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대북정책,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지금까지 제대로 가동되지 못해

  <!--[if !supportEmptyParas]--> <!--[endif]-->                                                                                  김근식(경남대 교수, 정치학)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보수 정부인 탓에 기존 진보정부의 대북정책이 퍼주기와 끌려 다니기에 머물렀다는 부정적 평가를 바탕에 깔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추진하면서도 이른바 ‘원칙’을 강조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또한 보수정부이면서도 전임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실패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그와는 다른 남북관계 개선을 추구해야 했다. 취임 초기 핵실험의 긴장국면에서도 ‘대화’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진보 정부의 대북포용정책과 이명박 정부의 강경정책 모두 한계가 있다는 양비론적 입장에서 대북정책을 시작했던 것 자체가 쉽지 않음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결국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면서도 김대중 정부의 포용으로 완전회귀할 수 없었고 김대중 정부를 비판하면서도 이명박 정부의 대북강경을 완전 계승할 수 없는 구조적 딜레마에서 출발했던 셈이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는 이른바 ‘디제이의 그림자’와 ‘엠비의 그림자’가 동시에 어른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집권 초부터 조성된 안보위기는 박근혜 대통령으로 하여금 남북관계 개선과 신뢰 형성이라는 애초의 정책목표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데 적잖은 장애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원칙을 견지하면서 남북간 신뢰를 쌓아가겠다는 접근방법은 성공적으로 잘 가동된다면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면서 남북관계 진전이 가능할 수 있겠지만, 변화무쌍한 정세변화와 돌출적인 쟁점들에 대해 때론 원칙을 강조하고 때론 신뢰를 강조하다 보면 진보와 보수 모두에게 비판받으면서 남북관계는 경색될 수 있다. 애석하게도 박근혜 정부 2년이 지난 지금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전자의 성공이 아니라 후자의 실패에 가까이 와 있다.

  지금까지 남북관계는 정부의 공식 대북정책이 옳거나 틀려서가 아니라 조성되는 국면과 터져 나오는 상황에 정부가 어떤 선택과 결정을 하느냐에 좌우된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사실 통일부가 발간하는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은 김대중 정부로부터 지금까지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심지어 최대의 관계 파탄을 결과했던 이명박 정부의 이른바 ‘상생과 공영의 대북정책’ 역시 김대중 정부의 포용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제는 매개 국면과 돌출하는 상황과 이슈에 대해 정부가 어떤 접근을 하느냐가 강경대결과 화해협력의 분수령을 나누게 된다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1999년 서해교전으로 사망자가 발생했음에도 북에 대해 엄중하게 항의하는 것과 동시에 동해안에서 금강산 관광은 지속하도록 했다. 안보와 교류협력의 병행을 서해교전이라는 위기 상황에서도 유지한 것이다. 대조적으로 이명박 정부는 2008년 박왕자씨 사망사건에 따라 즉각 금강산 관광을 중단했지만 이후 북한 군당국의 유감표명과 2009년 김정일 위원장의 관광객 신변보장 약속에도 불구하고 금강산관광 재개를 허락하지 않았다. 군사적 충돌상황에서도 화해협력은 포기할 수 없다는 김대중 정부의 접근방법과 북의 요구수용에도 불구하고 금강산관광으로 현금이 들어가는 것이 싫었던 이명박 정부의 대북접근의 근본적 차이가 결국 남북관계의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낸 대표적 사례이다.

  매개 국면에서 정부의 대북접근 방식이 결국은 남북관계 개선과 경색을 결과하게 됨은 박근혜 정부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집권 초기 핵실험과 안보위기 및 개성공단 폐쇄라는 초유의 긴장국면에서 박근혜 정부는 신뢰프로세스를 강조하며 북과 대화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박근혜 정부는 대화를 제의했다. 힘겨루기와 우여곡절의 개성공단 실무회담에서도 6차례의 실패 끝에 결국은 끈질기게 7차 회담을 갖고 합의를 도출하기도 했다. 집권 첫해 박근혜 정부가 어려운 안보환경에서도 남북관계의 끈을 잇고 신뢰를 쌓기 위해 노력했던 점은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2013년 박근혜 정부는 역시나 다른 국면에서 본질적이지 않은 문제로 원칙을 고집하면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결국 시작도 하지 못하고 말았다. 어렵게 합의된 남북 장관급 회담을 앞두고 이른바 ‘격’ 논란으로 남북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포기하고 말았다. 남북이 대화를 통해 신뢰를 형성한다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취지라면 응당 장관급 회담을 성사시켜서 신뢰의 첫 벽돌을 쌓아야 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신뢰의 벽돌을 쌓을 수 있는 기회에 조평통 서기국장은 안되고 통전부장은 된다는 과도한 원칙으로 결국은 상대방의 협상 대표를 우리가 지명하는 오기를 고집함으로써 대화는 성사되지 못했고 남북의 신뢰는 불신으로 바뀌고 말았다. 집권 첫해 북한이 주도한 안보위기에서도 박근혜 정부는 신뢰의 불씨를 살려보려고 했지만 결정적 국면에서 형식적 원칙에 매몰된 나머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한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을 ‘신뢰의 빈곤’과 ‘원칙의 과잉’으로 평가하는 이유다.

