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게 절절한 만큼 약자들에게도 눈길을

박근혜 대통령이 해외 순방 기간에 건강이 좋지 않아 귀국 후 절대 안정에 들어갔다고 한다. 만성피로에 따른 위경련과 인두염 증세 때문이라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민경욱 대변인은 “지구 반대편 중남미 4개국에서 펼쳐진 순방 기간 박 대통령은 지속적으로 심한 복통과 미열이 감지되는 등 몸이 편찮은 상태에서도 순방 성과를 위해 애쓰셨다"며 대통령이 몸이 아픈 상태에서도 얼마나 애썼는가를 절절하게 소개했다. 여러 언론들은 ‘투혼 외교’라는 용어까지 등장시키며 아픈 몸을 돌보지 않은 대통령의 노고를 격려해 주었다.

SNS에서는 빈정거리는 반응들도 적지 않지만, 대통령이 건강이 좋지 않다면 쾌유를 빌 일이다. 위경련이나 인두염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사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대통령은 상당히 고생을 했을 법 하다는 생각도 든다. 정치적 호.불호를 떠나, 대통령이 건강을 빨리 회복하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의 예의이다.

그런데 이 기사가 전해지던 시간에 세월호에서 숨진 예은이 아빠 유경근 씨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이 올라와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예은엄마랑 같이 누워있습니다. 링거 꽂고.
예은 엄마는 경찰한테 헬멧으로 얻어맞고 일주일 넘게 두통에 시달리고 있어서 신경외과 진찰도 받아야 하고....
온몸에 든 멍은 시간이 약이겠죠....
비참하네요....
예은이한데, 예은이들한테,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해줄게 없는데....
무슨 자격으로 이렇게 누워있는건지....“

너무도 당연한 얘기이지만, 아픈 사람은 청와대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예쁜 딸을 그렇게 잃고도 국가권력으로부터 얻어맞아 두통과 멍에 시달려서 누워있어도, 그렇게 누워있을 자격이 있는지를 물어야 하는 어버이가 있다. 아무의 돌봄도 받을 수 없이. 그렇다면 세상은 너무도 불공평한 것 아닌가.

그 불공평함은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지난 4월19일자 <국민일보>는 “세월호 1주기 추모제에서 갈비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해 고통을 호소하는 유가족에게 경찰이 폭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그날 경찰의 해산 과정에서 한 유가족이 부상을 당해 울면서 고통을 호소하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지휘관으로 보이는 경찰관은 “입 닥치고 그 안에 가만있어, 들어가”라고 폭언을 했다는 내용이다. 내몰리는 유가족에게는 다치고 아픈 것도 죄였나보다.

인간은 누구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갖고 있다. 지위나 신분의 차이, 대통령이냐 세월호 유가족이냐에 따라 그 권리의 유무가 결정되지는 않는다. 누구나 아픔이 있으면 치료와 치유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의 위경련과 인두염에 그토록 절절한 멘트를 날리는 청와대라면, 마찬가지로 유가족들의 아픔에도 애틋한 마음 정도는 가져줘야 공평하다는 소리를 듣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묵자(墨子)에게서 ‘겸애(兼愛)’란 모든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자기 자신과 같이 생각하며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묵자가 말했던 것은 보편적이고 상호적이며, 멀고 가까움, 친하고 친하지 않음, 가난하고 부유함, 귀하고 천함을 가리지 않고 사랑을 베푸는 사상이었다. 천하의 모든 화(禍)와 혼란은 사람들이 서로 서로 아끼고 사랑하지 않는 데서 생겨나기 때문이라고 묵자는 보았다.

그러면 이 나라의 국가는 과연 ‘나’와 ‘너’를 구별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고 있는가. 몸아 아픈데도 순방외교를 한 대통령에게는 그렇게도 절절한 마음의 100분의 1만큼이라도, 세월호 유가족들의 아픔에도 눈을 돌리고 있었던가. 다시 묵자의 말이다.

“하늘의 뜻에 따르는 사람은 모두가 아울러 사랑하고 모두 서로 이롭게 하여 반드시 상을 받게 된다. 하늘의 뜻에 반하는 자는 차별을 두어 서로 미워하고 모두 서로 해쳐서 반드시 벌을 받게 된다.”(順天意者, 兼相愛, 交相利, 得必賞. 反天意者, 別相惡, 交相賊必得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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