거와 7.30재보궐선거를 통해 집권세력이 정치적 ‘면죄부’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제도에서 ‘선거’는 모든 정치적 갈등 현안을 해결하는 최후의 수단이고 ‘선거 결과’는 정치적 갈등에 따른 책임문제를 판가름하는 기준이다. 집권세력은 6.4선거 무승부로 자신의 정치적 책임을 희석시켰고 7.30재보선 승리로 사실상 정치적 ‘면죄부’를 받았다. 그 결과가 세월호 유가족이나 국민들이 책임을 물어야 함에도 그 방법을 찾지 못해 애태우고, 책임져야 할 ‘주체’는 선거승리란 면죄부를 들이대며 ‘책임회피’로 일관하는 작금의 상황이다. 그러면서 현 집권세력과 세월호 유가족 등 국민과의 ‘갈등’의 골만 깊어지고 있다.

이번 4.29재보선 역시 책임정치의 실종을 드러난 7.30재보선의 재판(再版)이었다. 재보선 정국을 강타한 성완종 리스트 파문은 본질에 있어선 현 집권세력의 비리의혹이기에 이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정상적인 ‘민주주의 책임정치’의 운영원리일 것이지만 이는 다시 실종되고 말았다. 새누리당은 선거승리로 자신이 져야할 ‘책임문제’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는 국민이 책임을 묻고 싶어도 물을 방법이 없고, 집권세력이 어떠한 잘못을 저질러도 책임지지 않는 현장이다. 한국정치는 전제-독재국가의 ‘무책임 정치’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이는 실정이며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제도가 새누리당과 집권세력이 ‘면책특권’을 향유하는 도구로 전락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할 정도이다.

7.30재보선에서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심판이 아닌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야당’에 책임을 물었고 4.29재보선은 성완종 리스트에서 정권핵심 인사의 구체적인 금품수수 의혹이 제기됨에도 이에 대한 심판보다는 본질에서 벗어난 ‘특별사면’과 ‘성완종 파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야당’이 심판받았다. 두 번의 선거는 잘못이 버젓이 드러난 집권세력의 책임문제보다는 ‘야당’의 곁가지 잘못을 심판하는 ‘본말전도’의 선거로 전락한 것이다. 

‘무책임 정치’의 근원은 ‘지역구도’, ‘야당’의 ‘무기력’도 같은 원인 

모든 ‘책임정치’ 실종에는 집권세력을 견제하며 호시탐탐 수권을 도모하려는 경쟁세력의 부재(不在)가 놓여 있다. 민주정치는 유권자가 집권세력의 실정 심판을 위해 경쟁세력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책임정치’를 구현하는데 지금 대한민국은 이 기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전제-독재국가가 제도적 시스템이나 물리적 폭력으로 경쟁세력을 발을 못 붙이게 하면서 ‘무책임 정치’를 구현하듯이 지금 한국은 기득권 집단인 현 집권세력이 지역주의 정치구조와 반북-반공이데올로기로 경쟁정치세력을 무력화시켜 ‘무책임 정치’를 구현하고 있다. 영남 중심의 ‘다수(多數)’ 블록과 호남 중심의 소수(少數) 블록 간의 불균형이 지금 대한민국 ‘무책임 정치’의 기반이다. 이 지역구도 중심의 정치체제 즉 ‘87체제’가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에서 독재국가에서나 가능한 ‘무책임 정치’가 거듭된 근본 배경이다. 

여기서 견제세력인 야당이 제 기능을 못하는 ‘야당 무력화’와 ‘무기력한 야당’이 탄생했다. 호남 등 야권세력이 집권을 위해 몸부림쳐야 치지만 이 과정이 역으로 내부분열과 갈등을 촉발하는 ‘올무’가 돼 왔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 7.30재보선에 나선 새정치연합의 안철수 대표체제나 4.29재보선에 임한 문재인 대표체제 모두 자신의 방식에 의거해 차기 집권을 위한 외연확장을 도모했다. 그러나 모두 호남 민심을 놓고 벌어지는 ‘내부 주도권 갈등’의 벽을 뚫지 못했다. ‘무기력한 야당’은 여기서 비롯됐다. 진영 내부 단속도 안 되는 상황에서 외연확장은 애당초 불가능하며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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