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종 등에 업혀 사드- 테러방지법 추진하려나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 리퍼트 주한미국대사의 피습사건 이후 정부와 여당의 움직임을 보면 영락없이 그런 모습이다.

사건 직후부터 심상치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즉각 ‘한미동맹에 대한 테러’라고 규정했다. 미국 대사라는 신분이 미국정부를 대표한다는 점에서 리퍼트 대사 피습 사건의 중대성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감히 한미동맹에 대한 테러라니. 김기종씨의 변호인도 필요에 따라서는 그에 대한 정신감정을 해야 할지 모른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정상적인 상태의 인물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피해망상증, 소영웅주의, 자기과시.... ‘종북’이라는 정치적 용어보다는 이같은 정신분석적 용어들이 더 어울릴 정도로 그의 범행은 돌출적이고 심지어 해괴하기까지 했다. 전쟁반대를 외치면서 민간인의 얼굴에 칼을 들이대다니, 그게 어디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의 모습인가. 법 이전에 정신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의 행동을 놓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한미동맹에 대한 테러’라고 규정한 것은 그래서 낯설기만 하다. 한미동맹이라는 것이 아무나 과도 하나 들고 달려들면 테러할 수 있을 정도로 허약한 것이었던가.

오히려 미국정부는 사건 이후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한미동맹에 악영향을 줄지 모른다는 우려에 대해, 아무런 영향이 없을 것이라며 조속한 진화에 나섰다. 그런가 하면 굳이 ‘테러’라는 용어를 쓰지 않음으로써 김기종씨의 범행을 굳이 북한과 연계시키려는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요란한 과잉대응의 조짐은 한국 내에서 생겨나고 있다. 수사인력의 규모가 100명은 넘는 매머드급이라는 소식부터 그러하다. 김씨 본인에 대한 조사 이외에도 그가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의 연루 여부까지 조사한다 치더라도, 그 많은 인력이 무엇에 필요할까라는 의문이 생겨난다. 혹 이 사건을 빌미로, 사건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인사나 단체들에 대한 종북몰이식 수사가 진행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든다. 마침 여당 내에서는 차제에 종북세력에 대한 관리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모든 것은 법대로 하면 된다. 김기종씨 사건이 없었더라도 범법행위가 있으면 조사하고 처벌하는 것이고, 반대로 범범행위가 없는데도 김기종씨 사건이 있었다고 해서 억지로 조사하고 처벌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사건 자체에 대한 수사를 넘어 정치적 사안으로까지 논의가 진전되는 것을 보면 이번 사건에 대한 여권 정치세력의 속내를 읽을 수 있다. 당장 새누리당에서는 사드 배치의 필요성을 공론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물론 피습 사건과는 별개의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작금의 분위기를 활용하여 한미동맹의 강화를 위해 사드 공론화를 하겠다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런가 하면 국정원에게 필요 이상의 권한이 부여된다는 점에서 야당의 반대로 진척되지 못하고 있는 테러방지법의 재추진도 거론되고 있다.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정부와 국민은 결코 이번 테러에 굴하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한미 동맹을 더욱 굳건한 반석 위에 올려놓는 계기로 삼겠다." 그냥 피습사건에 대한 수사와 처벌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차제에 한미동맹의 강화를 모색하는 계기로 삼겠다는 것이다. 그 선상에서 여러 조치들이 거론되고 있다.

너무 비겁하지 않은가. 김기종은 김기종이고, 사드는 사드이며, 테러방지법은 테러방지법일 뿐이다. 마치 김기종이라는 돌출 행위자의 등에 업혀, 그동안 쌓여있던 논란거리들을 일거에 밀어붙이려는 모습으로 비쳐진다. 이 나라가 정신감정 얘기까지 나오는 어느 개인의 행동에 의해 좌지우지 되어야 할 정도로 허약한 것인가. 김기종씨가 저지른 범행은 그 자체로 조사되고 매듭지어지는 것이 옳다. 김기종씨의 범행을 향했던 국민의 분노가, 그 정치적 이용에 대한 분노로 바뀌는 자충수를 두지 않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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