  2014년 역시도 박근혜 정부는 남북간 신뢰형성에 미약했고 원칙은 갈수록 고집으로 진화했다. 김정은의 신년사와 박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은 서로 관계 개선의 의지를 주고 받는 형국이었다. 박대통령의 이산가족 상봉을 북이 수용했고 우여곡절 끝에 북이 제안한 청와대와 국방위의 고위급 접촉이 이뤄졌고 키리졸브 훈련기간임에도 북이 대승적으로 일자를 받아들임으로써 결국은 2014년 2월 이산가족 상봉은 성사되었다. 집권 2년차 박근혜 정부가 신뢰형성에 한발을 내딛은 성과였다.

  그러나 남북간 신뢰는 북의 일방적 양보와 수용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신뢰는 상호적인 것이다. 북이 댓가 없이 이산가족 상봉을 합의하고 한미훈련 기간임에도 양보했다면 우리 정부도 최소한 대북 신뢰의 노력을 보였어야 했다. 그러나 이산가족 상봉으로 끝이었다.

  북이 일관되게 주장한 고위급 군사 회담 즉 1.16 국방위 중대제안과 6.30 국방위 특별제안에 박근혜 정부는 진정성이 없다며 묵묵부답이었다. 오히려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을 전면화하면서 드레스덴 선언으로 우리 식의 대화 제의에 골몰할 뿐이었다. 북은 자신의 관심 의제인 정치군사 대화에는 고개 돌린 채 흡수통일의 우려를 자아내게 하는 드레스덴에서 통일대박을 언급한 박근혜 정부에 대해 조금씩 신뢰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통일준비위원회 출범을 북은 흡수통일 시도로 비난했고 북이 고심 끝에 결정한 인천 아시안게임 응원단 파견에 대해 박근혜 정부는 비용 등을 거론하며 북의 자존심을 톡톡히 건드리고 말았다. 남북의 고집싸움이 재연된 것이다.

  2014년 초반 이산가족 상봉 성사로 남북의 신뢰가 벽돌 한 장 쌓는데 성공했지만 이후 박근혜 정부는 북의 정치군사 대화 제의를 거부하고 흡수통일 우려를 제대로 불식시키지 못한 채로 응원단 이벤트마저 불필요한 고집 세우기로 결렬시키고 말았다. 신뢰형성은 부족하고 쓸데없는 고집이 과도했던 것이다.

  결정적인 고집의 과잉은 2014년 10월 황병서 일행의 깜짝 방남 이후에 나타났다. 3인방 방남으로 청와대 안보실 라인과 대화 기회를 갖게 되었고 고위급 접촉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모처럼 마련된 신뢰형성의 계기 역시 박근혜 정부의 고집의 과잉으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미 남북은 2월 고위급 접촉에서 상호 비방중상 중단을 합의한 바 있다. 북은 그 합의정신에 따라 남측의 대북전단 살포를 문제제기한 것이었고 남북간 신뢰형성이 진짜 정책의 목표였다면 당연히 박근혜 정부는 10.3 황병서 방남으로 마련된 고위급 접촉 재개를 성사시키기 위해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 최소한의 대북 신뢰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표현의 자유라는 원칙에 매몰된 나머지 신뢰형성의 기회를 버리고 말았고 결국 신뢰는 불신으로 변질되었고 고집은 이제 오기로 더 단단해지고 말았다.

  <!--[if !supportEmptyParas]-->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성적 합리성의 측면에서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로 나타난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이성적으로는 신뢰를 축적하고 증진해야 하는데 여전히 매 국면과 상황에서는 감정과 기싸움에 경도되기 때문이다. 북에 끌려다녀선 안된다는 진보 정부에 대한 반면교사가 항상 눈 앞에 어른거린다. 이른바 ‘버릇 고치기’라는 감정적 접근에 익숙한 나머지 상대방의 완전 굴복과 일방적 수용만을 고집하게 된다. 신뢰 형성의 계기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형식에 집착하고 지나친 원칙에 매몰되고 급기야 오기에 빠지고 만다. 이른바 신뢰의 빈곤과 고집의 과잉이라는 참담한 결과도 그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를 넘어서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북에게 끌려다녀서는 안되고 북의 버릇을 고쳐야 한다는 보수정부의 태생적 감정적 접근이 결국은 지금까지 관계개선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관계경색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고 말았다. 금년에도 김정은 체제는 대외관계 정상화라는 목표에 따라 남북관계 개선에도 공을 들일 가능성이 높다. 아직은 골든타임이 지나지 않았다. 기싸움용 형식과 논리를 원칙으로 내세우지 말고 오히려 어떤 경우에도 남북간 신뢰를 쌓아가겠다는 신뢰형성 노력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고집과 오기가 원칙이 아니라 관계 개선과 평화 증진이 포기할 수 없는 원칙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신뢰는 분명 일방적인 요구가 아니라 상호적인 노력으로 만들어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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